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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니어 Jul 08. 2019

존재의 무게

나 말고 누가 나 좀 책임져 줬으면


지난주, 짧은 인턴 기간을 마치고 퇴사했다. 정규직 제안을 걷어 차 버리고 말이다.

왜 그랬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쩔 수 없었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가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바로 그 밀레니얼 세대, 

그 밀레니얼 트렌드에 뛰어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인류학과 철학.

도통 돈과는 관련도 없는 공부만 하던 내가 회사원이 되려고 했던 것은 순전히 독립 때문이었다. 

이름만 대면 아는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도 싶었고. 

물론 그런 포부는 모두 물거품이 되었지만, 어쨌든 기를 쓰고 비집고 들어간 평범한 회사의 인상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자취 생활을 근 10년을 채워가지만 내 돈으로 월세를 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남들은 첫 월급에 친구들과 진탕 술을 마시거나 비싼 옷을 사본다고 들었지만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월세와 공과금을 계산해 자동이체를 신청하는 일이었다. 


포근한 조명으로 감싸진 내 방을 볼 때마다, '아 그렇군 이 맛에 돈을 버는 것이군' 싶었다. 

난생처음 나의 생활을 온전히 내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그런 단단한 느낌이 좋았다.

이제 나의 선택을 누구도 관여하지 못한다는 생소한 형태의 '자유'는 시원하고 유쾌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예의 그 '위장된' 자유는 나를 얽매는 새로운 족쇄가 되어버렸다. 

평범한 회사는 거대한 무능을 드러냈고, 동료들의 가식적인 친절마저도 금세 동이 나 버렸다. 

그제야 나는 내가 '나의 생활을 온전히 내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를 이 알지도 못하는 단체와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에게 위탁해 버리고는 편한 대로 기댄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일을 시작하고 3개월이 지나, 운명인지 장난인지 모를 것이 결국 이 수상쩍은 상태를 뒤집어엎었고

내 소속팀은 공중분해되어 버렸다. 계약 기간이 남아 그저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어야 했던 시간 동안 

위탁 분실물처럼 내팽개쳐진 나는 '이제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만 끌어안고 있었다. 


돈을 버는 것 만이 '독립'의 시작인 줄 알았는데,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존재를 짊어진다는 것은 다달이 통장에 찍혀 나오는 숫자들로 보증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고작 3개월 만에 깨닫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 마저도 없던 시절에는 너무나 절박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있으니 일단은 앉아 있으라는 어처구니없는 계약 연장 및 정규직 전환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내가 미쳤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안 되겠습니다 라는 대답밖에 나오질 않았다. 

여전히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명확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앉아서 답을 찾아보는 방법이 더 '안정적이고 합리적'이었는데도. 


위탁 분실물 센터에 앉아 있는 내 존재에게 해야 할 일을 찾아줄 때까지 기다릴 만한 참을성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팔자에 촘촘히 박힌 역마살이 난리를 피운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나도 내가 이해가 안 가긴 한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분실물 센터에 버려져 있던 나의 존재를 주섬주섬 들쳐 메고는

회사를 뛰쳐나와 버렸다. 


오랜만에 어떤 단체의 이름도 없이 온전히 짊어진 나의 존재는 이전과 같이 묵직하고 암담하지만

그래도 일단 글은 쓰고 있지 않은가.


어찌 됐든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잘해 봅시다.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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