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한 부추전
자기,
응?! 자기이-
오늘 비가 참 많이 온다. 그지? 퇴근할 때는 비 안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밖에서 만나서 막걸리나 한 잔 하고 들어오는 건데 그지?
자긴 비가 오면 무슨 생각나?
그치? 나도 부침개 생각나. 비오는 주말에 엄마가 해주던 정구지지짐. 정구지? 정구지 몰라? 맞춰봐. 이래서 내가 서울 촌놈들이라고 하는거야. 부추 말이야 부추! 부추를 정구지라고 한다고, 부추전 보다는 정구지지짐이야. 같은거? 뭐, 같을 수도 있지. 그치만 나한테는 좀 달라.
학교 다닐 때 삼색전이나, 뭐 이런거 할 때 부추로 만든 건 부추전인데, 엄마가 해주던 건 정구지지짐이야.
정구지 지짐에는 홍합살이 많이 들어가면 그 정구지 맛이랑, 홍합살의 비릿하고 달큰한 향이.. 어우, 대박이지 진짜.
거기다가 완전 맛있는 초장을 콕 찍어서 먹는거야. 으으~음 맛있겠다.
안돼, 나도 엄청 먹고 싶지만, 시계봐. 벌써 11시 반이나 됐잖아.
올 여름에는 꼭 비키니에 11자 복근을 같이 새겨 넣을꺼란 말이야. 오빤 내 다이어트에 아무 도움이 안돼.
주말에 비가 오면 말이야, 아빠가 집에 계시잖아.
그래서 엄마가 그 핑계로 지짐을 부쳤던 것 같아. ...그러게, 그러고 보니까 우리집에 항상 부추랑 홍합살이 있지는 않았을텐데, 엄마가 만들려고 장을 봐오셨던 것도 같아. 그러고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 진짜 부지런하지? 그냥 집에 있는 김치로 김치전 부쳐도 됐는데, 여름에 비 오는 날은 그냥 정구지지짐이었던 것 같아. 근데, 좀 그랬어. 맛있고 다 좋은데, 항상 같이 다듬어야 하잖아. 요즘엔 좀 깨끗하게 나오는데, 그 때 부추는 막 사이에 벌레도 있고 그랬어. 으윽- 내가 또 그런거 싫어하잖아. 여튼 나는 그만하고 싶은데, 그만하자고 말하면 혼났어. 정구지가 많이 들어가야 맛있다고.
응- 그렇지. 그게 엄마한테 배운 수많은 우리집 요리 중에 하나야. 정구지 지짐에는 정구지 최대한 많이많이. 맛있잖아. 그지? 응? 그지? 아니, 먹을 만 한 거 말고. 맛있지 않아? 왜 맨날 자기는 먹을만 하다고 해? 맛있다고 하면 자존심 상해? 남자들이 그렇게 얘기하면 다시는 안 해 주고 싶은거 모르지? 맛있으면 맛있다고 하면 되지, 꼭 그냥 뭐, 먹을만해. 그러면 좀 기가 사냐? 치..
엄마가 홍합을 다지면 그 소리가 참 좋았어. 박자를 맞춰서 탁탁탁탁탁탁탁. 그래서 나도 다질 때는 꼭 그 박자 맞추게 되더라고, 응. 웃기지?
밀가루에 물 섞어서 주르륵 흐르면 다진 홍합을 넣고 한 번 섞고는 부추를 넣고 젓가락으로 살짝 뒤적뒤적 하셨어. 풀이 죽으면 맛이 안 살잖아. 팬은 꼭 좀 두꺼운 예전에 쓰던 후라이팬으로 했는데, 그게 바삭하게 된다고. 맞아맞아. 그 저번에 내가 집에 갔을 때 보여줬잖아. 응 그거야. 맞다. 그때도 엄마가 홍합넣고 정구지지짐해줬었지?
그 소리 너무 좋지 않아? 달군 팬에 기름 위에 밀가루가 툭 떨어지면 치이이이이이익 소리가 나잖아. 아우, 진짜 너무 좋아. 소리만 들어도 맛있는 것 같아. 아악. 그 소리가 나면 엄마가 동생을 불렀어. 쟁반에 막걸리랑 잔 두개를 올리고 가져가서 상에 올려두라고. 그리고 아빠한테 먼저 마시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셨어. 우리엄마랑 아빠가 꼭 우리 같잖아. 맨날 술가지고 싸우고,
지짐이 두장이 구워지면 엄마가 큰 접시에 그대로 가지고 나와서 먹는데, 이게 나는 원래 바삭바삭한 거 좋아하니까 겉을 돌려서 먹는데 꼭 그러면 아빠가 혼냈어. 밀가루만 먹는다고.
아빠랑 엄마랑 막걸리.. 아마 이동 막걸리였을 껄? 그게 제일 맛있다고. 뭐 여튼 막걸리로 쨘을 하면 동생이랑 나는 물로 같이 쨘을 했어. 응. 웃기지? 그 짓을 고등학교 때 까지 했다. 뭐. 나름 순수해 보이고 싶었나봐 엄마아빠한테,
...자기, 안되겠다. 우리 딱 한 장만 부쳐 먹을까?
막걸리 있나? 내일 아침에 붓진 않겠지? 안될까? .. 아니야. 괜찮아. 좀 늦게 자지 뭐. 오빠도 늦게 자. 저번처럼 바로 잠들면 안돼.
그러니까 오빠 배가 자꾸만 나오는거야.
막걸리 있지? 부추도 있고, 양파도 있고, .... 저번에 홍합살 사다둔거 있는데, 냉동고... 여기있다!
10분만 기다려 내가 빨리 만들어 줄께-
아니다. 오빠 내 옆에 있어. 나만 만들고 있으면 억울하잖아. 옆에 서서 노래라도 불러.
... 근데, 오빠네 집은 부추전을 뭐에 찍어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