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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훈 Oct 24. 2022

8월 30일 화요일 : 입원 5일 차

  중환자실 침대 정면에는 커다란 창이 있다. 내 침대 위로는 심장 박동수, 산소 포화도, 혈압 등이 표시되는 모니터가 있고 간호사들은 이 창을 통해 나의 상태를 확인한다. 문제가 있다면 이 커다란 창으로 사무 공간의 형광등 불빛이 24시간 그대로 들어온다는 것. 하얗고 강렬한 빛 때문에 안 그래도 불편한 잠자리가 더 불편하다. 혹시 중환자실에 입원할 일이 있거든 꼭 안대는 꼭 챙기길 바란다. 이딴 걸 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간밤에 간호사 여럿이 특정 병실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의 보호자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위생모와 방역복을 입고 잰걸음으로 내가 있는 병실의 창문 앞을 지나갔다.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단 걸 직감했다. 곧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를 연신 부르는 소리와 울음이 섞여 몇 분간 이어졌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하늘나라로 떠난 모양이다. 1인실이다 보니 다른 환자를 마주칠 일이 없어 여기가 중환자실이라는 감각을 잃어버렸는데, 구슬피 우는 소리에 이곳이 죽음과 제법 가까운 중환자실이란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오늘도 담당교수를 아침 9시에 만났다. 폐 X-레이 사진을 보니 많이 깨끗해졌다고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폐 쪽은 회복이 더디다고 들었는데, 하루 사이 급격히 호전이 됐나 보다.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나서 X-레이 사진은 하루에 네댓 번은 찍는 것 같다. 이동이 가능한 설비가 있어 나는 누워 있기만 하면 된다. 담당자가 와서 내 등에 철판을 댄 다음 사진을 찍고 떠난다. 

  담당 교수는 호전되는 모습이 분명하게 보이니 앞으로도 동일한 치료법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심근염과 폐렴의 원인에 관해서 아직까지 밝혀진 건 없다고 한다. 어제 한 내시경 검사를 바탕으로 몇 가지 더 검사를 해볼 테지만, 그간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뚜렷한 원인을 찾긴 어렵다고 한다. 일반 병실로는 내일, 퇴원은 이번주 일요일쯤 예상된다는 말도 들었다. 일반 병실로 간다는 이야기에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가는구나! 어서 내게 스마트폰과 배변의 자유를 달라!


  일반 병실에서는 보호자 1인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아내는 간호를 위해 오늘 PCR 검사를 한 번 더 받을 것이다. 월요일에 일반 병실로 간다는 말이 있어 일요일에 받았었는데, 일정이 늦어져 한 번 더 검사를 해야만 한다.  

  내일 아내를 만나니 사람의 형상을 갖춰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담당 간호사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선생님, 저 머리를 감고 싶은데, 방법이 있을까요?”

  그녀는 알아보겠다고 답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란색 세발기와 물주머니를 가져왔다. 파란색 세발기는 튜브 같은 재질이며 갓난아이를 위한 간이 수영장처럼 생겼다. 간호사는 세발기를 내 무릎 위에 두고 물주머니를 링거 거치대에 걸었다. 물주머니 끝에는 호스가 이어져 있고 그 끝에는 물이 나오게 하거나 멈출 수 있는 꼭지가 있다. 머리에 살짝 물을 묻히자 미끄덩한 느낌이 두 손에 오롯이 전달된다. ‘아차차, 뭘로 머리를 감지?’ 당황해하자 간호가가 다가온다. “머리 감겨 드릴까요?” 묻고는 일회용 샴푸로 비누칠을 해준다. 그리고 내가 꼭지를 열어 머리를 헹구는데, 물주머니의 물이 턱없이 부족했다. 머리에는 비누 거품이 그득 남아 있었다. 다 헹궜냐는 간호사의 질문에 물주머니를 하나만 더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두 번째 물주머니를 다 쓰고도 충분히 헹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매번 부탁만 하는 것이 미안해서 다 했다고 대답했다. 이 간호사가 내 첫 번째 대변을 치워 준 사람이라 그런지 계속 송구한 마음이 든다. 덕분에 머리는 더 떡졌다...      


  대학병원 간호사는 3교대로 근무한다. 첫 타임 근무자는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고, 두 번째 근무자는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세 번째 근무자는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병실을 지킨다. 어떤 패턴으로 근무를 짜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병실에 누워 있으면 자연스럽게 여러 간호사를 만나게 된다. 키는 작지만 단단함이 느껴지는 간호사, 통통하고 푸근한 인상의 간호사, 임신 중인 간호사, 조용한 간호사, 오지랖이 넓은 간호사, 애교가 많아 동료들에게 귀여움을 떠는 간호사, 이곳에서 가장 경력이 오래된 듯 여유로운 간호사 등등. 이들의 일은 나 같은 환자를 향해 있다. 그래서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는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치료하는 일에 책임감과 보람을 느끼며 일한다. 이런 사람들은 링거 주사를 놓을 때도 세심하게 신경 쓰고 링거 줄도 테이핑을 해서 말끔하게 정리해준다. 불편하거나 필요한 건 없는지 틈틈이 물어보고 바깥에 있는 보호자의 소식도 자주 공유해준다. 일의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일이란 밥벌이의 수단일 뿐이고 매일이 버티는 과정일 것이다. 어떤 간호사는 간호사로서 일하는 게 어떠냐는 묻자 지겹다고 답했다. 내 눈에도 그래 보였다. 매일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건 어지간한 마음가짐이 아니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지루함을 얼굴에 드러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꾸역꾸역 삼키며 매일을 살아간다. 

  나도 비슷하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땐 의욕과 욕심이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영혼을 잃었다. 일에서 의미를 찾기보다 저녁과 주말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누군가가 내 얼굴을 본다면 아마 지겹다고 대답한 간호사의 얼굴과 비슷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 일에 관한 마음가짐을 잘 가다듬어야겠단 생각을 자주 한다. 내 마음속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어떤 사람은 자기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야 잘 살 수 있다고 하지만, 내 안에는 월급 루팡, 양아치, 떼쓰는 아이, 베짱이 같은 놈들만 있는지 일하기 싫어, 하는 척만 하고 놀래, 남한테 미룰래, 따위의 말만 늘어놓는다. 그런 유의 말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마음의 소리를 끄고 돈을 받았으면 밥값은 하자는 이성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비록 뜻대로 잘 되지 않고 자주 무너지긴 하지만.       


  저녁 무렵이 되자 간호사가 일반 병실 입원료 표를 보여주며 병실을 선택해달라고 말했다. 1인실은 40만 원이 넘고 100% 본인 부담이다. 깜짝 놀라 중환자실 입원료를 보니 30만 원이 넘는다. 그래도 다행히 건강 보험 적용이 돼서 본인 부담액은 6만 7천 원 수준이다. 일반병실 2인실은 본인 부담금 7만 원 대, 3인실은 4만 원 대길래 2인실로 부탁했다. 간호사는 상황에 따라 우선 3인실로 배정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어서 답답하고 고된 중환자실에서 탈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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