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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Aug 28. 2023

최고

나만의 커리어 쌓는 법

<강철의 연금술사>와 <진격의 거인>은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존재'가 나온다는 점에서 닮았다. 등장인물들이 이 존재에 어떻게 대적하는지도 닮았다. 주인공들은 동료와 힘을 합친다. 그런데 힘을 합치는 방식이 다르다. 여기서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달라진다.


<진격의 거인>에서 주인공은 최종적으로 세계관 최강자가 된다. 주인공이 힘을 얻은 뒤로는 이에 대적할 만한 인물이 없다. 그래도 주인공의 동료들은 세상을 파괴하려는 주인공을 막기 위해 힘을 합친다. 이들은 힘을 합쳐 결국 주인공을 막는다. <진격의 거인>에서 힘을 합쳐 싸우는 과정은 화려한 연출 외에는 볼 것이 없다. 왜냐하면 작가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연대' 보다는 '자유의지'이기 때문이다.


반면, <강철의 연금술사>는 '연대' 속의 '개인'이란 소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인간들이 불사불멸의 '호문클루스'를 어떤 과정으로 헤치우는지를 집요하게 다룬다. 인간 개개인은 뛰어나지만 호문클루스에 혼자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A가 호문클루스와 맞서 싸우다 죽고, B가 그 뒤를 이어서 싸운다. A가 호문클루스에게 약간의 타격을 입힌 후다. B가 호문클루스에게 타격을 추가하고, 뒤이어 C가 호문클루스에 맞선다. 주인공은 이 수많은 A, B, C... 중 하나에 불과하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함께 '어떻게 불가능해 보이는 목적에 달성할 수 있는가'에 관한 답을 준다. 첫째, 두 다리로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둘째, 몰입해라. 셋째, 이것들을 함께할 동료가 있어야 한다.  내가 오타쿠라고 말하려고 정리한 게 아니다. 최고가 되고 싶은데, 불가능해 보여 무기력에 빠진 야망가들을 위한 글이다.


 내가 아는 한 야망가는 '35살에 커리어의 정점을 찍겠다'고 선언했다. '예리한 눈썰미를 가진' 친구라서 '예진'이라 부르겠다. 예진은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다는 야망도 갖고 있다. 어떤 콘텐츠를 만들지 항상 고민하고 고심하며, 실제로 실천에 옮기고 있다. 즉, 몰입한 채 나아가고 있다. 이전 글 <프로>에서 말한대로 프로의 길을 걷고 있는 삶의 전형이다. 그러나 프로와 최고는 별개다. 


최고는 누구보다 높이 올라간 사람이다. 그만큼 길고도 지루한 길을 누구보다 많이 걸었다는 뜻이다. 혼자 힘으로 계속 몰입하긴 힘들다. 혼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부처님? 너무나 세속적이지 않다. 최고라는 유명세는 이름을 남기겠다는 인간의 가장 세속적인 욕망이다. 불멸이란 욕망은 인간들 속에 남고 싶다는 욕망이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인류에게조차 기억되고 싶어하는 가장 허영된 욕망이며,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욕망이다.  인간 중의 인간, 인간들에게 인정받는 인간이 되고 싶다면, 그렇다면, 동료를 만들어야 한다. 나의 목표를 이해하고, 몰입을 마음 깊숙이 경애해서, 길고도 먼 길을 나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예진이 ‘35살에 커리어의 정점을 찍겠다’고 말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은 모차르트였다. 그는 35살에 인생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죽었다. 모차르트의 ‘메이트’는 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였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버지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당대에 유명한 작곡가였다. 즉, 그는 음악과 음악가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아들의 재능을 알아 보고 당대 최고의 작곡가에게 배우게 했다. 모차르트의 음악 인생의 멘토이자 메이트였다. 아버지가 죽고 겨우 4년 뒤에 모차르트가 죽은 사실은 어떻게 보면 그리 놀랍지 않다. 나의 전부였던 음악을 지지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사라지면서 그의 음악도 끝날 운명이었던 걸지도. 아, 파파보이...


세간은 마마보이를 독립적이지 못한 미성숙한 인간으로 보지만, 마마보이는 그만큼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을 옆에 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지지란 놀랍다. 한국전쟁을 기록한 <콜디스트 윈터>의 저자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미국의 마마보이 양대산맥으로 루스벨트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을 꼽는다. 루스벨트는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와 이혼하고 비서인 루시와 재혼할 생각이었으나 어머니 사라 루스벨트가 아들의 정치 인생을 망칠 수 없다며 극구반대하자 포기한 유악한 아들이었다. 사라 루스벨트가 없었다면 루스벨트 대통령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맥아더는 자신을 최고로 여기는 어머니 메리 맥아더 아래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자랐지만, 그 더러운 성격 때문에 승진이 막혔을 때 아들 상사에게 편지까지 써가며 2차례나 도와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메리 맥아더였다. 어쨌든 맥아더를 끝까지 믿어주고 응원해준 것이다.


그리고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 그에게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집착하는 동시에 믿어주는 어머니 니나 카체프가 있었다. 니나가 죽고 18년 뒤 쓴 자전적 소설 <새벽의 약속>에서 “그런 큰 사랑은 누구도 줄 수 없으리”라고 울부짓으면서도, 어머니의 진절머리나는 집착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로맹 가리의 작가적 재능을 발견해준 것도 니나였다. 로맹 가리라는 필명을 가장 먼저 보고 ‘멋지다! 우리 아들‘ 해준 것도 니나였다. 니나는 아들이 작가인 동시에 외교관이었으면 했고, 결국 로맹 가리는 외교관도 했다. 동양에서는 공자가 불멸의 마마보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불멸이라는 재단에 오른 사람들의 옆사람들을 상상해 본다. 유명한 작가들 옆에는 그의 소설을 가장 먼저 읽고 이해해주는 메이트가 있었다. 레프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 톨스타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아내 베라 나보코바, 밀란 쿤데라의 아내 베라 쿤데라. 소피야 톨스타야는 악처로 알려졌지만, 사실 톨스토이의 원고를 일일이 검수해서 세상에 나올 수 있게한 편집자였다. 베라 나보코프 역시 옆에서 작품을 읽고 비평하고 편집해줬다. 베라 쿤데라도 마찬가지다. 남성에게 희생당한 여성들의 얘기가 아니냐고? 버지니아 울프의 남편 레너드 울프는 안정적인 공직생활도 포기하고 버지니아의 작가생활을 위해 인쇄소를 열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불안감을 이해하고 옆에서 지켜주지 않았다면 버지니아 울프는 작품을 남기지 못한 채 더 일찍 죽었을 것이다.


그 외에 빌 클린턴-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미셸 오바마, 박정희-육영수, 김대중-이희호, 제정임-정동식...


가족이 아니어도 된다. 나를 이해해주는 메이트, 동료면 된다. 아직 죽지는 않아서 불멸의 재단에 오르진 않았지만, 불멸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미술감독 장숙평과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우동 테이크아웃 장면이 영화 <화양연화>처럼 아름다운 순간이 될 수 있던 건 왕가위의 생각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장숙평과 크리스토퍼 도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연기로 표현해낸 페르소나 양조위도 빼놓을 수 없다. 아, 그리고 웨스 앤더슨과 오웬 윌슨. 데뷔작 <바틀 로켓>부터 각본을 함께 썼다.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로얄 테넌바움>, <스티브지소와의 해저 생활> 등에서 각본 작업을 함께 했을 뿐 아니라 연기도 했다.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배우들이 보여주는 영혼 없는 연기는 오웬 윌슨이 만들어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둘은 대학에서 만나 20대부터 함께 각본을 써온 메이트였다.


<위플래쉬>, <라라랜드> 등 재즈 음악을 매개로한 데미안 셔젤의 영화는 그의 대학 친구인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 외 봉준호-정재일, 박찬욱-정서경, 미야자키 하야오-히사이시 조.


쓰다보니 ‘프로 메이트’ 백과사전처럼 돼버렸지만, 백과사전만큼 설득력 있는 글은 없다. 그러니까... 최고가 되고 싶다고? 동료를 만들어라. 나 자신조차도 스스로가 의심될 때 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너의 재능을 보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네 불멸의 티켓 끄트머리라고 생각하고 잡아야 한다.

 

눅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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