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두산백과에 따르면 감각주의는 모든 인식이 감각에서 유래한다는 철학 이론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도 감각의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나는 때때로 감각과 생각이 따로 논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어제가 그랬다. 어제 저녁까지 내 생각은 평온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라는 현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불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길을 걷다가 불안감을 느꼈다.
감각이 생각을 우선할 때가 있다. 나는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어떤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She&him의 'hold me, thrill me, kiss me'가 그것이었다. 이 노래는 내가 쓸쓸할 때 찾아 듣는 노래였다. 대부분의 옛날 노래가 그렇듯 가사 내용은 심플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아달라고, 설레게 해달라고, 키스해 달라고 말하는 게 가사의 전부다. 그래도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화자의 주변 사람들은 화자가 새로운 사랑에 너무 푹 빠져 있는 것 같자 조언을 해준다. 새로운 사랑을 마주할 때 정신을 차려. 새로운 사랑에 모든 것을 쏟지 말라니까. 안 그럼 너만 상처 받을 걸. 그러나 화자는 이렇게 반박한다. 너가 그 사람이랑 같이 안 있어 봐서 그래. 그 사람을 마주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은 안 든다고. 새로운 사랑은 이미 화자의 감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감각이 생각을 우선할 때 우리는 잘못된 선택인 줄 알면서도 그 선택을 한다.
친구를 좋아하던 때가 있다. 첫사랑이고 짝사랑이었다. 그 친구에게 나는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지만 시선(아니, 온 감각)이 어느새 그 아이를 따라가고 있었다. 나의 감각은 이렇게 항변했던 것 같다. 그 사람과 나만 알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그 특별한 무언가를 믿고 싶다고. 이성적 판단을 유예하려 했다. 반대로 어장에 갇힌 친구를 목격한 적이 있다. 친구는 나의 날카롭고 이성적인 조언에도 정신을 못차렸다. 우리가 결국 정신을 차린 것은 또다른 현실의 감각 덕분이었다. 거절의 감각이 우리를 파고들었을 때야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는 어제 불안한 감각에 정신을 못 차렸다. 어쩔줄 몰라 밤에 잠을 못 이뤘다. 현재의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까봐, 아마도. 나는 미래를 그려보려고 노력했다.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내게 환상을 심어주고 싶었다. 물론 이 환상은 머리의 영역이다. 그러나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이성은 불안의 감각에 지고 말았다. 나는 어찌할 줄 모르는 상태로 지쳐 잠이 들었다.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내 선택을 밀고 나갈 작정이다.(내가 감히 그래도 될까?) 내가 느끼는 감각을 믿을 작정이다.(내게 믿음이 있었던가?) 내가 할 선택에게 나는 말한다.(내가 감히 말해도 될까?) 잡아 달라고(hold me), 설레게 해달라고(thrill me), 그리고 결국 이뤄지게 해달라고(kiss me).
사람들은 사랑 이야기가 지겹다고 말한다. 한국 드라마는 장르에 관계 없이 사랑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었다. 시청자들은 한국 드라마에 장르의 전문성이 없다며 비꼬아 말했다. 수사물에 로맨스가 웬말이며 오피스물에 로맨스가 웬말이느냐고 . 드라마 <미생>은 로맨스 없는 드라마로 칭송 받았다. 그러나 내가 봤을 때, 사랑은 우리 이야기의 본질이다. <미생>도 결국에는 회사와의 사랑 이야기다. 간절히 원하지만, 거절당하기도 하고, 그런 과정 중에 내가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파고 들어도 새로울 수밖에 없는 인생 이야기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현재 로맨스 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로맨스를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