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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니은 Nov 06. 2023

메리포핀스의 하루

생각도 몸도 이리저리 휘날리는



꼭 머릿속으로 썼던 생각을 다시 되짚어 쓰려면 그때만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 생각들이 어떤 가치로 치환될 것이라고는 여길 수 없겠지만(그걸 하면 돈이 나와 쌀이 나와, 돈이 아니라 떡이던가?)



컴퓨터로 작성하던 문서가-보고서든지 과제라던지, 물론 이 쪽이 더 충격적이겠지만-미처 저장되지 못하고 갑자기 휘발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저장을 습관화해야 하는 것은 회사원일 때나 비(非) 회사원일 때나 만고의 진리이거늘.



오늘은 휴대폰 메모장이나 나에게 보내는 카톡창(메모장으로 유용한, 카톡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고 굳게 믿고 있다)을 꺼내기엔 손이 없었다. 날씨가 어찌나 요락가락하던지······이렇게 변화무쌍한 날씨는 근래 들어, 아니, 단언컨대 태어나 처음 겪는 것이었다. 어쨌든 대체로 강력한 비바람을 동반했으므로 한 손으로는 날아가지 않도록 벙거지 모자를 누르고 한 손으로는 우산을 잡고 있어야 했다.



강풍이 불더니 벼락같이 소나기가 내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해서 해가 반짝 비추다가······또 세찬 소나기가 쏟아지는······날씨에 인격이 있다면 오늘 날씨는 이중, 삼중으로 모자란 사중인격이었다(한마디로 몹시 지랄 맞은 날씨였다).



메리포핀스처럼 휘-잉 바람에 쓸려 앞으로 밀려가기도 했지만-결코 바람이 얕잡아볼 만큼 만만한 무게가 아닌데도-바람 때문에 방향을 잃은 건 아니었고 그냥 네이버지도 앱을 켜지 않고 내키는 대로, 발길 가는 대로 걸었기 때문이었다.



지도 속 도착지와, 도착지를 향해 이동하는 파란 점(나)을 보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는 것을, 온 생애에 걸쳐 숱하게 겪었음에도, 언제나 나를 과신하고 기만하는 것은 주로 나이므로······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 덕에 자전거로 이십 분이면 갈 거리를 버스로 돌고 돌아 한 시간가량 걸려 도착했는데, 하필이면 내가 타야 하는 버스 예정시각은 10분 뒤였다.



바람이 너무 셌으므로-메리포핀스처럼 우산을 잡고 어어, 하고 날아가듯 밀려나던 때- 어느 무명의 낡은 빌딩 안에서 잠시 비바람을 피하려고 문을 열고 들어가 문쪽을 향해 선 지 10초쯤 되었을까, 저 멀리 경비소에서 경비원으로 짐작되는 아저씨가 건물에 들어와 있으면 안 되니 나가라고 소리쳤다.



그의 비정함에 투덜투덜하며-소리를 내진 못했지-밖으로 나왔다. 건물 규정이겠지만 처마 밑을 잠시 내어 줄 만큼의 아량도 없으시단 말인가요······. 사실 속으로 시발, 이라는 욕을 했고······그 순간 왜 싯팔, 이라고 하면 시발보다 더 노골적이고 상스럽게 들리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좀 했다.



아마도 ㅍ이 파열음이니까(음-파) 좀 더 임팩트가 있는 거겠지. 프랑크푸르트를 세게, 한 음절씩 끊어가며 프랑크푸르트!라고 외쳐서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침을 튀기는 장난했던 것도 떠올랐다.



저 때의 프랑크푸르트는 독일과는 상관이 없다. 저건 프랑크푸르트 소시지에서 따온 거지만 저게 유행하던 때 나이로 짐작하건대, 그 장난을 했던 어린이들은 프랑크푸르트와 독일과의 연관성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나만 그랬다고 하기엔 좀 그러니까요).



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집까지 비잉빙 돌아갈 때는 이젠 할 일이 없는 노인들이 부러 출근 시각 지하철에 올라 천안까지 시장을 가기도 하고, 역사 내에 망부석처럼 앉아 있기도 하고, 부러 종착역을 찍고 되돌아오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지하철 업계 종사자에게 들었던 생각이 났다.



그는 출근시간의 혼잡함의 원인을 그 시각 무임승차 하는 이들에게 돌렸지만······그렇다면 퇴근시간은?

그때는 절망과 피곤함으로 1+2으로 불어나서-자가 증식처럼-그렇게 서로 밀고 밀리게 된 것이란 말인가?



그러니까······오늘 내가 고독하고 쓸쓸한 김에 이렇게 대차게 대중교통 타는 걸로 시간을 죽여가는 것 아닌가 싶었다, 는 말을 하고 싶다. 역사에 갇힌 걸, 출근시간의 혼잡함을, 특정 인물들의 탓으로 돌려서만은 안된다는 말도 하고 싶고.



사람이 오래 혼자 있으면 이런저런 (뻘)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버스에 앉아 급작스레 양귀자 작가의 책 <모순>을 떠올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역주행을 좀 한 책이고(그렇다. 책에도 역주행이 있다), 유행에 탑승해서 나도 그 책을 샀다.



제목 그대로 정말 모순이······각각의 인물들의 갖가지 모순이 등장하는 책인데 결말에 관해서는 나도 아직 주인공의 의중을 잘 모르겠다. 엄청 똑똑한 사람 혹은 작가 본인이 직접 책의 결말에 대해 낱낱이 알려줬으면 좋겠다. 이미 그럴듯한 해석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 <모순>이 떠올랐던 것은 자신의 삶조차 멀찍이 관망하고 관조하던 주인공이 '온 생애에 걸쳐 삶을 탐구해야 한다' 뭐 이런 말을 했는데, 슬라임처럼 이리저리 뭉개긴 했지만 내 삶을 엄청 열심히 탐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아이유처럼 마르려고도 해 봤고, 츄처럼 발랄해지려고도 했었고······족히 십수 년은 그랬고, 그런 치열한 탐구 끝에 드디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게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아무리 남이 되려고 해도 남이 될 수는 없다는 걸 말이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걸 알아서 오늘 저녁 순대를 먹은 것이다. 저걸 끝내 몰랐다면 오늘 저녁도 하림에서 나온 후추맛 닭가슴살을 씹고 있었을 것이다(사실 꽤 맛있었다).



어제인가 그제 유튜브에서 짤막하게 클립으로 올라온, 개그우먼 조혜련과 그 딸이 함께 출연한 금쪽이 상담소도 떠올랐다. 딸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엄마가 이혼하고 너무 외롭다는 말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엄마만 있어도 행복한데, 엄마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서. 오은영 박사는 아이에겐 엄마가 세계의 전부이고, 엄마를 너무 사랑하므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나도 그 마음을 좀 안다. 아플 때 필요한 건 내 손길이 아니라 약이구나. 내가 아무리 사랑을 쏟아도 그의 행동을 막는 울타리가 될 순 없구나.그걸 처음 알았을 땐 배신당한 것처럼 슬펐다. 왜, 내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걸까, 왜, 나는 모 종의 이유가 되어주지 못할까······.



그 어린 딸에게 공감하는 것과 동시에 그런 바람은 비인간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좀 들었다. 상대가 모친이던 부친이던 내가 아닌데······이 사람의 전부가 나일수도, 나만을 이유로 생을 결정할 수는 없는 거니까 뭐······.



하지만 역시, 어린애가 '이 사람의 전부가 나이길 바랄 순 없어. 이 사람도 이 사람의 생각과 삶이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므로, 어른들은 아이에게 정말 정말 잘해야 한다(결론이 왜 이따 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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