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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훈 해설위원 Dec 01. 2019

삶은 그 자체가 감동이다

"건강하고 행복하시고 복 받으십시오"

오늘 KTX 광주행 기차 안에서 처음 뵙는 분에게 받은 축복의 인사말을 받았다. 그 말씀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이렇게 글로 남겨볼까 한다.

오늘 광주광역시 H중학교 특강이 있는 날이다. 원래 계획은 수소 전기차 넥쏘를 타고 갈 예정이었지만 비가 온다고 해서 KTX로 맘을 바꾸었다. 수소 전기차로 장거리를 가려면 마치 한 세기 이전 프로펠러 비행기로 대륙횡단을 하듯 중간 기착지와 항로를 설정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나름 그 재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칫 폭우 속에서 강연 시간에 늦을 수 있어 이틀 전 기차를 이용하는 것으로 맘을 바꾸었다.

오전 7시 17분 출발 열차에 몸을 싣고 한 정거장 더 나아가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내 주변이 다소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는 서울역이니까 그런가 싶었는데 내 옆 통로 쪽에 우비를 입은 어떤 분이 멈추어 섰다. 정확히는 두 사람이었다. 서울역에서 근무하는 공익요원과 어떤 중년 여성분. 노란색 비옷에 선바이저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고 참 신기하게도 비닐봉지 같으로 얼굴 윗부분 즉 눈두덩과 머리 쪽으로 모두 감 싸매고 있었다. 이 분이 공익요원의 안내에 따라 안쪽으로 들어오시려고 하길래 일어서서 비켜주었는데 몸이 좀 불편하신지 아주 천천히 손으로 의자 쪽을 더듬으며 자리로 이동한다. 다시 내가 착석을 했는데

"제가 좀 불편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길래 다시 보니 옆에 흰 지팡이가 보였다. 아 시각장애인 시구나. 그런데 비가 오는데 이렇게 이동하는 게 힘들지 않을까. 어쨌든 자리에 잘 앉으셨으니 별 일 없겠지. 이런 생각들이 서울역을 출발해 속도가 붙기 시작한 KTX 마냥 휙휙 지나갔다.

오늘 있을 H중학교 특강. 원래 1시간 30분 한 클래스 강연이었는데 아이들 수업 시간에 맞추느라고 45분짜리 두 개로 늘어났다. 내 입장에선 45분이나 90분이나 에너지 소모는 똑같기에 원칙적으로 2회분을 받아야 하지만 뭐 학교 측 사정도 생각해야 하기에 그냥 1회분만 받는 걸로 했다. 하지만 짧아진 강연 시간에 맞추어 강연용 키노트를 손봐야 하니까 맥북을 꺼내서 강연 자료를 손봐야만 했다. 어느 정도 완성이 될 무렵 옆자리에 앉은 분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분은 자리에 앉은 상태에서도 비닐봉지로 얼굴 윗부분을 계속 가리고 있었고 선바이저 달린 모자도 계속 쓴 상태였다. 어떤 치료를 받고 물이 닿으면 절대로 안 되는 상황인지 아니면 어떤 심미적 문제인지 내가 알 방법은 없었다. 가끔 휴지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치고 비닐봉지 안으로 땀을 닦아내기도 했다.

뭔가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먼저 말 걸어도 되나? 혹시 실례 아닌가. 키노트의 저장버튼을 누르고 이미 업무는 끝났지만 말을 걸어야 할지 어떨지 고민에 빠졌다. 일단 타케우치 마리야 '플라스틱 러브'를 유튜브로 재생시켜 놓고 좀 들어본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저음과 고음을 오가며 직조해낸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넘었지만 명징함이 사라지지 않은 명곡을 다섯 번 정도 들었을 때 기차는 공주역을 지났고 그즈음부터 옆에 계신 분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폴더형 휴대폰을 꺼내서 버튼을 누르자 음성안내로 시간이 나왔다. 그걸 확인하자 양 손으로 창가를 만지고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어떤, 무언가를 확인하려고 했다.

이때다 싶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전 광주 송정역까지 갑니다.
혹시 어디까지 가시나요?"

"......"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아, 내가 실수한 걸까. 아니 못 들으셨나? 다시 한번 용기를 내봤다.

"전 광주 송정역까지 가는데요. 혹시 어디까지 가세요?"

"......"

역시 대답이 없다. 아 이런, 아뿔싸. 낭패감이 마치 빗물에 젖은 운동화 밑창처럼 스멀스멀 기어 올라고 하는 그때

"저한테 말씀하신 건가요?"

"!.... 네. 그렇습니다. 혹시 어디까지 가세요?"

"네. 저도 광주 송정역까지 갑니다"

"아 그럼 혹시 내리실 때도 승무원께서 도움 주시는 건가요?"

"네?"

"승무원께서 도움을 주시냐고요?"

"네. 그렇습니다"

"네. 혹시나 해서 여쭤봤고요. 혹시 제 도움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그리고 지금 8시 50분이고요. 광주 송정역 도착은 9시 37분입니다."

"혹시 지금 밖에 비가 오나요?"

"아 잠시만요. 지금 살짝 터널에 들어가서...... 아 날씨는 흐린데 비는 오지 않네요"

"네."

대화가 끝나고 잠시 후에 승무원이 나타났다.

"손님. 광주 송정역 도착하면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안내방송 두 번하고 이 자리로 올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다시 약간의 시간이 흘러가고 이분께서 선바이저 모자를 벗고 얼굴에 감았던 비닐봉지를 푸시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날 바라보시며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정중하게 인사를 해주셨다. 그런 인사말이야 그냥 얼굴을 안 보고 하셔도 되고 굳이 어떤 모자를 안 벗으셔도 되는데 나한테 어떤 예의 같은 것을 차리고 싶으셨나 보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기차가 정읍을 통과했다. 이 분이 다시 분주해졌다. 계속 시간을 확인하고 손바닥으로 의자와 테이블을 훔치며 어떤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게 보였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고요. 저도 내리게 되니 미리 제가 말씀드릴게요"

기차가 광주 송정역으로 다가섰다.

승무원이 안내방송을 시작했다. 아마 이때쯤 해서 저분의 갖고 있는 불안감을 최고치를 달릴 것이다. 혹시 못 내리면 어떡하나 라는. 아마 이전에도 이런 상황 속에서 낭패를 당한 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일단 상황을 설명해드려야겠다 마음먹었다.

"곧 도착하고요. 지금 저희 앞 칸 통로에 승무원이 안내방송을 하고 계세요"

"어디 있다고요?"

"저희 바로 앞 칸이요. 아마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아 네"

"아 이쪽으로 오시네요. 잠시만요. 제가 먼저 비켜드릴게요"

(승무원) "손님. 이제 내리시죠. 제 팔 잡으세요"

"승무원님. 역에서도 이분 보살펴주실 분이 계신 거죠?"

"네. 저희 직원 나와있습니다"

"아. 네.."

이분이 승무원 팔을 붙잡고 좌석을 벗어가는 선간 오른손 검지 끝으로 내가 있는 쪽으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서있는 방향 쪽을 향해 쭉 내밀더니 나를 살짝 치시더니

"건강하시고 복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아.... 네. 고맙습니다"

일단 여기서 작별인사는 끝났지만 아직 내가 맘을 놓을 때는 아니었다.

광주 송정역에서 내리는 사람이 많았다. 통로 쪽 출구는 굉장히 붐비고 있는 상황.

두 사림이 주춤거리며 출구 쪽으로 나아갈 때 뒤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따라갔다.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앞서 몇 사람이 내렸고 이제 이 분 차례. 너무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서 계단을 밟기 시작한다.

시합 중 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경험.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걷게 되었을 때 그리고 명동으로 나갔다가 좁고 기다란 난간도 없는 계단 앞에서 느꼈던 좌절과 공포가 떠올랐다.

바쁘고 분주하긴 하지만 혹시 누가 늦게 내린다고 타박을 하면 이분 마음이 너무 아프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일단 내가 출구 쪽을 막고 일행 인척 했다.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행히 역시 그런 분들은 없었다.

아폴로 11호 달 착륙선이 월표면에 내리듯 착륙하듯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 아주 천천히 무중력 상태처럼 천천히 플랫폼에 발을 내디뎠고 이후 내가 내렸다. 이후 승객들이 흔들린 코카콜라처럼 쏟아져 내렸다.

플랫폼에서 다른 역무원이 이분을 안내했고 나는 계단을 이용해 먼저 올라갔다. 역무원과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분이 택시 승차장까지 이동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 밖으로 나와 바나나 우유를 마셨다.

아뿔싸. 바나나 우유는 기차 안에서 마셔야 되는데 이걸 이제야 밖에서 마시다니.

후회가 보를 해체한 4대 강처럼 밀려왔다.

"건강하시고 복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낯선 사람이 낯선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축문이다.

낯선 사람이 낯선 사람에게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축문이다.

내가 한 것이라곤 그분의 삶에서 약 30분 남짓동안 약간의 불안감을 덜어드린 것 밖에 없다.

하지만 그분은 나에게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고마운 감사의 말씀을 남겨주셨다.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40대의 나이에도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고

오늘은 약간 이나마 힌트를 얻은 하루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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