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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책방알바 Dec 01. 2021

위대한 개츠비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댕그랑, 책방 문이 열리고 닉이 누구를 데리고 들어왔다.

“초록, 오늘은 친구와 같이 왔어요.” 닉은 친구를 보며 말했다. “인사해요. 여기는 내가 말했던 초록. 초록, 여기는 내 친구 제이.”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악수를 청하는 제이의 손을 늦게 잡았다.

“제이? 제이라면 제이 개츠비?”

“맞아요.” 닉이 대답했다.

“닉, 개츠비는 죽었잖아요.” 제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서둘러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이고, 내가 무례했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제이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독자들이 많아서 이젠 익숙합니다. 영화 캐릭터가 죽는다고 영화배우가 죽는 건 아닌데 말입니다.”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소설의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배우가 따로 있다고요?”

제이는 닉을 보며 웃었다. “소설배우라고 하죠.”

“가만, 가만, 그러니까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가 당신이 연기한 인물이라고요? 그럼 선생님 이름은 뭐죠?”

“그건 비밀입니다. 작가는 우리와 계약할 때 이름을 밝히지 않기로 약속합니다. 대신 독자들을 만날 때는 대표작의 인물 이름을 사용하죠. 영화랑은 반대죠. 이를테면 영화 버드맨을 아나요?”

“알죠. 여러 번 봤어요.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요.”

“좋아요. 그럼 버드맨의 주인공 이름이 뭐죠?”

“마이클 키튼이잖아요.”

“그건 배우 이름이죠. 버드맨 속 캐릭터 이름이 뭡니까?”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봐요. 모르겠죠. 리건 톰슨입니다. 아는 사람이 드물죠. 사람들은 버드맨의 리건 톰슨 대신 버드맨의 마이클 키튼이라고 하죠. 편의상 그런 건데 사실 잘못된 거죠. 사람들이 워낙 캐릭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니까 주인공 이름이라도 기억하게 주인공 이름으로 제목을 정하기도 하죠. 포레스트 검프나 벤허처럼. 소설은 그럴 일이 없어요. 독자들이 작품에 몰입하는 데 방해받지 않게 인류의 첫 소설부터 배우들은 무명인으로 남기로 했어요.”

“그럼 선생님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도 등장하나요?”

“여러 작가의 작품에서 연기하는 배우들도 있어요. 나는 딱 한 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웨이터 역할을 했죠.”

“설마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그 웨이터?”

“맞아요. ‘상어가...상어가...’ 하면서 말을 더듬는 역할을 했죠. 그것 때문에 관광객들이 청새치 뼈를 상어 뼈로 착각하죠. 아주 재밌는 대목이에요. 나는 주로 피츠제럴드의 작품에서 활동했어요.”

“그럼 피츠제럴드의 소설배우들을 잘 알겠네요?”

“물론이죠. 한 작품을 쓰는 동안은 같이 지내니까. 거의 가족 같이 지내요.”

“혹시 캐롤라인을 아나요?” 내가 물었다.

제이는 나를 보면서 그게 누구냐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에 나옵니까?”

“......에서 책방에서 책을 집어던지는 캐롤라인요.”

“아, 머틀 말이군요.”

“머틀은 누굽니까.”

“위대한 개츠비의 머틀 윌슨요. 그 배우도 대표작이 위대한 개츠비거든요. 머틀이 캐롤라인 연기를 하고 책방주인들한테 미움을 많이 받는다고 속상해 해요. 혹시 여기 책방에 오면 반갑게 잘 받아주세요. 머틀이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는데요.” 제이는 닉을 보면서 말했다. “연기를 너무 잘해도 문제야.” 시계를 보던 닉이 웃었다.

“아, 나는 그것도 모르고 캐롤라인, 아니 머틀이 올 때마다 내쫓았어요. 혹시 만나면 내가 미안하다고 전해주고 꼭 다시 가보라고 말해주세요.” 내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꼭 전하겠습니다. 머틀이 좋아할 거에요.”

“제이, 그럼 작가는 소설배우를 어떻게 섭외합니까?”

“우리는 팀으로 움직입니다. 작가가 스토리 회사에 도움을 요청하면 회사는 알맞은 스토리 뮤즈와 배우들을 꾸려서 아이디어라는 팀을 작가에게 보냅니다. 우리가 도착하면 작가와 일을 시작하죠.”

“소설의 아이디어가 거기서 나오는 건가요?”

“아, 그렇죠. 사람들은 작가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고 말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전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거죠.”

“소설을 작가 혼자 쓰는 게 아니란 말인가요?”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 거의 모든 걸 결정하죠. 소설배우들의 행동, 대사를 하나하나 결정하니까요. 신처럼 행동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소설배우들은 작가가 시키는 것만 하나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작가는 소설배우들에게 자율권을 많이 줘서 어떤 상황만 제시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연기하는 걸 그대로 쓰기도 해요.”

“혹시 소설배우들이 애드립 같은 것도 하나요?”

“당연히 하죠. 소설배우들도 작가에게 영향을 주니까요. 햄릿의 애드립이 대표적입니다. 북북서로 미친다는 대사였죠. 대본에 없는 대사를 햄릿이 한 것인데 셰익스피어가 그걸 받아들인 건 소설배우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죠.”

“혹시 햄릿을 연기했던 배우는 다른 희곡에서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아, 그 배우는 정말 대단했죠. 셰익스피어의 페르소나였어요. 4대 비극의 주인공은 다 그 배우가 연기한 겁니다. 오셀로의 질투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죠. 교과서 같은 연기였어요. 하지만 4대 비극에 너무 힘을 들인 나머지 한동안 광대 역할만 맡았다고 하더라고요.”

“초록.” 시계를 보던 닉이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는 이제 가야겠다.”

제이도 따라서 일어났다. 제이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즉시 손을 잡았다.

“초록,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제이가 말했다. “책방이 정말 멋지군요. 다음에 또 올게요.”

“제이, 언제든지 오세요.” 나는 그제야 손을 풀었다. 닉은 나에게 윙크를 하고 제이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불현듯 생각나는 게 있어서 뒤따라 나갔다.

“제이, 혹시 회사 명함 있습니까? 회사 이름이 뭔가요?”

“영감입니다.” 개츠비는 명함 하나를 건넸다.

나는 명함을 가지고 들어가 안전한 곳에 꽁꽁 숨겼다. 명함은 꽁꽁 숨어 있다. 나는 아직도 제이가 준 명함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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