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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Feb 07. 2022

삶의 모든 순간들

with. 정미경_<가수는 입을 다무네>

쌔삐는 말했지. 삶에는 점프 컷이 없다고.
「인간극장」이 누군가의 삶의 한 토막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고.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엔 사정없이 잘려 나간 삶의 조각들이 쌓여 있다고.


정미경_<가수는 입을 다무네> (p.276)






가끔 이 문장을 생각한다. 주로 관찰 예능들을 볼 때, SNS의 사진 한 장을 볼 때 떠오르곤 하는 문장이다. 보이는 것, 보여주는 것들이 그 사람의 전부라는 착각이 들 것 같은 순간에.


독서법 책들을 보면 책을 대강대강 읽어도 좋고, 건너 뛰어가며 읽어도 좋고, 순서를 지켜 읽지 않아도 좋고, 읽다가 그만둬도 좋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세상에 읽을 책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니까. 하지만 나는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은 되도록이면 끝까지 읽어보려 노력하는 편이다. 집어던지고 싶은 유혹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책은 마지막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빛나는 한 문장이 어디 숨어 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물론 재미있고 잘 쓰인 책을 읽는 일이 더 즐겁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책들에도 멋진 문장이 숨어 있을 수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그 한 문장을 발견하기 위해 지루한 독서를 하기도 한다.


삶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보이는 모습들로만 사람을 판단하기에는 사진과 사진 사이에, 동영상과 동영상 사이에 훨씬 많은 삶들이 존재하고, 그렇게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듯한 장면들 사이에 사실은 가슴 뭉클한 장면이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 잘 다듬어진 프레임의 바깥쪽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진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을 잃었다면 그 퍼즐을 완성할 수 없듯, 여러 가지 이유로 무수히 잘려나간 장면들 없이는 삶도 완성할 수 없는 것 아닐까? 결국 지루하게 흘러간 하루라거나, 잊고 싶은 기억만 가득했던 어느 날과 같은, 무의미하다고 무심히 버리려 하는 삶의 조각들, 그 조각들로만 결국 나를 완성할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무수한 조각들을 다 기억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삶은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삶을, 어떻게 사는 삶을 완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완성이 의미는 있을까? 치매로 많은 기억들을 잃었던 아버지의 삶은 그렇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생각해보면 삶에서 완성이라는 단어는 무의미하다. 그저 살아갈 뿐. 다만, 지루한 책을 끝까지 읽듯 누군가의 삶도 내 삶도 천천히 최대한 들여다보고 싶다. 지루함 속에 보석 같은 한 문장을 찾아내듯, 여러 가지 이유로 잘려나간 삶의 순간들 사이에서 감동을 찾아내고 싶다. 중요한 건 스쳐 지나가는 시간들 속에서 의미를 만들고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버려도 좋은 삶의 순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나의, 버려진 삶의 장면들, 스쳐 지나간 생의 조각들은 모두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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