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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진꽃화 Feb 23. 2018

05.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 엄마

엄마의 셀프리더십

몇 년 전, 유튜브에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라는 제목으로 올려진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어느 회사(캠페인 회사)가 구인광고를 내고,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면접 담당자는 구직자들에게 해야 할 일을 설명한다.


'대상에서 한 순간 눈을 뗄 수도 없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정해진 시간도 없으며, 휴식은 불가능한 직업. 협상, 인간관계, 의학, 재정 등 수십 개의 자격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일. 생명을 대신 희생하는 직업이지만 페이는 없습니다' 응답자들은 질문이 점점 많아질수록 고개를 젓는다. 이런 일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zOQEbDU9eHA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


그러고 보면, 엄마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필연적인 DNA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이에게 헌신할 수 있을까?


엄마는 생명을 잉태하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일을 해낸다. 그리고 생명을 성장시키는 가장 큰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그 일은 내 자녀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엄마'는 누구나 될 수 있고, 엄마가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라는 단어를 누구나 다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999년 7월 24일 오전 09시 01분, 26시간의 진통 후, 나는 남편을 꼭 닮은 딸을 낳았다. 그리고 2년 뒤, 아들을 낳았다. 첫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입을 오물거리자 그제야 나는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알았다. 얼굴이 누굴 닮았던 내 아이, 내가 낳은 아가였다. 아이와의 첫 만남은 떨림이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처음 엄마가 되어본 나는 아이를 안는 것도 아이를 씻기는 것도, 모든 것이 서툴렀다.  혹여나 아이가 열이 날 때는 마땅히 물어볼 곳이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는 지금처럼 아이의 양육에 대한 책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던 시절도 아니라, 아이의 양육은 오로지 친정 엄마에 대한 경험, 책 몇 권과 본능적인 감각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의 작은 숨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뿐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육아는 해볼 만한 것이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 생각지도 못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큰 아이, 딸은 동생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이었는지 아기처럼 점점 퇴행하고 더욱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는 분명 정서적 SOS를 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세 살 된 아이에게 어른의 모습을 강요하기도 했다. 남편이 사업상으로 출장도 잦고, 육아에 동참할 시간도 없었던 그때, 나는 혼자서 아이들과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맥박이 뛰지도 않을 것 같은 피곤 감으로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이면 다시 아이와의 생활들이 시작되었다. 그때처럼 외로운 때가 있었을까... 아무도 나의 편이 없는 것 같았다. 난 그때 산후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그때는 산후 우울증이라는 그런 단어조차도 없었고, '다들 그러니까 너만 유별나게 그러지 마'라는 분위기였다.


랑스럽던 아이들이 먹지 않아 고민하고, 잠을 자지 않아 고민하고, 감기에 걸려 함께 밤을 지새우며 병원을 뛰어가던 것이 엊그제 같다. 아이들은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중. 고등학교, 대학에 들어갔다. 그 나이가 겪을 만한 일들은 차례대로 겪어 나갔다.


처음 일어난 일은 늘 두려움이었다. 내가 잘 키우는 게 맞아? 큰 아이가 사춘기 때는 태도와 가치관에서 갈등을, 둘째가 사춘기 때는 경찰서까지 데리고 갔는데도 멈추지 않았던 거짓말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문제를 그때는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접근했을까. 많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이들은 성장단계마다 갈등의 변곡점을 찍으며 자라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갈등은 때로 서로를 성장하게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감을 느끼게 한다. 절망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부인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없다는 한계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부모로서 자녀 양육에 대해 공부를 하며, 이해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지만, 아이들은 수천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만나려고 했다. 시대와 문화, 그리고 세대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같은 문제도 늘 새롭게 느껴진다. 아이들의 사춘기, 나의 사춘기가 정점을 찍었을 무렵 <별난 자녀 마음 읽기>라는 스터디에  몇 달간 참여한 적이 있다. 누군가의 말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아이는 더 힘들 겁니다. 사춘기 끝은 있어요'.


다행스러운 것은, 문제와 갈등이라는 것은 삶의 시간에 비례하며 조금씩 노련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들 대부분은 실제로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문제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자식 문제만큼은 객관성이 결여된다.


건강한 엄마는 자녀를 양육하면서 스스로의 성장과 성숙도 함께 이루어 나간다.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긴밀한 애착관계를 유지하고 평소  스킨십을 자주 한다. 그리고 긍정적 자존감을 가지고 있어서 매사가 밝고 유쾌하다. 아이를 통해 자기의 부족한 점이 들추어지면 쿨하게 잘못을 인정한다.


문제가 있으면 회피하지 않고 지혜로운 해결점을 찾는다. 문제는 감정과 분리시켜 확대 해석하지 않는다. 자녀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책과 세미나를 통해 아이들과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연구한다.


그러나 아픔과 상처가 있는 엄마들은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하고 점점 자신의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자신도 모르는 왜곡된 자아상을 아이에게 투영시키거나 부정적인 정서적 대물림하기도 한다. 또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아이를 불안하게 만든다. 자존감이 낮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며, 아이들도 잘 인정하지도 않는다. 칭찬에 인색하며 감정표현도 서투르다.


특히나 불안한 환경에서 자란 엄마는 오히려 편안한 환경이 어색하다 그래서 강박 반복( 어릴 적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불안한 환경을 자꾸만 만들어낸다. 그것이 오히려 편한 것이다. 그런 상황이 인지되면, 자신이 한없이 싫어진다. 아마도 나는 후자에서 전자로 노력하는 엄마인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성장하는 중이다.


얼마 전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반찬거리 몇 가지를 보냈으니 잘 챙겨 먹으라는 것이다. 목소리가 밝지 않다. 부모인 당신들은 건강한데, 사위가 그렇지 않으니 목소리가 무거우신 듯하다.  '엄마 걱정하지 마, 심서방 잘 먹고 잘 자. 다음주에는 강원도에 자연치유 받으러 갈거야' 나는 유쾌하게 우리의 일상을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긴 한숨을 쉰다.


그렇다. 엄마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누군가의 엄마로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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