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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훈 Nov 28. 2021

따뜻한 말의 기억


  작년에 책 한 권을 냈다. 책이 얼마 팔리지 않았는지 출간된 이후로 편집자로부터 연락이 없다.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수익이 나지 않은 망작이었을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짙다. 오랜 노력과 고민과 생각이 어떤 물성을 갖춘 결과물로 완성된 것이니까. 그간 쓰는 사람이 되고자 꾸준히 애를 써온 내게 책은 하나의 마침표이자 계속 쓰게 만드는 디딤돌 같은 존재다. 


  어쨌거나 책을 냈다니 주변에서 여러 반응이 나온다.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있고 모래 먼지 맞으며 축구나 하던 얘가 글을 쓴다는 것에 신기해하는 이들도 있다. (의리로) 몇 권씩 사 준 친구들도 있어 무척 고맙다(그렇다고 내용 전부를 읽은 것 같진 않다). 책을 내고 받았던 여러 연락 중에서 유독 마음에 오래 남은 메시지가 있었는데 이전에 다니던 부장님으로부터 받은 카톡이었다.       


  송 작가 ㅋ 낯설다. 책 바로 주문 들어간다. 잘 살고 있어 고맙다.   



   

  부장님을 만난 건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첫 번째 회사에서였다. 같은 팀이긴 했지만, 업무가 달랐고 츤데레 성향이라 거리감이 느껴지던 선배였다. 그러다 인사 발령 시즌에 팀 내부적으로 업무가 조정되면서 함께 하는 일이 생겼고 몇몇 프로젝트에서 사수-부사수 관계로 일을 하면서 가까워졌다. 나는 부장님의 솔직하면서도 영리한 면이 좋았고 같이 있으면 이상하게 재미가 있었다. 부장님이 술을 드시지 못해 함께 술잔을 기울이진 못했지만 함께 담배를 태우고 식사를 하며 연이 깊어졌다. 


  그 회사는 2년 9개월 남짓 다니고 퇴사를 했다. 안정적인 대기업이었고 처우와 복지가 좋은 곳이었지만, 이십 대였던 나는 큰 회사의 작은 일이 아니라 크고 멋진 일을 하고 싶었다. 스스로 대단한 존재라고, 더 주도적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청춘이었기에 자의식 과잉이 아니었나 싶다.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부장님은 별 말씀을 하시진 않았지만 속으로 걱정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그냥 나가고 보겠다는 인생을. 퇴사할 즈음이었는지 아니면 부장님 생일 선물이었는지 또렷하진 않지만 김광석 리메이크 앨범을 선물하며 감사했다는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부장님과는 퇴사를 하고 나서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만났다. 같은 팀에서 일했던 선배, 후배 중에 마음이 맞던 사람들과 함께 모여 송년회를 하기도 했고 부장님이 지점장으로 발령이 나서 지점에서 근무할 때엔 매장을 찾아가 함께 저녁을 먹기도 했다. 그때마다 늘 얻어먹는 입장이었는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 작은 회사로 이직해서 벌이도 시원찮을 텐데 내가 저녁은 사줘야지. 라고. 변변치 않은 월급, 그렇다고 썩 전망이 좋은 것도 아닌 업계 분위기, 결혼, 출산 같은 사회가 정해놓은 시기에 지각하는 것이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퇴사를 하고 3~4년 정도는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만났지만 자연스럽게 빈도는 줄어들었다. 책을 출간할 즈음에는 한 2년간 뵙지 못한 상태였다. 책을 냈다는 소식도 부담스러우실 것 같아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종종 함께 모임을 가졌던 후배를 통해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책이 나온 지 이틀 정도 지났을 때 잘 살고 있어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주셨다. 그 말은 흔한 인사치레와는 다른 종류의 언어였다. 연락을 받던 때 나는 고속터미널역에서 환승하던 중이었는데, 9호선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올라 탄 기다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문자를 읽었다. 천천히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처럼 내 눈과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잘 살고 있어 고맙다니. 잘 살고 있어 고맙다니. 부장님의 진심 어린 응원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누군가를 사심 없이 응원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나는 누군가의 경사를 부러움이나 시샘 없이 온전히 기쁘게 받아들였던 적이 있었던가? 글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런 순수한 마음에는 애정이 담겨있다는 것.  


  부장님과는 연락을 주고받은 지 며칠 후에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번에도 얻어먹는 입장이었다. 식사를 하고 부장님의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가 된 적이 있었을까?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 군불처럼 오래도록 따뜻함을 전해준 적이 있었을까? 잘 떠오르지 않았다.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내게 소중한 사람들,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들에게 내가, 또 나의 말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앞으로 그런 마음을 조금 더 자주 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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