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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의 세상 Jun 18. 2023

신해철, 그리고 육개장 한 그릇

나의 신 여름 같던 청춘을 빚진 그대에게


벌써, 찌는 여름이다.

오늘은 최고 기온이 32.5% 

이제 6월인데 어쩌려고 벌써 기온이 이토록 오르는지.


지인의 결혼식을 다녀오고 나서는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쓰고 싶었던 에세이를 쓰러

조용한곳을 찾아 햇빛이 잘 드는 성북동 카페 도이창에 앉았다.


결혼한 지인은 회사 동료인데

명량하고 마음이 따뜻하고, 

여름의 햇살 같이 밝은 친구였다.

축복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이로써 6월 달 결혼식만 벌써 다섯 번째 다녀온 셈인데

코로나가 끝나고 너도 나도 결혼한다고 하지만

결국 내 주변 사람이 결혼한다 함은 , 나 스스로가 어른이 거나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나이가 찼음을 의미한다.


여름 날 다락방에서 라디오 mp3를 켜놓고

밴드 음악을 즐겨듣던 어린 시절의 나는 온데간데 없고 


뱃살이 반쯤 나오고 볼살이 껄끄럽게 오른

아저씨가 되어가는 나를 보고자 하면


청춘이란 게 있긴 한건지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그런 게 있기는 한건지 싶을 만큼

쏜 살 같이 지나가 젊음이란 생각이 더욱 들었다.


청춘이라는 말 하면 나에겐 떠오르는 아티스트가 하나 있는데,

어린 시절 나의 많은 새벽을 수놓았던 마왕 신해철이다. 

물론, 1988에 <그대에게>를 열창하던 그 시절 신해철을 직접 기억하진 못한다.

(필자도 나름 MZ다! MZ!)


90년대 초반 생들이라면 신해철은 그룹 N.E.X.T의 리더이자

화려하고 기이한 무대복장을 입고 100분토론에 거침 없이 출격(?)해

청년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당대 정부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논객이자 방송인으로서의 모습을 더욱 익숙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신해철의 고스티네이션의 DJ로서 그는 많은 청년들과 어린 꿈나무들에게


삶이란 무엇일지 , 정의내릴 순 있는지, 과연 대한민국에서 행복이란 뭔지 등

시시콜콜한 농담과 때로는 강렬한 조언으로 

많은 젊은 친구들의 등불이 되어 주었던 인물, 신해철.


사실, 요즘 같은 여름 날 

회사와 사회에 치여 지친 우리의 새벽에 

잠들지 못하는 나를 포함한 지친 친구들에게 

신해철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고, 지금도 

팟캐스트를 켜면 특유의 저음과 호탕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줄 것만 같아서 

믿겨지지 않는 그의 빈자리다.


그가 만약 살아있더라면 

지금의 친구들에게,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또 어떤 위로를 던져 주고 있었을지도 궁금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에게 빚진 수많은 청춘의 나날들을

떳떳히 갚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요즘 


나는 정말 좋은 어른이 된 건지,

꼭 어른이 될 필요는 있는 건지

그가 있었다면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부쩍 든다.


그런데, 

얼마전 커뮤니티를 하다 발견한 

가수이자 방송인 양동근님의 한마디를 보고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신해철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많은 연예인들이 그의 빈소를 찾았던 날

양동근 역시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살아 생전 고인과의 인연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던 한 기자가 그에게 가서 고인과의 인연을 물었고

돌아왔던 대답은 의외였다. 


양동근 曰


"저는 실제로 뵌 적이 없어요.

정말 가시는 길 한번 보고 싶어서 왔고요.

어렸을 때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렀던 

18번이 <인형의 기사>가 생각나고


만약에 친분이 있었다면

밥을 한번 제가 얻어먹지 않았겠습니까?

못 그랬으니까

와서 육개장 한 그릇 얻어먹고 그러고 갑니다."



양동근님의  쿨하지만 따뜻한 모습과

고인이 살아있던다면 정말 소주 한 잔 기울였을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라 애틋한 마음까지 드는 대답.


헌데, 정말 위로 받은 사람은 나였다.

양동근님이 고 신해철을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그를 마음으로 알아온 사이로서 그의 빈소를 채웠듯이.


그가 지금 없다고 해서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 없다고 해서

청춘의 대답을 해줄 누군가가 없는 건 아니지 않을까.


그가 남긴 무수한 말들

그가 남긴 음악과 사랑, 그리고 정의감.


떠올리며 지탱할 수 있는 많은 마음들.

그건 어른이 된 것인지 아직 헤매고 있는

여름 날, 30살이 된 청춘에게도 


신해철은 육개장 한 그릇 내어주며

여전히 대답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니

가끔 그리워하고

자주 그에에서 답을 얻어보련다.


좋은 여름 날, 주말이었습니다. 마왕님.



- fin - 



<인터뷰 원본 > - 출처 : y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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