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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의 세상 May 16. 2022

레드룸: 19금 성인들의 순수한 숨결

#길게 씀: LOVE IS IN THE AIR에서 인생을 배웠다?!


여자친구와 오랜만에 뚜벅이로 버스를 타고 안국역 근처에 내렸다. 북악산에 닿을 듯 밀당하는 구름들을 구경하기 좋은 날.  3주 전쯤 예약해두었던 레드룸 : 러브 이즈 인 디 에어를 보러갔다 왔다. 전날 살짝 쌀쌀했던 날씨가 하루만에 따쓰한 햇살 덕에 너끈히 데워졌다. 화창한 날씨를 즐기러 나온 연인들의 틈바구니를 종종 걸음으로 걸으면서 전시를 보기엔 더없이 좋은 날. 이런 틈바구니라면 바구니 쏙 빵이 되어도 좋을 날.

 

  요시고 전시를 보러 온 것이 마지막이었던 그라운드 시소에 다달아 줄을 섰다. 간단하게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 금세 사람들이 북적였다. 언제 사람이 많아서 북적였냐는 듯이. 다행히 대기 없이 예약 내역을 확인하고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사랑이 넘치는 레드룸에서"


 레드룸은 성인들 위한, 사랑에 관한 전시. 총 3명의 작가가 참여 했는데, 사실 난 딱 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 민조킹. 그녀의 작품을 인스타에서 종종 보곤 했었는데, 솔직한 주제와 매력적인 그림채, 따뜻한 시선에 매료되어 어느샌가 그녀의 팬이 되어 있었다. 나머지 두 작가들에겐 미안하지만, 전시라는 게 자신이 맘에 드는 딱 한 가지 그림만 건져와도 좋다고 언젠가 김영하 작가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나에게 레드룸은 민조킹이었다. 


"작가의 설명을 메신저 형식으로 하다니"


나머지 두 작가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키스의 순간을 다룬 작가의 전시가 인상적이었다. 처음 드는 생각은 "여전히 누군가는 이 전시를 불편해하겠구나"였다. 여전히 이성애가 보편인 세상에서 동성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담은 사진은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 잡았다. 그들의 사랑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사진에서 느껴지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사진 안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 사진 속에 사랑도 함께 찍혀 있었다. 또 한 가지 눈에 띄었던 사진들은 서로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 연인들의 작품들이었는데, 이것 역시 이 전시의 주인공인 민조킹을 제외한 나머지 두 작가 중 한 작가의 작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이렇게 사람이름을 잘 까먹어서야... 두 작가에게 정말 미안한데 말이지). 나체의 두 사람이 서로를 탐닉하며 찍어나간 사진들은 사랑의 역사였다. 문득,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우린 사랑하는 이를 사진에 잘 담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을 분명히 어색해 한다.그것이 연인이든 가족이든. 기억은 영원하지 못하니, 나 대신에 사진이 기억해주어야 할 텐데 말이다.


"겹쳐진 건 실루엣이 아니라 사랑이다"




민조킹 작가의 그림은 세 번째 파트로, 맨 위로 올라가야만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은 인스타그램에서 작게 만나볼 수 있었던 그녀의 그림들을 실사로 크게 만나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직 방문하지 않는 분들은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한 번 둘러보고 가길 추천한다. (Instagram : @minzo.king). 재밌는 것은 그녀의 전시에 파트를 나누는 구분이었다. 전시는 그녀의 작품을 탈의, 전희, 삽입, 후희 4단계로 나누어 그녀의 그림의 흐름을 보여준다. 4개의 단계를 전시를 보며 내가 느낀 감상은 어쩐지 이 4 단계가 우리 인생과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각각의 단계는 워낙 재각각의 교훈을 주었는데, 나름 덜 꼰대처럼 느낀 인생에 섹스와 인생이 겹쳐 보인 나의 감상은 다음과 같다. 


"거추장스러운 옷가지로부터의 해방감"



Step 1. 탈의


아담과 이브는 언제나 나체였으니가, 탈의의 기쁨을 모를까. 마를린 먼로는 향수만을 입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녀는 탈의의 기쁨에 무뎌졌을까. 연인들에게만 허락된 특권. 탈의의 과정은 다시 어린 아이의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순수히 부끄러움 없었던 동심의 마음으로, 온전히 나의 모습과 상대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 해방감 뒤에 오는 것은 탐닉 전에 오는 설렘과 약간의 긴장감. 우린 서로의 탈의한 모습을 바라볼 때, 비로소 선악과를 잊은 아담과 이브로 돌아간다. 이것은 19금에 관련된 이야기지만, 전체관람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우린 탈의하지 않으니까. 누군가를 만날 때도 우린 겹겹이 옷을 껴입고 있다. 반대로, 어린아이의 순수함으로, 탈의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을지. 그럴 수 없기에 연인의 탈의가 더 큰 해방감이 되지는 않은지. 그렇기에 그것이 소중한 순간은 아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몸 구석구석 입을 맞추고 매만지다 보면"


Step 2. 전희


우린 삶의 목적을 분명 가지고 있다.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가 그러했 듯. 삶은 목적이 분명한 녀석이다. 먹어라, 성장하라, 짝을 찾아라, 번식하라, 그리고 죽어라. 재밌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모든 과정에 쾌락이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맛있게 먹어라, 멋지게 성장하라, 황홀한 짝을 찾아라, 쾌락을 느끼며 번식하라. 죽음이란 결론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가 삶의 목적에 충실하는 이유는, 그 과정, 과정에 기쁨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섹스의 전희는 분출과 번식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리지만, 인생의 과정 과정에게 주는 교훈과 닮아 있다. 우린 돈, 성공 명예, 지위 등과 같은 오르가즘을 위해 너무 쉽게 우리의 전희를 놓치고 만다. 우리는 충분히, 우리의 전희를 순간이란 이름으로 소중히 대해줘야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이 없이는 '섹스를 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



Step 3. 삽입


상대와 나와의 거리는 0.0cm . 만약 피임을 위해 한 겹을 더했다면, 최소 0.02cm. 두 사람의 거리는 세상 무엇보다 가깝고, 서로를 끌어당기는 중력은 지구보다 무겁다. 뜨거움의 온도는 마그마의 그것과 비견되며, 심장박동과 호흡은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처럼 거칠어진다. 어쩌면! 이 전시의 이름이 "love is in the air"인 이유를 육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기필코 이 순간 때문이다. 서로 하나가 되고, 서로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상대방을 끌어안느 과정. 그렇게 경계가 사라지는 과정이 삽입일 것이다. 어쩌면, 가장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과정인 셈. 어쩌면 이 자체가 인생의 아이러니함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어줄 때, 그토록 바라던 삽입이 이루어진다. 내어주는 것이 곧 얻는 것이다. 공자님, 죄송하지만 이것이 인생의 진리가 아닐지요. 비유가 남사스럽다면 그것은 저의 잘못이겠지요? 하지만 인생의 교훈으로 삼기에 좋다고요! 고로 우리 모두 서로의 마음에 삽입(?)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 겠다. 



"배설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Step 4. 후희



난 후희라는 말이 좋다. AFTERPLAY.  비단 섹스만이 그러할까. 우리는 너무 쉽게 인생의 목적을 달성한 순간 , 그 과정의 고단함을 떨쳐버리는 듯이 상황을 일단락 시켜버린다. 42.195km를 다 뛰어버린 마라토너가 그러하듯, 결승선을 통과한 F1 페라리가 그러하 듯, 달리기의 끝은 항상 놓아버림이다. 그렇지만 삶은 달릴 때보다 멈출 때가 더 중요하다. 어떤 부자 스님(?)은 말하지 않았던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고. 전희가 서로의 구석구석을 인정하는 과정이었듯이, 후희도 마찬가지다. 섹스가 멈춘 후에 비로소 보이는 땀벅벅, 침방울, 축 처진 가슴과 소중이, 다가오는 우울감, 못난 얼굴들과, 널부러진 옷가지. 이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섹스가 있고, 그렇지 못한 섹스가 있듯이, 인생을 살면서도 성공했음에도 즐겁지 못한과정이 있고, 옴팡 깨졌음에도 사랑해 맞이않는 순간들이 있다. 비록, 어떤 게 진짜 성공인지 나 역시 감히 말하진 못하겠지만. 후희까지 즐길 수 있는 삶의 태도가, 결국 삶을 건강하게 하지 않을까?




"오늘도 어딘가에서 사랑하고 있는 그대들에게"



그저 섹스의 4단계였을 뿐인데, 어디 인생을 비유하나 싶기도 하다. 뭐 필자 나름대로 레드룸 전시를 즐기는 방식이었으니, 너그럽게 용서해주기 바란다. 적어도 필자는 섹스가 인간이 태어난 이유이자, 태어난 목적이라 생각해서 인지는 몰라도, 섹스의 과정이 마치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오늘 밤에도 인생의 어딘가에선 누군가는 사랑을 나누고, 누군가는 사랑을 후회하고, 누군가는 헤어지고, 누군가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다. 찾아 헤메고, 만나고, 사랑하고, 정착하고, 떠나고, 다시 찾아 헤멘다. 인생의 회전목마를 어쩐지 레드룸에서 만나고 온 기분이었다. 


 전시시는 전 여친에게, 부모님에게, 지금의 연인에게, 또 불특정 다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빨간 카드에 적는 코너로 마무리를 짓는다.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친구들, 혹은 혼자서, 심지어는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의민가 싶어 웃음인 나오기도 했다. 물론, 여자친구와 나는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는 카드를 작성하고 나왔지만..! 





시간이 허락한다면, 주말에 그라운드 시소에서 열린 레드룸: 러브 이즈 인 디 에어에 갔다와보기를 추천한다. 사랑한다면, 섹스를 찬양한다면, 성인이라면, 연인과 돈독해지고 싶다면,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고 싶다면,  썸이 빠르게 사랑이 되었으면 한다면... 어떤 이유라도 좋다. 


"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시간 어딘가에도

사랑은 세상을 만들고,

우리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것.


"


그럼.

안녕!


Fin 


2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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