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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May 27. 2024

임신 12주 차의 기적?!

제발.. 오늘만 같아라

임신을 확인한 이후로 거의 두 달간은 지옥이었다. 무엇하나 편치 않은 상태로 누워만 지냈다고 보면 된다. 임신을 잠깐 후회하기도 하고, 괴로워 눈물도 흘리면서 간신히 버텼다.


10주 차 이후로 점차 체력과 컨디션이 올라왔지만 어제는 또 하루종일 미묘한 울렁거림과 속 쓰림이 계속되어 울상이었다.


오늘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12주 차 시작이었다! 입덧의 반전이 이때쯤부터 시작한다고 이야기 들었고, 16주 차는 거의 대부분의 임산부들이 입덧이 없어졌다 말하기에 설렘 가득한 아침이었다.


어제처럼 속이 울렁거릴까 봐 걱정은 되었지만 아침 컨디션은 굿!


웬일로 체력과 에너지가 평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남편도 아이도 없는 고요한 집에서 나만의 상쾌한 아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선 어제 남편이 끓였지만 영 맛이 안 난다는 미역국을 다시 간 맞추고 아침을 차려 먹었다. 내가 손댔지만 완벽 소생은 어려웠다. 좀 짠 듯한데 밋밋한 이상한 맛이었다. 쌀뜨물로 했으면 더 나았으려나? 너무 맛없는 고기로 끓여서 그런가?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요리재능 제로인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집안 대청소를 시작했다. 와! 이게 얼마만이야!!! 내가 이렇게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최신 케이팝 메들리를 틀어놓고 잔뜩 흥이 나서 신나게 청소를 했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환기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구석구석 내 손이 닿지 않았던 집안을 정돈해 나갔다. 남편이 내가 입덧과 하혈로 골골대며 누워만 있을 때 종종 청소를 하긴 했었지만, 남편의 청소는 뭐랄까... 최소한의 응급상황(?) 처리에 가까웠달까.


설거지가 쌓여 넘쳐서 더 이상 쓸 수저나 그릇이 없을 때 후다닥. 본인 입을 속옷이 없거나 수건이 없을 때 세탁기 돌리기. 건조기에 돌려놓은 옷들은 그다음 빨래가 들어가야 할 때 마지못해 꺼내는 그런... 상황.


난 누워만 있는 주제에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말도 못 하게 더럽고 지저분한 집을 그저 모른 척 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달간 방치된 집을 구석구석 청소하니 두 달 묵은 변(?)을 시원하게 몸 밖으로 내보낸 듯 그렇게 상쾌하고 짜릿할 수가 없었다.


집을 다 청소한 후에도 숨이 가쁘거나, 졸리다거나(분명 며칠 전까지 하루죙일 잠만 잤는데...), 입덧이 느껴져 괴롭다거나 하지 않았다.

 

와! 말도 안돼!!! 그래, 이게 바로 사람 사는 거지!!! 임신 12주 차의 기적이 따로 없네!!!!


나는 심기일전으로 요리도 했다. 요리재능+지능 제로지만... 바뀌기로 결심했다. 몇 주 전 친청에 요양? 갔을 때 ㅋㅋ 엄마가 해주신 집밥에 엄청난 힐링을 얻어서 나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관심도 없고, 먹는 것에 그다지 열정도 없지만.. 우리 이쁜 딸내미에게 따순 집밥 정도는 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우선 오늘 냉장고를 털어보기로 했다. 어제 남은 순대 체크, 쌀떡 체크, 양배추 체크. 오케이 떡볶이 가즈아!


레시피를 읽고 또 읽고 닳도록 읽고 떡볶이를 만들었다. 참 쉬운 레시피인데도... 난 왜 매 순서마다 확신이 없을까 하하하하.


그래도 레시피대로 따라 했더니 맛이 꽤 좋았다. 다만 이미 익힌 순대를 요리 중간에 넣었더니 엄청나게 불어 터졌다. 아... 익힌 순대는 그냥 나중에 다 끝나고 섞기만 해도 되었겠군... 이렇게 또 하나를 알아간다.


그 후에는 몇 달간 방치되었던 오트밀로 초코케이크를 만들었다. 이 레시피 또한 매우 매우 쉬웠다. 게다가 다이어트용 레시피라 설탕도 안 들어가고 매우 건강한 디저트였다.


요리라는 게 너무 번거롭고 귀찮게만 느껴졌는데 막상 해보니 나름의 재미와 뿌듯함이 있었다. 만든 떡볶이로는 점심, 저녁을 해결했고 초코 디저트는 저녁에 딸과 함께 먹었다.


딸은 초코디저트 비쥬얼에 기대를 하고 한입 먹더니 점점 깨작깨작. 건강레시피라 단맛이 거의 없었는데... 귀신같이 느끼고는 엄마 먹으라는 귀요미.


오후에는 한동네에 살고 있는 친언니와 간만에 산책까지 했다. 1분 걷는 것도 숨이 차던 나였는데 오늘은 15분~20분 정도를 쉼 없이 걸었다. 와.. 정말 다시 한번 오늘만 같아라!


밤에도 큰 입덧증상 없이 평온하게 시간이 흘렀다. 남편과 아이는 잠이 들고, 나는 조금 쌓인 설거지를 마저 하고 음식쓰레기까지 말끔하게 버리고 온 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두 달 만에 사람다운 삶을 다시금 누린 오늘을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임신 중기에 접어든다. 역시, 모든 고통과 괴로움도 끝이 있구나. 내일은 입덧이 다시 돌아올지 모르지만 계속 점점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기쁘게 오늘을 만끽하련다.


일상의 소중함. 잊지 말자. 행복은 내가 누리던 그 평범했던 일상 곳곳에 숨어 있었다는 것을!


제법 많이 큰 우리 호랭이 (11주 4일차 입체초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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