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벌꿀 Jul 14. 2020

감자 고르는 것 부터, 뇨끼 Gnocchi

Giovedì Gnocchi, 목요일은 뇨끼

이탈리아에 «Giovedì Gnocchi, Venerdì Pesce, Sabato Trippa» 이런말이 있다. 목요일에는 뇨끼, 금요일에는 생선, 토요일에는 트립빠(트리빠, 트리파라고 부르는 소나 양의 위). 

요새 이렇게 지켜 먹는 사람은 없지만, 아마 지금 나이가 80-100세 정도 되신 전쟁세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 지금도 금요일에는 뇨끼를 드시는 분들이 계시긴 할 것이다. 


1차대전 쯤부터 내려오는 문화로 금요일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감안해 목요일에는 포만감이 크고 에너지를 많이 주는 뇨끼를 먹고, 금요일에는 생선 (ceci e baccalà 병아리콩과 대구생선요리와 같은)를 먹고, 토요일에는 일요일 점심에 돈있는 사람들이 먹을 질좋은 고기를 잡고 남은 내장 트립빠(트리빠, 트리파)를 먹는다.


뇨끼는 나도 이탈리아에 지내면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먹었던 음식이다. 한국의 면에 익숙해져 있던 습관때문인지 뭉툭하고 겉이 벌레처럼 생긴 뇨끼는 그렇게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뇨끼에 눈을 뜨게 된 건 카산드라와 방문했던 한 식당 덕분이다. 


그녀와 어느 점심에, 로마 시내에서 꽤나 떨어져 있는 작은 식당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점심 직장인 메뉴로 브루스케타+파스타류, 브루스케타+메인요리류 를 내놓고 있는 집이였는데 식당은 작았지만 통유리창과 거울의 효과로 내부는 훨씬 더 큼직해보였다. 


점심 특선메뉴는 그날그날 바뀌는지 (아마 어제저녁 남은 재료들을 이용하는 메뉴일 것이다) 메뉴판은 따로 없고 서빙해주시는 분이 4가지 선택권을 알려주셨다. '오늘은 카치오 페페 라임 파스타랑 바깔라 (대구생선) 뇨끼랑 문어구이와 Verza 베르짜 양배추 볶은것과 Spigola 스피골라 (농어류 생선) 필렛 구운거랑 그린샐러드 가 있습니다, 일반메뉴판 중에 고르셔도 되구요' 카산드라는 운 좋게 날을 잘 맞춰 왔다고 전부 생선메뉴라며 좋아했다. 


그날 무슨 이유에선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저는 뇨끼요' 하고 말해버렸고 1분이 채 안되서 괜한 모험을 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이탈리아식 수제비, 쫄깃쫄깃한 뇨끼 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탈리아에서 먹는 뇨끼는 입에서 스르륵 녹는 듯한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보통 감자와 밀가루를 섞어 만드는데 감자의 비율이 훨씬 더 높기 때문에 진짜 뇨끼는 감자처럼 부드럽다. 쫄깃쫄깃한 뇨끼는 밀가루를 많이 섞은 것이라 진짜 뇨끼 맛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떡처럼 쫄깃한 식감에 익숙해진 한국분들이 막상 이탈리아에서 뇨끼를 먹고 생각보다 별로라고 하는 것은 이때문일 수도 있다. 


처음 내가 느낀 뇨끼의 식감은 입안에 들어가면 부드러우나, 정체불명의 쩝쩍거림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쫄깃쫄깃과는 거리가 있는, 요상한 느낌이였다. 이런 식감을 좋아한다고 말해야할지, 별로라고 말해야할지도 애매한 그런 느낌. 


보통 로마시내 레스토랑 메뉴판에 보이는 뇨끼는 페스토(바질을 넣고만든)를 곁들인 것, 토마토소스와 모짜렐라를 곁들인 것(Gnocchi alla sorrentina) 혹은 버터에 세이지 허브를 넣고 만든 소스를 곁들인 것 (Gnocchi burro e salvia) 이 대표적이다. 


그날 내가 먹은 뇨끼는 버터와 잘게 부순 바깔라 대구생선 살과 검은 보랏빛의 올리브(Olive taggiasche) 를 넣어 만든 소스와 곁들여져 있었는데, 그 이후로 먹은 뇨끼 중에서 지금까지도 단연 이날 먹은 이집 뇨끼가 제일이다. 이날 점심 이후, 나는 한달에 몇번이고 이 식당에 전화를 해서 오늘의 메뉴에 혹시 뇨끼가 있는지 물어보고는 했다. 


내가 너무 맛있게 먹어 혹시 레시피를 알 수 있냐고 계산하며 주인장에게 묻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주인장은 '맛있었나요? 에 당연하지요, 우리는 가장 중요한 감자부터 아부루쪼 Abruzzo 의 붉은 감자를 쓰거든요' 라며 알려주었다. (아부루쪼 Abruzzo 주,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지대가 높은 곳에서 나오는 감자로 한국의 고랭지 감자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렇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기본인 뇨끼의 재료, 감자를 고르는 것이 뇨끼의 시작이였다.


사진출처 Photo by Max Nayman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피렌체는 코르네또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