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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Mar 06. 2022

우리가 비록 그저 그런 인생을 살지만

with. 권혜진_<피프티 피프티>


오십에 집도 없고, 경제력도 변변치 않고, 딱히 해놓은 일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믿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건, 정말 외로운 일이다.


권혜진_<피프티 피프티>




며칠 전 친구가 요즘 말로 '현타'가 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열심히 살고, 사치를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돈이 모이질 않는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다가 나도 같이 한숨을 만들었다. 우리는 오십을 향해 가고 있는데, '집도 없고, 경제력도 변변치 않고, 딱히 해놓은 일도 없'으니 경제적 문제에서 한 번씩 마음이 움츠러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젊어 생각에는 사십에는, 오십에는, 늙어서는 지금과 다를 거라는 패기라도 있었다. 이제 희망은 온데간데없고 언제까지 이렇게 돈이 없을 거냐고 한탄하는 날이 많아졌다. 한탄의 시간에 나이라는 세월이 더해지면 좌절은 두배가 된다. 


잘 지내다가도 왜 더 열심히 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하는 날이 있다. 조카 생일에 근사한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마음 앞에 갑자기 소심함이 발동하거나, 친구가 어려운 형편일 때 흔쾌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혹은 꼭 필요한 물건을 사면서도 사치가 아닌가 며칠을 고민하는 나를 자각하게 되는 날에는 어김없이 과거의 나를 불러 좀 더 잘 살 수 있지 않았느냐고 타박한다. 물론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커다란 부분을 표현하려면 보이고 만져지는 무엇인가도 중요하다는 걸 사람들이 내게 해 준 것들로 알게 되었으니 최대한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을 뿐이다. 


친구와 농담인 듯 아닌 듯 서로의 사정과 한숨을 섞고 돌아온 날 밤에 이 문장을 읽었다. 그래, 적어도 나는 외롭지는 않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속에 엉켜있던 한숨들이 모두 풀어졌다. 나이 들어 집도 없고, 여유 있게 쓸 돈을 쌓아놓지도 못했고, 대단한 커리어를 만들지도 못했다. 그런데 나는 오늘처럼 나를 숨기기 않고 이야기해도 괜찮은 친구가 있고, 아프다고 전화하면 달려와 주는 친구들도 있고, 매 달 이모 커피 값이라며 용돈 보내주는 조카도 있다. 생각해 보니, 혼자의 삶 곳곳에서 마음을 기대고 믿으며 안도한 순간들이 꽤 많았다. 사는 동안 경제적인 부담감은 아마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외롭지는 않은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권혜진 작가는 뭐든지 할까 말까 고민이라면, 하고 난 후에 후회하는 편이 낫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저 사람을 믿을까 말까 고민이라면 일단 믿기로 하자고. 후회보다 우리를 더 괴롭히는 건 미련이라고. 


그날 밤, 나는 생각했다. 늦었어도 친구에게 말해야겠다고. 오십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비록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아가고는 있지만, 나는 그래도 믿을 수 있는 네가 있어서 이 삶이 덜 힘들다고. 나도 너에게 그런 존재로 시간을 함께 하면 좋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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