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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일기 쓰는 아빠 Aug 20. 2020

말대답하는 아들 - Part II

윤리 교육하는 아빠이긴 한데, 아직 서툴기만 하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물의 생식력, 별들의 움직임, 광물의 변형 혹은 이와 유사한 학문의 대상에 대해서는 면밀히 연구하고 있는 반면에, 좋은 정신 혹은 보편적 지혜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모든 것은 지혜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윤리의식은 지식이 아니다. 하지만 윤리의식 없이 지식을 얻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윤리교육은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참 서툰 아빠다.

 

아빠, 나 코피가 흐르고 있어.


호주 시드니는 아직 겨울이다. 밤 사이 찬 기운에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싶어서 라디에이터의 온도를 평소보다 더 높여 놓았더니 공기 중의 수분이 다 말라버렸나 보다. 선율이 가 코를 손으로 만지더니, 금세 피가 흘러나왔다. 이른 아침 5시에 일어난 일이다.


원두커피 방울처럼 똑 떨어지는 코피를 를 닦아내고 다시 잠들었다.


아빠, 나 코피가 또다시 흐르고 있어.


아차, 라디에이터 끄는 것을 잊었다. 이번엔 다른 쪽 코에서 뚝 하고 핏방울이 떨어졌다. 베갯잇에 딸기잼 같은 핏자국이 번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내도 잠에서 깼다. 마침 오늘은 집에서 근무하는 날이다. 내가 물휴지를 가지러 간 사이에 아내가 선율 이를 안아 달래고 있는 것 같았다.


선율이 가 코피를 흘렸구나, 괜찮은 거니?


그런데 등 뒤에서 선율이 가 뾰로통하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내는 방을 나가야 했다. 엄마는 나가 달라는 의미의 말을 들은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방에 돌아왔다. 선율이 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엄마가 방을 나가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느냐고.


엄마는 밖으로 나가라고 했어. 왜냐하면 싫기 때문이야.  


그때 난 중요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선율이 가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신호다. 진심과 다른 말을 하거나 사실과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 그럴 시기이다. 이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중요한 실수를 저질렀다. 아이에게 너무 어렵고 무거운 질문을 던진 것이다. 물론 평소의 선율이라면 내 질문을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 선율이는 코피를 흘렸고, 폐를 끼쳤다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에서 깨어 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선 도달하기 어려운 윤리적 기준이 담긴 질문에 대답해야 했던 것이다.  


엄마가 방을 나갔어. 어떤 마음이 들었을 것 같으니?


나는 의도를 담아서 질문했다. 선율이 가 대답해야 할 말은 단 한 가지로 정해져 있었다. 평소의 나였으면 선택하지 않았을 표현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선율이의 행동은 왠지 괘씸해 보였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대했던 것이다.  아이의 눈가에 억울함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아이를 그대로 두었으면 스스로 깨우치고 엄마에게 사과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난 윽박질렀다.


선율이는 한참을 울었고, 나는 아이를 등 뒤로 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놀란 아내는 나를 진정시키기 시작했고, 나는 진정할 만한 구실을 찾아서 화장실로 갔다. 세수를 하고 젖은 얼굴을 폭신하게 건조된 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나니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내 얼굴은 슬픔에 가득 차 있었다. 아들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다. 건강한 교육으로 연결 지어야 할 절명의 순간이었다. 내 부족함이 자초한 일이다. 하지만 윽박질렀던 이유는 분명했다. 선율이 두뇌 속에서 잡초처럼 자라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을 뿌리째 뽑아내는 농부를 떠올랐기 때문이다. 선율이의 머리속에 자란 잡초를 뽑아내자는 생각이었다. 방법이 올바르지 않았던 점을 내심 반성하고 있었다.


방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갔다. 선율이는 아까 그 자세로 망연자실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크지 않았다. 억울함과 실망감도 많은 부분 섞여있는 울음소리 같았다.


아빠가 방을 나갔어. 선율이는 어떤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니?


나는 너무 슬펐어.


선율이의 말에 엄마와 아빠가 모두 밖으로 나가야 했다는 사실을 이해시켰다. 상황을 이야기로 잘 설명해주었다. 그랬더니 선율이의 눈망울이 맑아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선율이의 말에는 큰 힘이 있고, 말을 할 때는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점을 차근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아들은 금세 눈 빛을 새파랗게 바꾸더니 엄마에게 사과하러 가는 것은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게다가 방 문 밖은 무척 춥다는 이유도 덧 붙였다.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추운 방 밖에서 슬퍼하고 있어. 저 소리가 들리니?


아내는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준비하고 있었는데, 내 내러티브에 비추어 보니 식기류가 부딪히는 소리가 왠지 서글프게 들려왔다. 선율이 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한참을 생각에 잠기던 선율이 가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내가 뭐라고 사과해야 해?


선율이 가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좋겠다고 말해줬다. 예를 들어,


"엄마, 미안해. 아까 한 말은 진심이 아니었어."


아들은 몸을 일으켜서 아내에게 다가가 사과를 했다. 그런데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문지방을 넘어가는 동안, 아주 찰나의 순간 동안 나를 뒤돌아보면서 은밀한 비난의 눈초리로 이런 말을 남겼다.


아빠를 두고 갈 거야.


아내는 내게 다가와서 "수고했어 오빠"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 줬다. 이 말의 의미를 아내가 알아들었다. 이제는 아내의 활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행동에 옮긴것이다. 아내가 선율이 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선율이 가 아빠를 두고 온다는 말에 아빠가 무척 슬퍼하고 있어.


선율이 가 무척 사랑하고 있는 아빠에게 어쩜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의미를 담은 말이었다. 아들은 그 의미를 알아 들었다. 그러자 그 즉시 선율이 가 내게 달려왔다.


아빠, 두고 온다고 말해서 미안했어.  


우리 부부는 자주 협력을 해서 아들의 교육을 완성시켜 가고 있다. 비록 턱없이 부족한 아빠이긴 해도, 연금술사 같은 아내 덕분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Tip. 육아일기 쓰는 아빠의 양육 방법 #


아빠는 아내와 가능한 많이 걷고 대화하는 즐거움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부부는 한 마음으로 정의正義를 정의답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때론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감당해야 할 지라도.  


선율이 와 협상, 극적인 타결, SIGMA DP1 ORIG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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