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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May 16. 2022

너무 좋습니다

with. 류은숙_<아무튼, 피트니스>


어떤 동작을 몸이 익히는 순간은 숱한 반복 후에야 찾아온다. 트레이너는 그 반복을 함께 버텨주는 사람이다. 안 될 것 같고 꽉 막힌 것 같은 동작이 확 뚫리는 순간이 찾아올 때, 그 순간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성취 자체만큼이나 기쁘다. ‘이 정도밖에 못해?’ ‘일을 이따위로 해서 되겠어!’ 타박이 넘치는 세상에서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잘하셨어요’라고 돌아오는 칭찬, 어릴 때 고무도장으로 ‘참 잘했어요’를 네모 칸에 채워가던 기분이 난다. 그런 도장을 매번 말로써 찍어주는 동행이 있어 참 좋다.


류은숙_<아무튼, 피트니스>




어제 읽은 어떤 책에는.


운동은 지금 당장은 고통일 수 있지만 건강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미래의 쾌락을 위한 현재의 투자라는 문장이 있었다. 운동하지 않는다고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지내다 보면 결국 몸이 아프기 시작할 거라는 문장도.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나는 너무 잘 안다. 몸이 아프고 나서야 떠밀리듯 운동을 시작했으니까. 


솔직히 과거의 나는 운동을 뭘 배우면서까지 하나, 하는 무지를 기반으로 한 PT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비싼 돈을 써야 하는 부담감도 물론 있었고. 그때, 그렇게 무지했던 나에게 먼저 운동을 시작한 친구는 들이붓는 병원비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병원은 잃은 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돈을 쏟아부어야 하고, 운동은 현재의 상태에 무엇인가를 쌓아가면서 돈을 들이는 것이라고, 어떤 것에 돈을 쓰는 게 가치가 있겠냐고 말이다. 그때도 지금도 격하게 공감하는 말이다. 사람은 뭐든지 해봐야 안다. 병원비와 PT수업비, 둘 중 하나를 써야 한다면 이제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후자를 택할 것이다. 


친구 덕분에 다행히도 사람의 몸을 정확히 이해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의 능력을 끌어내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좋은 트레이너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의 나이가 나보다 얼마나 어릴까? 묻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이 아니니까. 전문가의 가르침을 신뢰하는 것, 중요한 건 그런 것일 테다. 그렇게 지금의 선생님과 2년이 되어간다.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에서 전문가인 선생님에게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제자의 마음이란 나이와는 상관이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PT 수업 중 내 동작이 정확할 때, 잘 안되던 동작들을 해낼 때 저자의 트레이너가 하는 말이 "잘하셨어요"라면, 나의 트레이너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것이다.


 "너무 좋습니다"


버겁던 무게들이 조금씩 견딜만해지고, 다시 또 견딜 수 있는 무게들이 늘어가는 일. 그건 무수한 시도와 연습, 오래 나쁜 자세로 살아와 흐트러진 자세를 정확한 자세로 바꿔가는 지루한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런 과정들의 모든 순간에 바로 이 문장이 있는 것이다.


"너무 좋습니다"


나는 가끔 내가 이 한 마디를 듣겠다고 버틸 수 없는 순간에도 버티고, 혼자서는 들 수 없는 무게도 들고, 동작의 정확함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 선생님의 한마디, "너무 좋습니다"는 문장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타박이 넘치는 세상에서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아낌없이 주는 칭찬이라는 점에서, 결과만 보는 사람들과 달리 지난한 그 결과의 과정을 함께 버텨준다는 점에서 더 큰 성취감과 희열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어쩌면 인생도 감당할 수 있는 운동기구의 무게를 늘려가는 일과 같지 않을까. 선생님이 요구하는 동작들을 가까스로 수행하고 따라가는 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인생의 짐은 언제나 연습도 없이 단번에 들어보겠다고 하고, 또 금방 포기하고 주저앉아 울어버리고. 인생의 힘듦도 오늘 들어보고 안 되면 내일 다시 들어보고, 다른 운동들로 근육을 만들고 또다시 시도해 보고,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그러다 보면 올바른 자세가 어떤 건지 알게 되고. 그렇게 조금씩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힘듦과 삶의 무게가 늘어나는 거 아닐까. 나를 모르고 무턱대고 들면 다치기만 하는 법이다. 운동도 사는 일도. 


이제 나는 '할 수 있다'는 정신력만으로는 모든 걸 버틸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이 삶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게 먼저다. 물론 삶은 노력하면 정확하고 정직하게 딱 그만큼 몸이 좋아지는 보상으로 돌아오는 운동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거라는 믿음으로 살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러니 운동에도 삶에도 요즘 내가 매일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이것이다.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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