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알을 품고 있는 상태는 정지가 아니다
퇴사 선언 일주일 차, 본가로 소환 조치를 당해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갔다.
얼마 전 10년도 더 된 부엌을 리모델링했다며 기뻐하던 엄마의 전화를 떠올리며 집에 들어서자 쇼룸처럼 번쩍거리는 상부장과 하부장의 향연이 눈에 폭격을 퍼부었다. 내 방 벽지도 새로 도배를 했다던데.. 과연..! 하며 기대에 부풀어 올라간 이층은 그러나 눈부심의 폭격이 아니라, 지저분한 빨래 폭격을 맞은 상태였다.
방학이라 부모님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생이 상주하고 있었던 것.
작년, 반수를 하겠다며 재수학원에 들어갔다 나온 동생은 어쩐지 핏기가 쭉 빠진 얼굴로 신입생 생활을 보내고 있다. 수척해져서는 무엇인지 모를 것에 잔뜩 성이 난 듯 보라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오거나 거대한 호랑이 자수가 박힌 블루종을 여기 저기 던져 놓는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막둥이 동생이라 소중한 내 방을 저 난리통으로 만들어 놔도 화가 나기 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하지만 하해와 같은 누나의 마음을 동생이 알 리가 만무하다.
힘들까 봐 걱정돼서 그러지.라고 말하면
누구나 힘든 게 당연한데 왜 쓸데없이 걱정을 해! 걱정 해서 더 힘들다고! 라며 소리를 지르거나
너도 힘들었겠구나.라고 말하면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데? 라며 투덜댄다.
어휴.
그런 동생을 보면서 엄마한테 나도 저랬어? 하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끄덕하신다.
아니 그래도 쟤가 더 심하지 않아?라고 되물으니, 이번에는 절레절레 휘저으신다.
나는 머쓱해져서 내가 잘못했네 미안해 엄마, 몰라서 그랬어라며 비는 시늉을 한다.
누나, 나는 뭘 해야 될지 몰라서 학교까지 그냥 세 시간을 걸어간 적도 있어.
힘든 이유가 없는데 힘든 거 같아서, 뭐가 힘든지도 모르겠어서 힘들다고 말하지도 못하겠어.
유전자는 생각보다 힘이 세서, 할 일이 없어 답답해 죽으려고 하는 동생을 보고 있으면 지난 날의 나를 그대로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열중할 것을 찾고, 목표를 정해서 죽어라고 달려가는 것의 흥분과 재미를 왜 모르겠나. 입시 생활 좀 박력있게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고, 그게 아니어도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엄청난 희열을 준다. 명확한 목표가 있었던 십 대와 달리 이십 대는 어떤 방향도 없다. 돛대를 펼쳐 보지만 등대는 보이지 않고 망망대해에서 열심히 노라도 젓고 싶지만, 방향 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그냥 '그런 시기'인 것이다.
새가 알을 품고 있는 상태는 정지가 아니다.
매일 같이 한숨만 쉬는 나에게 저 문장을 직접 또박또박 쪽지에 적어서 손에 쥐어 준 친구도 있었다. 아마 앞이 보이지 않는 이십대의 그녀 자신에게도 하고 싶었던 말이었겠구나 싶다. 산송장 처럼 빛이 들지 않는 반지하 자취방에서 잠만 자던 시기, 답답한 마음에 찾아 간 학과 교수님의 사무실에서 '왜 왔니?'라고 묻는 그 한 마디에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답한 것은 '저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였다. 다정하고 현명하신 교수님의 대답은 심플하고 명쾌했다. '아무것도 하지 마. 쉬어. 그래도 돼.'
그런 수많은 말들이 생각났다. 나의 '그런 시기'를 어떻게든 도와주려 했던 사람들의 다정하고 현명한 수많은 말들이 말이다. 그러나 한 숨을 쉬는 핏기 없는 동생에게 나는 아무 말도 더 붙이지 않았다. 그 누가 하는 말도 들리지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전부 지나고 나서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기차역으로 나를 데려다주시는 부모님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 그래서 구직활동은 언제쯤 다시 할 거니- 물어보신다. 나는 어쩐지 미안하고 우스운 기분이 되어 - 삼 개월 정도 더 준비하고 제대로 시작할게요, 지금도 계속 괜찮은 자리 있는지는 확인해 보고는 있어요- 하고 나름 노련미 있게 대답한다. 엄마 아빠는 아직도 내 눈치를 보신다. 엄마 아빠의 걱정이 나를 더 힘들게 할까 봐서.
한 마디 더 붙이고 싶지만 마음속으로만 대답한다.
걱정 마세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