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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cos Dec 21. 2015

#03따뜻한 겨울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올 겨울

후우우우우우우우우우

크게 한숨을 내 쉬었다. 아니 숨을 내 쉬려면 더 큰 숨을 마셔야 하닌깐 들여마쉰것일지도 모르겠다. 점심에 먹은 보쌈쌈에 들어있던 마늘은 알싸한 입냄새로 변해 입 밖으로 나오다 이내 사라졌다. 이쯤이면 하얀 입김이 나와야 하는데, 아무리 쳐다봐도 하야무리 한건 보이지 않는다. 작년엔 입김을 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와 그에 알맞는 외로움에 대해 한탄했는데, 올래는 유난히 따뜻하다.


뉴스에선 슈퍼 엘리뇨와 이상기온 때문에 올 겨울은 유난히 따뜻하다는 방송이 나왔다. 나는 때문에라는 표현 보다 덕분에가 더 알맞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지구의 건강은 걱정하지 않는 환경 파괴자처럼 보일까봐서 생각을 잠시 접어두었다.


어릴때는 대한민국의 4계절을 자랑스러워 했다. 벛꽃의 봄, 바캉스의 여름, 낙엽의 가을, 하얀 겨울. 4색의 뚜렷한 계절의 차를 보여주는 나라는 지구본을 유심히 보아야 찾을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대한민국 영토를 벗어난 때는 스무 중반쯤이었으니 보기전엔 믿을 수 없는게 당연했다.


나이를 하나하나 먹으면, 온 몸의 감각들은 예민해진다. 추위를 느끼는 감각점은 더욱 더 날카로워지고, 더위를 느끼는 감각은 계속 짜증을 부린다. 하지만 반대로 시간을 느끼는 감각은 점점 무뎌져, 벌써 나이를 먹어버린 자신에게 통탄한 감정만을 선사한다. 이 모든 감각이 나에게 선물한 건 시원한 여름, 무지하게 더운 여름, 서늘한 겨울, 콧물까지 얼어붙힐 겨울로 변해버린 대한민국 두개의 계절이었다.  


연인과와 함께 보낼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날 미세먼지를 듬뿍 먹은 빗방울이 내리는 것을 원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추위가 싫다고 해서 그런 궁상맞고 우중충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것은 뭔가 뒤바뀐거랑 같았다.


그래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지. 집 안 모든 유리창에 붙여 놓은 뽁뽁이와, 옷을 겹겹히 입은 것도 모자라 목도리로 자신을 미라로 만들고, 서로의 손을 호호 불어가며 호주머니에 손을 포개어 넣는 연인하며, 미식축구선수 마냥 두터운 패딩으로 흉내낸 몸으로 명동거리의 스크럼을 뚫고 터치다운에 성공하는 사람의 모습이 내가 아는 겨울이었다.


다음에 내릴 눈은 매서운 한파와 같이 오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정말 추워져야 할 시기니 말이다. 캐럴노래와 노래를 알맞게 식혀주는 한파가 길거리를 감싸면, 어두운 밤 내쉬는 숨에서 자연스레 하얀 입김을 발견하겠지.


지내보니 따뜻한 겨울이라고 해서 외롭고 차가워진 마음까지 녹여주는 건 아니었다. 그럴꺼면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지는게 맞다. 겨울은 올해의 끝을 항상 마무리했다. 일년동안 반듯이 그리고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살포시 안아주고 싶었다. 새해의 보신각 종소리는 서로의 입김이 흩날리는 겨울의 추운 길거리 한복판에서 듣고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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