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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의 세상 Jan 10. 2024

대리님의 우주가 넓어졌네요

#쪼의 세상: 길을 잃은 게 아니야, 나의 우주가 넓어진 거지

   새해를 맞이하여, 직장 동료와 이야기 나누던 중에 자연스럽게 서로 올해의 목표가 뭐냐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생겼습니다. 누군가는 운동이었고, 누군가는 자격증이라고 했습니다. 마케터들 사이니 워낙 데이터를 다루는 자격증을 목표로 하는 동료들도 많았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동료는 신혼집을 잘 구하는 것이 목표이자 하나의 걱정이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제가 대답할 차례가 되었을 때 저는 올해  목표를 리스트로 적어둔 것 10개 중 3개만 꼭 이루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답했습니다. 10개의 리스트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동료들은 그럼 3가지를 목표로하면 되지 왜 굳이 10개를 목표로 잡냐고 물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요.


  리스트가 많은 것은  당연하게도 이루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게 첫번째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어차피 목표를 다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어차피 올 한해도 제가 세운 목표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 당연한 걸 알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 여기서 리스트를 공개할 순 없지만, 10개 리스트 중에 대부분은 제가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분야거나 지금까지 제인생과는 동떨어진 목표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제가 모르는 분야로 저를 올한해 던져보기로 한겁니다. 


   "모르는 세상에 나를 던져본다" 사실 저에게도 아직은 어색한 일입니다. 저는 호기심은 강하지만, 그만큼 두려움도 강한 성격입니다. 그렇기에 모르는 분야에 저를 던지는 일은 늘 두렵고 낯선 것이죠. 특히 저처럼  인생의 여려 결정들은 한 번 결정하면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특히나요. 돌이킬 수 없음이 언제나 저를 불안케 했습니다. 예를 좀 들어보면, 어릴적 저에게 인생의 궤도는 지구를 돌며 몇 번이고 한 번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인공위성의 궤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도 초당 5km의 속도로 태양계를 벗어나 새로운 우주를 발견하고 있는 보이저 2호와 같다고 느꼈죠.  보이저 2호의 궤도는 어찌 됐든, 지구와 매순간 멀어지고 있으며. 아득히 먼 우주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이저 2호의 궤도는 처음 세팅이 중요했습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요. 단 한 번의 실수로 교신이 끊기거나, 궤도를 이탈한다면 완전히 다른 목적지에 도착하겠죠. 처음 몇도의 틀어짐은 나중에 겉잡을 수 없게 벌어질 테니까요. 저에게 인생은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가장 최근 제 스스로가 정말 보이저 2호처럼 느껴졌던 때는 이직을 경험했을 때입니다. 카피라이터라는 태양계를 처음 벗어나 처음으로 마케터라는 새로운 우주를 탐색하게 되었을 때죠. 카피라이터는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한 우주였다면, 마케터는 실행력과 커뮤니케이션, 빠른 행동이 중요한 우주였습니다. 생각하는 방향과 달성해야하는 목표도 완전히 달랐죠. 그때는 정말 마치 제가 외계인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이방인 정도가 아니라 완전 다른 우주에서 온 낯선이의 기분이었으니까요. 저는 완전히 보이저 2호처럼 아득히 먼 우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칼 세이건의 유명한 나레이션에서처럼 저의 카피라이터 시절이 창백한 푸른 점처럼 멀어져갔습니다. 마케터라는 우주는 저에게 "넌 지금 궤도를 잘못 잡았을지 몰라"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죠. 


 시간이 약이었는지 바쁜 업무 사이사이에도, 나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또한 저를 도와주는 좋은 동료들이 있었죠. 외계인에게 외계어를 가르쳐주고, 마케터라는 은하수의 길잡이가 되어준 든든한 동료도 생겼죠. 그들은 일 뿐만 아니라 사사로움 대화도 믿고 의지하며 통하는 그런 멋진 동료들었습니다.  그렇게 마케터로서의 2년차 새해를 맞이하여 동료들과 술한잔 기울일 때였습니다. 카피라이터였던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참 멀리도 왔다"라는 혼잣말을 저도 모르게 하게 되었습니다. 보이저 2호처럼 느껴졌던 저 스스로의 마음이 저도 모르게 혼잣말로 새어 나온 겁니다. 


그때 혼잣말은 이런 의미였습니다.  


매일 회의실에 박혀서 

카피와 콘티를 만들고, 

필요하다면 늦은 시간에 편집실과 녹음실을 오가고, 

촬영장으로 가기 위해 새벽에 출발했던, 

경쟁 PT한 번을 들어가면 

3주는 주말 밤낮없던 태양계의 내가


어느새 마케터를 하겠다고

새로운 제휴처를 만나러 다니고

오프라인 팝업 부스의 디자인을 의뢰하고

앰버서더 시딩을 위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온사이트 페이지를 구성하고

상품 MD를도 설득하고 

사람들에게 아젠다를 설명하고 있구나.


크리에이터라는 태양계에서 

마케팅 기획자라는 머나먼 은하까지

난 참 멀리왔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물론 저에게는 큰 도약이자, 뜻깊은 도전의 시간이었지만 얻은 것이 있는 만큼 저 스스로 쌓아왔던 것을 많이도 잃어버렸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특히, 그 전에는 카피라이터라는 태양계에서 많은 것을 아는 것 같앗지만

지금은 내가 모르는 게 너무나 많은 우주에 왔으니까요. 모르는 것이 많아진 만큼 저의 세상은 좁아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근데, 제 혼잣말을 들은 멋진 동료 중 한 명이 저에게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그 만큼 쪼님의 우주가 넓어졌네요" 라고요.

저는 그 순간은 웃으며

'그러네요, 근데 우주가 넓어진 만큼 재가 작아진 것처럼 느껴져요"라고 급하게 답하고 넘겨버렸습니다. 


  어색해서 그렇게 얼버무리긴 했지만 집에 와서 곱씹어 보니 어딘가 위로가 되는 말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저 뿐만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싶었던 거죠. 처음 걸음마를 처음 시작하면서, 세상은 우리의 눈높이 만큼 넓어지지만 그러기 위해선 사실 수천번을 넘어져야 하잖아요. 처음 학교를 갈 때도, 입시를 준비할 때도, 처음 대학생이 되어 사회로 나갈 때도, 취업을 준비할 때도, 독립을 할 때도, 결혼을 할 때도, 부모가 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모르던 세계로의 진입은 언제나 그 전에 것들을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우주로 초속 5km의 속도로 진입해야 합니다. 


 다시, 새해 목표 리스트로 돌아와 봅니다. 우리가 목표라고 이야기하는 건 대게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일일 수 있죠. 또는 시도했다가 실패했거나, 염원해지만 이루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죠. 혹은 그저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바보같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새로운 것일수록 그것은 더 먼 우주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10개의 모르는 우주에 가보는 겁니다. 그 중에 어떤 여정은 끝까지 마치지 못하겠죠. 또는 또 한 번 제가 너무 모르는 은하수에서 길을 잃어 히치하이킹하게 될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따뜻한 그 동료의 말을 떠올리곤 합니다

우리가 작아진 것이 아니라, 우주가 넓어진 것이라고요. 


그러니 여러분도 잊지 마세요.


올 한해,

여러분이 어떤 목표를 세우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우리의 우주는 

여전히 초속 5km 속도로

넓어지고 있다는 걸요.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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