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세기 젊은이들이 오늘을 사는 법
비건과 논비건이 한 테이블에 앉는 시간의 기회비용
요즘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이 있는데, 사람한테는 여러 개의 자아가 있다는 거다. 일하는 이박은 집에서 자기 전에 유튜브를 보는 이박과 다르다. 영화를 고르는 이박과 글을 쓰는 이박은 다르다. 이박은 이박이지만, 상황마다 꺼내는 자아에 따라 선택은 달라진다. 요즘 이박을 움직이는 건 회사 이박과 벽돌집 이박 이렇게 둘이다.
그리고 이건 새로 알게 된 사실인데, 한쪽 자아가 커질수록 다른 쪽은 작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벽돌집에는 회사 이박과 작업 도고가 산다. 원래 벽돌집에는 벽돌집 이박과 벽돌집 도고가 사는 게 옳지만, 각자 바빠진 이박과 도고가 벽돌집에서까지 자아를 바꿔 끼우지 못하고 일을 하면서 생긴 일이다.
이박은 아홉 시 전에 퇴근을 못하고, 도고는 집에서 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자연스럽게 밥은 따로 먹는다. 같이 밥을 먹으려면 시간을 내야 하는데 둘 다 낼 시간이 없었다.
“도고님이랑 같이 맛있는 식사 하러 오세요!”
그때 연락을 받았다. [비건이랑 같이 살지만, 논비건입니다]의 브런치 첫 제안!
바로 노들섬 앤테이블의 21.2세기 식사 팝업 식당이다. 마침 컨셉도 ‘비건과 논비건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식사’였는데, 이건 당연히 받아야 하는 제안이었다.
사실, 제안도 감사했지만 나도 도고도 쉼에 시간을 낼 핑계가 필요했다. 일 vs 쉼이라면 당연히 일에 시간을 내야 하지만, 일 vs 일(을 가장한 쉼)이라면 당연히 무게추가 반대로 기우는 게 사람 심리니까. 그래서 우리는 모처럼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와! 이렇게 같이 밥 먹는 게 얼마만이야?”
회사 이박과 작업 도고가 함께 밥을 먹는 데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건 당연히 시간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밥 먹을 시간 없는 게 말이 되냐마는, 도고의 음식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데에서 시간 제약이 하나 더 생긴다. 주변에 채식을 취급하는 배달 음식점이 많지 않아 이미 주변 음식은 질려버렸고, 나가서 먹기에는 지친다. 요리를 하는 것도 그렇고.
평소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 시간이더라도 서로 바쁠 때에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같이 사는 사람 둘이 시간이 없네 기회비용이네 하면서 운운하는 것도 웃기지만, 요새 우리의 자아는 회사 이박과 작업 도고니까. 극단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두 자아는 가끔 이렇게 냉정한 계산법으로 이박과 도고의 삶 만족도를 깎아놓곤 한다. 이게 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렇다.
마침 메뉴판에 뇨끼 요리가 있었다. 도고가 고르고 골라 찾아갔던 우리의 첫 채식 파인 레스토랑 메뉴도 뇨끼였다. 그때 먹은 뇨끼가 너무 맛있어서 우리는 집에서도 종종 뇨끼를 만들어 먹었다. 그것도 벌써 일 년은 된 것 같았다.
우리가 만든 뇨끼는 이것보다 작고 질겼지. 근사한 접시에 담겨 나온 맛있는 요리와 서투른 우리의 핸드메이드 식사를 비교하면서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벽돌집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벽돌집 이박과 벽돌집 도고가 식사를 한 자리였다.
“우리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면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들인데.”
후무스 타르트로 긴 식사를 마친 우리는 아쉬움에 손가락만 닦았다. 이제는 다시 회사 이박과 작업 도고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잔에 남은 따뜻한 뱅쇼를 마저 비우고 우리는 금세 비가 그친 밖으로 나갔다.
“우리, 그래도 외식은 종종 나가자.”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자. 종종 서로 안부를 묻자. 같이 살지만 멀리 사는 두 친구가 할 법한 대화를 하며 우리는 택시를 탔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바쁘게 산다.
그래도 다행인 건, 따뜻한 식사와 시시콜콜한 대화가 두 사람의 바쁜 삶을 쉬게 한다는 거다. 21.2세기 젊은이들을 쉬게 하는 21.2세기 식사를 마치며 우리는 내일을 준비할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