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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ul 23. 2021

38. 나의 눈부신 친구(1)

서문

2018년 12월 전국민이 드라마 <SKY 캐슬>에 빠져있을 때를 기억한다. 나는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나폴리 4부작>을 삼일 밤을 새워 읽고 있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장르는 '드라마'이고 내용은 1970-80년대 한국 드라마와 비슷하다. 주인공의 일대기가 어린시절부터 노년기까지 그려진다. 작가의 필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소설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 뺨친다. 흡인력이 장난 아니다. 술술 읽히고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얼마 전 HBO에서 드라마로 만든 것을 봤는데 캐스팅과 세트장이 놀라울 정도로 내가 상상하던 것과 똑같았다. 작가의 묘사력이 뛰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나폴리 4부작'은 말그대로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제목이 다른데 1권 제목은 '나의 눈부신 친구'다. 나는 이 제목이 이 소설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간단하게 말할 순 없다. 이 둘은 애증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작도 기묘하다. 주인공인 '나'가 한밤중에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의 눈부신 친구"인 릴라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냥 실종된 것도 아니고 증발해버렸다. 사용하던 물건도 다 사라졌고, 가족 사진에 있던 모습도 다 오려버렸다. 나는 릴라가 오래 전부터 말하던 증발을 결국 성공한 거라고 결론 내린다. 릴라는 언젠가부터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비췄기 때문이다. 진정한 친구라면 '나'는 릴라의 증발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질투심을 느낀다. 항상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버리는 친구에게 시기심을 느낀다. 그래서 작가인 '나'는 노트북을 펼친다. 잊히고자 하는 친구가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친구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한다. 사라지고 싶다고? 영원히 사라지지 못하게 만들어 주겠어!


'나'와 '릴라'의 관계는 기묘하다. 나에게 릴라는 가장 사랑하는 친구이자 가장 얄미운 친구다. 가장 친밀한 라이벌이라고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다. 나와 릴라는 동네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들이었다. 릴라는 당돌한 아이였고, 나는 착한 아이(모범생)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1960년대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자아이라면 얌전하고 조신하고 순응적이어야했다. 릴라는 그 반대였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하지만 오직 '나'만이 릴라의 특별함을 알아보고 친해지고 싶어한다. '나'는 릴라의 가장 친한 친구(베프)가 된 뒤에 말한다. 릴라를 누구보다 사랑했다고 말이다. 이야기가 '나'의 관점에서 진행되기에 우리는 릴라의 마음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릴라가 자신의 결혼식 직전에 '나'에게 하는 말에서 릴라 또한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릴라는 나에게 말한다. "너는 나의 눈부신 친구야." 그리고 나에게 공부를 이어갈 것을 말한다.


이 소설에서 공부는 '나'와 '릴라'의 운명을 가르는 아주 중요한 장치다. 공부, 즉 교육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계층 사다리 역할을 한다. '나'는 운이 좋아 대학까지 진학하고 사회의 지식인으로 등극한다. 이때 이탈리아로 말할 것 같으면, 초등학교까지만 의무교육이었고, 특히 여자라면 초등학교까지만 나오고 일을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는 꽤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이어서 딸이라도 똑똑하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법원에서 일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사회 상류층과 어울리다보면 그들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더 손쉽게 터득할 수 있는 법이다. 반면, 릴라의 아버지는 가난한 구두공이다. 가난한 건 '나'의 아버지와 마찬가지였지만 구두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릴라의 중학교 진학을 극구 반대하고, 결국 릴라는 집안일을 돕기로 한다.


릴라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확실히 드러난다. 나는 더 이상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릴라가 하지 않는 공부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유급될 위기에 처한다. 그러다 나는 우연히 릴라가 동네 도서관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몰래 따라간다. 도서관에서 릴라는 나를 발견하고 도망친다. 릴라가 남긴 책은 '나'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라틴어 교재다. 나는 릴라가 라틴어 공부를 따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한다. 덕분에 다시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된다.


'나'가 작가가 된 이유도 릴라 때문이다. 12살 때 릴라와 나는 '작은 아씨들'이라는 책을 같이 산다. 릴라는 돈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자신과 가족의 불행이 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직관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돈을 벌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릴라는 '나'에게 '작은 아씨들' 같은 책을 쓰자고 한다.  '작은 아씨들' 작가가 자신들과 같은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이 소설로 부자가 됐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한다. 나와 릴라는 수십번, 아니 수백번 이 소설을 함께 읽는다. 돈 버는 책이 무엇일지 탐구하는 것이다. 이후 릴라는 작가가 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지만, 이때의 기억은 나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나'를 소설가의 길로 이끈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작가가 된다.


이 둘의 관계는 데칼코마니 같다. 릴라만 나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도 릴라에게 영향을 준다. 릴라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뒤,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구두를 디자인하는 일에 몰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릴라가 이렇게까지 열정적일 수 있던 이유는 주인공 '나' 때문이다. '나'처럼 공부를 더 할 수 없는 사실에 분노하고 '나'를 이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나선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눈부신 친구'란 나의 삶을 추동하는 역동적인 관계에 관한 은유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적!



이제부터는 나의 이야기다. 나는 '나의 눈부신 친구'를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다. 나도 저런 인생의 동반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눈부신 친구'를 가지기엔 어렸을 때 친구가 없었다. 나의 우정사를 되짚어 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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