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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책방알바 Dec 13. 2021

햄릿

풀리지 않는 의문, 풀어보는 이야기

“포틴브라스에게 왕위 계승권이 내릴 것을 예언하니,

임종 시에 내가 그를 선택했다고 일러 주게.

사태의 자초지종과 함께.”

햄릿 5막 2장 362-4(박우수 역)     


왔떠핵! 노르웨이 왕자를 덴마크의 왕으로 만들겠다고?     


《햄릿》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수수께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발성기관이 없는 유령이 말을 하는 것부터 덴마크 왕자가 노르웨이 왕자에게 나라를 넘기는 것까지. 궁금해서 환장하게 만드는 게 셰익스피어의 의도라면, 윌, 굿 짭.     


햄릿이 호레이쇼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은 이해할 수 없다. 노르웨이 왕자에게 왕위를 넘기겠다니. 노르웨이를 정복한 아버지를 흠모한 햄릿이 아닌가. 작은아버지가 왕이 된 걸 보고는, 자기가 왕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참을 수 없었나. 내가 가질 수 없으니 아무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인가. 햄릿은 나라 전체를 꽉 껴안고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에게 그럴 권리가 있나. 그것도 수수께끼다.     


도무지 햄릿의 속을 알 수 없으니 (셰익스피어의 속은 물론이고) 터무니없는 상상이라도 해봐야겠다. 햄릿이 죽기 전에 다른 얘기를 했다면? 호레이쇼가 햄릿의 유언을 바꾼 것이라면? 호레이쇼가 모든 사건의 배후라면?     


햄릿과 관련된 인물들은 모두 죽었다. 아버지, 어머니, 작은아버지, 오필리아, 오필리아의 아빠와 오빠, 햄릿의 두 친구까지. 단 호레이쇼만 빼고. 《햄릿》은 호레이쇼의 단독 증언이나 다름없다. 대질 심문을 할 수 없다. 그러니 호레이쇼의 증언이 미심쩍더라도 믿을 수밖에 없다. 호레이쇼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셰익스피어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     


그래서 상상해본다. 호레이쇼는 노르웨이인이다. 포틴브라스 왕자와 같이 자랐고 함께 공부했다. 군사 교육도 같이 받았다. 포틴브라스와 호레이쇼의 목표는 단 하나. 덴마크를 정복하는 것이다. 호레이쇼는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등잔 밑으로 들어간다. 호레이쇼는 햄릿이 신뢰하는 유일한 친구가 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사건이 터진다.     


“덴마크 상황은 어떤가?”

“클로디어스가 햄릿 왕을 살해했습니다.”

“아주 반가운 소식이군.”

“햄릿 왕이 부인과 동생의 불륜을 발견하고 동생을 죽이려 하다가 오히려 당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려던 일을 클로디어스가 대신 해줬군.”

“그리고 왕자님, 클로디어스가 망명을 요청했습니다.”

“좋아, 받아줘.”

“왕자님.”

“왜 그러나? 내가 자네 그 표정을 알지. 무슨 생각을 하나?”

“포틴브라스 왕께서 못 다하신 대업을 왕자님이 이루시는 건 어떻습니까?”

“무엇을 말인가?”

“덴마크를 정복하는 것 말입니다.”

“그건 내가 평생을 바쳐서 이룰 걸세.”

“수년 안에 이룰 수 있습니다.”

“계속 말해보게.”

“덴마크를 노르웨이에 바친다는 조건으로 클로디어스를 왕으로 세우는 겁니다.”

“왕위 계승자인 햄릿 왕자가 있는데 어떻게 클로디어스를 왕으로 만든단 말인가?”

“묘안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클로디어스가 거트루드 왕비와 결혼하면 됩니다.”

“두 사람이 아무리 사랑한다지만 그게 가능한가?”

“거트루드 왕비는 기꺼이 결혼하려고 할 테고 대신들의 승인은 폴로니우스를 이용하면 됩니다. 클로디어스가 왕이 되면 햄릿 왕자는 더 이상 왕위 계승자가 아닙니다.”

“그렇지. 클로디어스가 아들을 낳는 날에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어렵겠지.”

“그 전에 클로디어스가 일찌감치 처리할 겁니다. 햄릿 왕자가 살아 있으면 왕위가 계속 위협을 받으니까요.”

“자네 말대로 더 이상 왕위 계승자도 아닌데 무슨 위협이 된단 말인가?”

“위협을 느끼게 만들어야죠.”

“어떻게 말인가?”

“햄릿 왕자에게 작은아버지가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알려줄 겁니다.”

“그 사실을 숨겨야지 왜 알려준단 말인가?”

“물론 햄릿 왕의 죽음은 사고사로 위장할 겁니다. 그러나 햄릿 왕자에게는 사실대로 말해줄 겁니다.”

“자네가 직접 말인가?”

“아닙니다. 햄릿 왕의 유령이 나타나 말해줄 겁니다.”

“죽은 햄릿 왕의 유령을 자네가 무슨 수로 불러들인단 말인가?”

“지옥에 떨어진 그의 영혼을 불러낼 수는 없죠. 왕자님,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유령이 아니라 오로라입니다. 보초병들에게 햄릿 왕의 유령이 보인다는 소문을 내서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햄릿 왕자를 거기에 데리고 가면 나머지는 햄릿 왕자가 스스로 알아서 할 겁니다.”

“햄릿 왕자가 알아서 한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햄릿 왕자는 뛰어난 연극인입니다. 제가 대학 시절 내내 옆에서 봤습니다. 햄릿 왕자는 생각이 깊고 상상력이 풍부해서 옆에서 조금만 자극을 줘도 마음속에서 온갖 대사가 먹구름처럼 머리를 덮습니다. 그걸 이용하는 거죠. 마치 자신의 오퍼레이팅 시스템과 대화하는 것처럼요.”

“이 사람아, 좀 알아듣게 말해봐.”

“햄릿 왕자는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도 깊이 흠모했습니다. 아버지처럼 멋진 왕이 되는 게 꿈이었죠.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그 꿈은 허망하게 사라지겠죠. 제가 햄릿 왕의 유령을 봤다고 말하면 절박한 햄릿 왕자는 개구리를 보고도 아버지의 유령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는 아버지의 유령을 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유령은 사실 그가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한 자기 자신의 유령입니다.”

“친구한테 그런 몹쓸 짓을 하다니 이 사람 아주 무서운 사람일세.”

”아무튼 햄릿 왕자는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야심한 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햄릿 왕자의 광기와 오로라의 광휘가 부딪히고, 제가 옆에서 복수심을 자극하면 햄릿 왕자는 클로디어스를 죽여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 할 겁니다.“

“좋아, 이번 작전명은 뭔가? 호레이쇼.”

“오로라 호러 쇼입니다. 포틴브라스 왕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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