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부 개전

by 닥터 F

1. 신호탄: 침묵의 파열 (The Silent Rupture)


부산항 제3 부두 외곽 변전소. 폭우가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커스토디안의 침투조 ‘사일런스’가 설치한 EMP 배낭의 타이머가 **[00:00]**을 가리켰다.


콰앙-!


화약의 폭발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전기가 공기를 찢어발기며 내는, 고막이 아닌 뇌를 직접 타격하는 듯한 끔찍한 파열음이었다. 변전소 중심으로 푸른 전자기 파동이 구체(球體)를 그리며 팽창했다. 빗방울들이 순간적으로 증발하며 하얀 수증기 막을 형성했고, 그 파동에 휩쓸린 반경 500미터 내의 모든 전자 기기들이 비명을 질렀다.


상공을 순찰하던 아키텍츠의 경비 드론 수십 대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힘을 잃고 추락했다. ‘쿠당탕, 쾅!’ 강철 덩어리들이 컨테이너 위로, 아스팔트 바닥으로 비 오듯 쏟아져 내리며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켰다. 암흑이 항만의 외곽을 집어삼켰다.


그것은 단순한 정전이 아니었다. 신(神)의 눈을 가리기 위한 인간들의 필사적인 연막탄이었다.


2. 해상: 강철의 파도 (Steel Waves)


“지금이다! 엔진 출력 최대! 진입해!”


해상 3마일 지점. 리바이어던의 용병 대장, ‘카이만’이 포효했다. 어둠 속에 숨죽이고 있던 고속 침투정 12척이 일제히 엔진을 포효시키며 하얀 포말을 일으켰다. 그들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도료를 칠한 채, 파도를 가르며 포세이돈의 접안 시설로 쇄도했다.


“목표는 중앙 서버실 지하 입구! 닥치는 대로 부수고 길을 열어라!”


침투정의 선수에 장착된 중기관총들이 불을 뿜었다. 붉은 예광탄 줄기가 빗줄기를 뚫고 항만 감시탑의 서치라이트를 박살 냈다. 유리 파편이 다이아몬드 가루처럼 흩날렸다.


하지만 아키텍츠의 요새는 침묵하지 않았다. 항만 통제실에서 랑정훈이 차가운 눈으로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님들이 너무 요란하군. 바다의 예절을 가르쳐줘라.”


그가 콘솔의 파란 버튼을 눌렀다.


[프로젝트 크라켄: 승인]


바다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침투정들이 접안 시설 100미터 앞까지 도달했을 때였다. 검은 수면 아래에서 거대한 그림자들이 솟구쳐 올랐다.


콰아앙!


선두에 있던 침투정 한 척이 무언가에 의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배의 허리가 톱니바퀴에 씹힌 듯 처참하게 구겨져 있었다. 물보라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생물이 아니었다. 매끈한 티타늄 합금으로 뒤덮인 유선형의 몸체, 그리고 그 끝에 달린 여섯 개의 기계식 촉수. 아키텍츠가 심해 채굴용으로 개발하다 살상 병기로 개조한 수중 드론, **‘크라켄(Kraken)’**이었다.


“뭐, 뭐야 저건! 소나(Sonar)에 안 잡혔어!”


용병들의 비명 소리가 무전을 탔다. 크라켄들은 마치 범고래 떼가 물개를 사냥하듯 침투정들을 덮쳤다. 강철 촉수가 배의 엔진룸을 꿰뚫고, 고압 전류를 흘려보냈다. 바다 위에서 파란 스파크가 튀며 배들이 폭발했다.


“알라모 대형으로 산개해! 어뢰 발사!”


리바이어던의 용병들은 산전수전 겪은 베테랑들이었다. 그들은 즉시 대형을 흩어트리며 휴대용 경어뢰와 수중 소총으로 반격했다. 바다는 붉은 피와 검은 기름, 그리고 하얀 포말이 뒤섞인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3. 지상: 유령과 가고일 (Ghosts and Gargoyles)


해상이 불바다가 되는 동안, 지상의 야적장에서는 소리 없는 살육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커스토디안의 ‘사일런스’ 부대는 유령처럼 움직였다. 그들은 EMP로 무력화된 외곽 구역을 지나, 전력이 살아있는 내부 구역으로 침투했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AI의 예측 알고리즘을 역이용하는 불규칙한 보법, 열화상 카메라를 기만하는 냉각 슈트.


“전방 50미터. 자동화 포탑 식별. 처리한다.”


포인트맨이 수신호했다. 저격수가 빗줄기 속에서 숨을 멈췄다. 그의 스코프는 디지털 보정이 없는 아날로그 광학 장비였다. ‘탕-’ 소음기를 거친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감시탑 위의 센서가 정확히 박살 났다. 기계적인 오류를 인지하기도 전에 물리적인 눈을 멀게 하는 전술.


그들은 빠르게 포세이돈의 중심부를 향해 조여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이 C-7 구역, 컨테이너들이 미로처럼 쌓인 곳에 들어섰을 때였다.


끼이익- 쿵.


평범한 40피트 컨테이너 박스인 줄 알았던 철제 구조물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변형되기 시작했다. 측면 장갑이 열리고, 그 안에서 다족 보행 장치가 튀어나왔다. 컨테이너 상부에서는 20mm 개틀링 건과 대전차 미사일 포드가 솟아올랐다.


아키텍츠의 지상 방어 로봇, **‘가고일(Gargoyle)’**이었다.


“매복이다! 전원 산개!”


지휘관의 외침이 떨어지기도 전에, 가고일들의 개틀링 건이 회전했다. 두두두두두두두! 분당 3,000발의 텅스텐 탄환이 빗줄기를 찢으며 쏟아졌다. 컨테이너 벽이 종이짝처럼 뚫리고, 엄폐하고 있던 대원들의 강화복이 걸레처럼 찢겨나갔다.


“회피 기동! 놈들의 사격 통제 장치를 노려!”


커스토디안 대원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반사 신경으로 탄막을 피하며 응사했다. 그들이 쏘는 특수 철갑탄이 가고일의 관절부를 타격했다. 로봇과 인간, 시스템과 직관이 충돌하는 전장은 금세 지옥도로 변했다.


4. 지하: 설계된 난장 (Designed Chaos)


지상은 전쟁터였지만, 홍보관 지하의 원형 홀은 밀실 살인 현장과도 같았다.


“처리해.”


랑정훈의 홀로그램이 내린 명령과 동시에, 벽 속에 숨어있던 네 기의 ‘가고일’(초기형 모델)이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좁은 공간, 피할 곳 없는 원형 홀. 이강혁의 소총이 불을 뿜었지만, 가고일의 전면 장갑은 소총탄을 가볍게 튕겨냈다.


“3시 방향!”


김서연의 외침은 비명에 가까웠지만, 그 내용은 정밀한 좌표였다. 이강혁은 질문하지 않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총구를 가고일이 아닌, 벽면의 붉은색 밸브, 소화전 주 밸브로 돌렸다.


탕! 탕! 탕!


7.62mm 철갑탄이 밸브의 연결부를 정확히 끊어냈다. 콰아아아-!! 엄청난 수압의 소화 용수가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좁은 홀은 순식간에 물안개로 가득 찼고, 바닥은 흥건하게 젖어 들었다.


달려들던 가고일들의 광학 센서가 갑작스러운 수막 현상으로 인해 시야를 잃고 비틀거렸다. 미끄러운 타일 바닥 위에서 4족 보행 로봇의 다리들이 헛돌며 중심을 잃었다.


“지금이에요! 바닥!”


김서연이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제로가 만든 급조형 고전압 발생기였다. 장치가 물에 잠긴 바닥에 닿는 순간, 지지직- 콰지직! 푸른 전기가 물을 타고 흘러 가고일들의 금속 다리를 타고 역류했다.


“끼이이익-!” 로봇들이 기괴한 기계음을 내며 경련을 일으켰다. 완벽한 방수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김서연이 노린 것은 회로의 파괴가 아니었다.


“강혁 씨, 관절부! 유압 실린더를 노리세요!”


전기 충격으로 로봇들의 자세 제어 시스템이 0.5초간 마비된 순간. 로봇들의 관절이 뻣뻣하게 굳었다. 이강혁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미끄러지듯 앞으로 대시하며, 굳어버린 가고일의 다리 관절 틈새, 장갑이 덮이지 않은 유압 호스를 향해 단검을 꽂아 넣고 비틀었다. 그리고 틈새로 권총을 밀어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퍼어엉! 검은 오일이 피처럼 솟구치며 첫 번째 가고일이 무너져 내렸다.


“하... 하... 미치겠네, 진짜.”


이강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로봇을 발판 삼아 도약했다. 나머지 로봇들이 자세를 회복하려 했지만, 이미 균형은 무너져 있었다.


랑정훈의 홀로그램은 여전히 그 난장판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리 엔진을 이용한 제압이라. 제법이군. 하지만...”


그때, 홀의 천장이 열리며 더 크고 육중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단순한 경비 로봇이 아니었다. 천장에 매달린 채 내려오는 것은, 아키텍츠가 시가전을 위해 개발한 인간형 기동 병기, **‘타이탄(Titan)’**의 상반신 모듈이었다. 양팔에 달린 화염방사기가 시뻘건 불꽃을 머금고 있었다.


“이번엔 물로 끌 수 없을 겁니다. 소화전은 이미 다 썼으니까.”


랑정훈의 조소와 함께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후우우우욱-! 좁은 홀이 순식간에 열기로 가득 찼다. 물기는 증발했고, 숨을 쉴 수 없는 뜨거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최진아가 비명을 질렀다.


“피해!”


이강혁이 두 여자를 밀치고 앞을 막아섰지만, 화염의 범위는 너무 넓었다. 방패가 녹아내릴 위기였다.


그 절망적인 순간, 김서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이 홀 구석, 바닥에 뚫린 배수구를 향해 고정되었다. 그리고 뇌리에서 번개처럼 스치는 기억의 파편.


‘이 홀의 배수 시스템... 지하 공동구와 직결되어 있어. 그리고 그 공동구에는... 메탄가스가 흐르는 폐관이 지난다.’


그녀는 타이탄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 타이탄 뒤에 있는 랑정훈을 향해 외쳤다.


“당신들의 완벽한 설계도에는, 오래된 도시의 하수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어!”


그녀는 이강혁의 허리춤에서 예비 탄창을 뽑아, 배수구 뚜껑 틈새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가고일의 잔해에서 뜯어낸 고전압 발생기의 전선을 잡았다.


“강혁 씨! 엎드려요!”


그녀는 전선을 배수구 안으로 집어넣었다. 스파크가 튀었다. 지하에 고여 있던 메탄가스. 그리고 밀폐된 공간.


콰아아아앙!!!


지하에서부터 올라온 폭발이 배수구 뚜껑을 날려버리고, 그 위에 서 있던 타이탄을 강타했다. 역류하는 폭발 압력이 화염방사기의 연료통을 자극했다. 거대한 2차 폭발이 일어나며 타이탄의 상반신이 산산조각 났다. 랑정훈의 홀로그램도 폭풍에 휘말려 지직거리며 사라졌다.


연기와 먼지 속에서, 김서연은 기침을 하며 일어났다. 귀가 먹먹했다.


“살아... 있어?”


이강혁이 잔해 더미를 밀치고 나왔다. 그의 등은 그을음으로 덮여 있었지만, 눈빛만은 형형했다.


“덕분에. 지옥 구경 한번 제대로 하는군.”


최진아는 구석에서 공포에 질린 채 떨고 있었다. 하지만 김서연은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단호하게 말했다.


“갑니다. 이제 문이 열렸어요.”


폭발로 인해 홀의 한쪽 벽이 무너져 있었고, 그 너머로 포세이돈의 진짜 내부, 거대한 컨테이너 터미널의 지하 수송로가 보였다.


5. 전면전 (Total War)


김서연 일행이 지하 통로를 빠져나와 항만 내부의 구석진 정비 구역으로 나왔을 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하늘은 불타고 있었다. 커스토디안의 침투조가 쏘아 올린 조명탄과, 아키텍츠의 방공 시스템이 쏘아대는 대공포가 밤하늘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바다 쪽에서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5만 톤급 화물선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리바이어던이 크라켄을 막기 위해 배를 자침 시켜 방벽을 만든 것이었다.


지상에서는 수십 대의 가고일 로봇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나와 침입자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하지만 커스토디안과 리바이어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피해를 감수하며 점점 포세이돈의 중심부, ‘오라클’이 있는 관제탑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개판이군.”


이강혁이 중얼거렸다.


[ Zero ]: 내 말이. 지금 양쪽 다 눈이 뒤집혀서 우리 같은 쥐새끼들은 신경도 안 쓰고 있어. 지금이 기회야.


김서연은 저 멀리, 항만 중앙에 우뚝 솟은 관제탑을 바라보았다. 그 아래, 지하 깊은 곳에 SMR(원자로)과 오라클의 서버가 있다. 그리고 그곳까지 가는 길은, 서로를 죽이려는 괴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달려요. 멈추면 죽습니다.”


김서연이 빗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녀의 배낭 속에서 ‘공진 주파수 발생기’가 무겁게 덜그럭거렸다. 이카루스의 날개는 펼쳐졌다. 이제 태양을 향해, 혹은 지옥의 불길을 향해 돌진할 시간이었다.


쿵- 쿵- 쿵.


거인들의 발소리가 부산항의 밤을 뒤흔들고 있었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금요일 연재
이전 24화23부 폭풍의 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