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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Mar 06. 2023

사랑한 기억을 지우시겠습니까?

영화 <이터널 선샤인>

성공하지 못한 사랑은 실패한 사랑이다. 실패한 사랑은 내 주변을 떠돈다. 실패한 사랑의 순간들을 되새기며 자해한다. 어느 순간 기억들을 없애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이러한 충동에 대답한 영화다. 당신의 실패한 사랑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지우시겠습니까?


그런데 애초에 사랑을 지울 수 있던가? 사랑은 하나의 생물과 같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생동한다. 뜻대로 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이승우 작가는 소설 <사랑의 생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홀려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사랑에 관한 기억을 지우는 설정을 통해 사랑이란 생물체의 자생력을 보여준다. 남자주인공 조엘은 사랑했던 클레멘타인과 관련된 모든 기억을 지운다. 클레멘타인과 관련된 기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음에도 조엘은 본능적으로 몬타우크행 기차에 몸을 실는다. 클레멘타인을 처음 만났던 곳이다. 그곳에서 또다시 클레멘타인을 처음 마주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라는 생물체가 둘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두 사람은 사랑의 숙주에 불과하다.


영화는 기억을 잃은 후에도 사랑한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을 집요하게 넣었다. 기억을 지워주는 라쿠나사의 매리는 닥터 하워드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다고 박사에게 말한다. 박사는 어딘가 어색한 모습으로 그녀의 사랑을 받아준다. 박사의 아내가 찾아오고 그 이유가 밝혀진다. 매리와 닥터 하워드는 원래 사랑하는 사이였고, 매리는 박사에게 그와 관련된 모든 기억을 지워달라고 부탁했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다시 사랑에 빠진 것처럼 매리는 다시 박사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영화 속 반복되는 숙명적 사랑이란 설정은 우리에게 질문은 남긴다. 우리는 왜 자꾸 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사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연속적 우연이 사랑의 발생점이 된다고 말한다. 토마시는 한 시골 호텔 카페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테레사를 우연하 알게 된다. 둘의 만남이 있기까지 여섯 번의 우연이 존재했다. 그리고 테레사는 우연의 일치들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았다. 테레사는 토마시가 카페이 들어서는 순간 그녀가 좋아하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전날 그녀가 책을 읽던 벤치에 토마시가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운명임을 직감했다.


모든 사건은 우연이다. 그러나 우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우연은 더이상 우연이 아니게 된다. 사랑은 우연을 운명으로 만드는 순간에 탄생한다. 질문을 바꿔 보자. 우연을 운명으로 만들겠다는 사랑을 향한 의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외모, 성격, 매력? 우리는 그 원인을 명확히 짚을 수 없으며, 그곳에서 사랑의 신비가 생겨난다.


https://youtu.be/Xwk98PERWiY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86775/episodes/24633186


https://www.music-flo.com/detail/episode/aed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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