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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 Aug 25. 2019

테이블마운틴에서 세상 하직할뻔,

테이블마운틴 라이언스헤드 시그널힐


이 사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생명의 은인께서 친히 찍어 이메일로 보내주신 컷이다.


땡볕 내리쬐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줄창 들을 때도,

수련회 가서 한여름에 땀 뻘뻘 흘리면서 쪼그려뛰기할 때도,

매일 7~8시간 넘게 산을 타고 걸을 때도 한 번 쓰러진 적 없는 나였는데ㅠ

테이블마운틴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갑자기 픽, 하고 쓰러졌다.


태어나서 처음 쓰러져봤다.

처음 쓰러진 장소가 케이프타운 테이블마운틴이라니, 후덜덜.


1시간 30분~2시간이면 케이블카 스테이션 인근에서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기에

아침도 안 먹고 빈속에 동네 뒷산 오르는 기분으로 운동화에 반바지 가볍게 입고 출발했는데

어라, 오르다보니 땡볕은 내리쬐는데 그늘은 없고,

온통 미끄러운 돌산인 데다 경사도 가팔라서

등산화 신고 초코바, 물, 과일도 챙겨서 제대로 와야하는데 아차, 싶었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은 날이었는데 절반쯤 올랐나...갑자기 목에 사래가 들렸나 기침이 심해지더니

숨이 차고 헉헉대다가 호흡곤란인가 싶은 순간이 왔다.

가파른 오르막길 한가운데 돌에 걸터앉아 쉬었다 가야겠다 싶었는데

뒤따라 오던 아저씨 두 분이 한국에서 왔느냐며 짧은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렇다고 답했고 그 다음부터 갑자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르막길에 내 머리와 어깨가 아래쪽 방향으로 누워있었고

뒤따라오며 말을 걸었던 남자분들이 깜짝놀라 내 몸과 다리를 잡아주고 있는 상태였다.


네덜란드에 사는 파일럿, 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아저씨가 완전 생명의 은인이다ㅠ

쓰러질 때 누군가 뒤에서 바로 머리와 어깨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그분 덕분에 다행히 무릎과 손에 찰과상 정도만 입었다.


이 아저씨와 함께 산을 타고 있던 현지 가이드분은 찰과상을 입어 피가 나는 무릎을 붕대로 감아주고

정신을 가다듬으라며 과일,  초콜릿, 물을 가득 건네주셨다.


지나가던 다른 등산객은 본인 무릎에 다리를 높이 올리고 좀 쉬라고 배려해줬다.

여러분들이 한참을 함께 있으면서 내가 괜찮은지 살펴주셨다ㅠ

그 자리에 1시간 가까이 돌에 기대 쉰 후에야 나는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산을 절반 정도 이미 올라온 상태였기 때문에 구조팀을 부르지 않는 한 걸어 올라가서 케이블카를 타든, 내려가든 내 두 다리로 움직여야했다. 다행히 한 시간쯤 지나니 상태가 괜찮아져서 가던 길을 마저 올라가 정상으로 갔다. 정상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쉬엄쉬엄 즐기며 안전하게 있다 내려왔다.


아비드와 피터. 그리고 지나가던 등산객들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다.

동시에 나는, 그 위험한 곳에서 정신을 잃고 그냥 쓰러졌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한참 쉬다가 나도 모르게 엉엉 울었다;


둘이 산을 탈 땐 보통 남편이 한참 먼저 올라가고 내가 열심히 뒤따라가는 편이었는데

먼저 올라가다 내가 쓰러진 것을 보지 못한 남편도 많이 놀랐다.

이때부터 가파른 길을 올라갈 때는 남편보고 꼭 뒤에 있어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다는;; 트라우마;;


내려와서 놀란 가슴을 쓰러내리고 케이프타운 맛집에 가서 3코스로 점심을 든든히 먹고

집에서 한잠 푹 자고,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그리곤 이후에 밥 든든히 먹고, 등산화와 복장도 단단히 챙기고, 먹을 것도 잘 챙겨서

시그널힐도 가고, 라이언스헤드도 올랐다.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걷는 것도 좋았다.

다만 오르막이 장난이 아니어서 걸으면서도 아찔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쓰러진 덕분에 겁만 더 많아졌다ㅋㅋ


앞으로도 항상 안전하게, 열심히 산타야겠다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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