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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일기 쓰는 아빠 Aug 27. 2020

10,000 시간을 버리기로 했다,

인공지능 때문에 육아에 목숨 걸게 된 아빠의 사연 - part IV

폐족 가운데는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이가 많은데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과거 공부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中



2019년 12월 마지막 날, 나는 호주 영화 학교 AFTRS 진학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정을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을 적용해서 길게 설명하자면, 과거 공부에 얽매이지 않고 내 길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은 영화인이 되는 게 아니었다. 내 아들을 육아하는 아빠가 되는 길이었다. 나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길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갑작스레 육아하는 아빠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육아하는 아빠가 되기로 하다니, 왜 때문이었을까?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무슨 일이든 1만 시간 동안 반복하면 그 분야에 관해선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매일 풀타임으로 10년을 반복하면 1만 시간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10년은 정말 긴 시간이다.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10년간 살아왔다. 중동의 인권에 대해 두려움을 찢고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현지로 들어가 촬영했다. 동남아시아의 역사적인 비극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캄보디아에 6개월간 머물렀다. 일본과 한국의 단절된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일본에서 도합 5개월을 지내며 500년 전 역사를 거슬러 탐방했다. 그러다 어느 때는 작품들의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서 깊은 스트레스를 겪기도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게 완화되는 과정을 차분히 견뎌내야만 했다. 가만히 웅크린 채로 견디는 시간도 포함해서 10년이 조금 넘은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고 늦은 밤 잠에 들 때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작품 기획과 편집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 활용했다. 잘 돌아가지 않던 머리는 결국 탈모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작품 하나를 기획할 때는 적어도 수개월의 연구기간이 필요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는 참고하는 수준이었고. 촬영 전에는 적어도 8개월 이상의 준비기간이 소모되었다. 다큐멘터리 촬영에 출연할 학술 전문가들을 만나려면 그분들의 저서를 읽어두는 것은 기본이었다. 가장 최근이자, 가장 마지막 촬영지인 일본에서 만난 전문가는 30명에 가까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 중 한 편은 프롤로그(서문序文)에 불과했지만, 한국의 기독교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는 나 자신의 문제점을 진단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일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고민 끝에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학교에 지원서를 보냈던 것이다—한국으로 치면 봉준호 감독이 강사로 근무했던 한국예술 종합학교와 견줄 수 있다—하지만 '어차피 탈락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탈락하고 나면 그 원인을 물어보고 그 부분을 수정하면 될 것이라는 의도였다. 그게 가장 정확한 진단일 테니까. 그런데 덜컥 합격소식이 날아들었다. 합격소식을 알리는 이메일을 열어본 뒤에 마음이 변했다. 처음 의도는 비누거품에 불어난 볼펜 자국처럼 흐려졌다. 호주 영화 산업 분야에 진출할 수 있게 된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내 아들이 아직 어리다는 이유를 핑계로 입학하기도 전에 1년 휴학 신청부터 했다. 그리고 1년 뒤, 자퇴 신청을 했다. 


그 후 독서와 사색을 했다. 그리고 10,000시간 동안 매일같이 반복하던 일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게 된 것이다. 


2019년 12월 마지막 날 새벽, 아내 앞에서 거의 무릎을 접고 앉아서 눈을 마주 했다. 먼지처럼 유유히 날고 있는 생각을 말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긴 이야기는 한 문장에 간단하게 담을 수 있을 만큼 간단명료했다.


이제부터는 아들을 양육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아.


독서와 사색을 통해, 내가 다큐멘터리 제작에 열정을 태우는 시간 동안 세상이 참 많이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미 인공지능은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한 지가 꽤 오래된 일이었고, 인간의 지능을 거의 따라잡은 시기 Sigularity인데, 선율이가 20대 중반이 되는 그 시점이 Singularity에 해당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우리가 막연하고 평범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책임 있는 행동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일에 어쩌면 내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어쩌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아들 육아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양의 파트타임 일을 조금씩 늘려 나가기로 했다. 그 날 이후로 부터 아들의 미래설계를 위해 나 자신을 적극적이고 새롭게 설계하기로 마음먹었다.


인공지능 시대가 어떤 시대 이길래 나는 이토록 호들갑 일까? 


소위 잘 나가는 금융 엘리트, 의사, 법률 전문가들도 인공지능에 대체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돈벌이를 못하는 엘리트가 더 많아지는 세상이다.


2017년, 세계적인 금융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증권 거래인 600명 중 598명을 해고했다. 인공지능 켄쇼를 도입한 이후 일어난 일이다. 자타 공인 금융 엘리트들이 일순간에 무직자가 되었다. 지금은 업데이트된 인공지능 '워렌'을 개발해서 가동 중이다. 


수많은 의사들도 곧 무직자가 될 전망이다. 2012년, 선마이크로시스템즈 공동 창업자 비노드 코슬라는 의사의 80% 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인공지능 신경망 전문가 제프리 힌튼도 2021년 에는 인공지능이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능가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2019년, 구글의 프로덕트 매니저 릴리 펭은 인공지능이 실제로 의학 전문가들을 대체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법률 전문가들도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2016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는 인공지능 판사의 판결 예측 정확도가 80%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2020년 1월 미국 포틀랜드에선 ‘텍사스의 잠옷 입은 법정’이라는 법률 콘퍼런스를 통해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판결 승소 가능성은 물론이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판결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인공지능이 결코 넘어설 수 없으리라 여겼던 창의적인 영상 산업 분야도 주도하게 될 것이다. 출판 산업 분야도 머지않아 주도딩할 것이다. 인공지능 작가의 글을 더 선호하는 독자들이 늘어날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 대로, 과거 공부에 얽매이지 않고 내 길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갈 수 있는 아들로 성장하도록, 아이의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 역할을 맡기로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거의 운명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마치 어렸을 때부터 내 아들의 아빠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무척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비로소 나는 진정한 다큐멘터 리스트가 된 셈이다. 


옷 광고 모델을 유심히 지켜보며 긴 시간동안 이야기 나눴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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