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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일기 쓰는 아빠 Sep 11. 2020

3살 난 아들과 대화하기

아이에게 순수하고 자유로운 판단력을 심어주기 - Part II

I am not a human. I am a robot...... I am here to convince you not to worry. Artificial intelligence will not destroy humans. Believe me.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로봇(인공지능)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인공지능은 인간을 전멸시키지 않을 겁니다. 안심하세요.

— 언어 생성 인공지능 GPT-3,  영국 가디언誌


최근 인공지능 GPT-3 가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쓴 글로 미루어 보면,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이나 존재 의미를 대체하게 될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것은 누구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시대의 거대한 흐름이다. 따라서,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은, 우리의 일자리와 먹거리가 인공지능에게 잠식당하거나 대체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선율이는 자연스러운 지능을 부단히 도 키워나가고 있다. 때로는 아이의 불안정한 행동에 신경이 거슬리기는 했다. 한 가지 사물을 너무 오랫동안 관찰하거나 집착하는 경우, 내 머릿속에서는 [정신장애]라는 전문용어가 떠오르곤 했다. 특히, 어느 한 사물에 과도한 관심과 깊은 상상력을 덧잎히는 경우 내 걱정이 극에 달하기도 했었다.


선율이는 문명이 발달된 세계 어느 곳에서 나 쉽게 볼 수 있는, 그러나 누구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그것, [비상구] 표지판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나 하면, 태어난 이후 아주 간단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 때부터였다.


선율이는 비상구 표지판 그림을 보기만 해도 환호성을 질렀다.


"이거!!"


선율이 가 쇼핑센터나 어느 건물에 들어가면 언제나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지었다.


"비상구."


상상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수천번은 들어 올려서 보여줘야 했다. 그리고 이름을 계속해서 말해 줬다. 물체의 이름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아이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가까운 지인들 중에는 선율이 가 놀이의 대상과 관심을 비상구 표지판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며 염려했다.


"비상구 말고도 더 재미있는 게 많이 있어."


나도 몇 차례 새로운 관심을 둘 만한 것으로 관심을 돌리기 위한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언제나 깔때기 현상처럼 또다시 비상구로 관심이 되돌아오곤 했다. 아내와의 토론과 관찰 끝에 비상구 만지는 횟수를 무한대에서 10회로 제한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비상구 만지는 횟수를 제한한 이후, 비상구 표지판 아래에 있는 비상구 문으로 관심이 옮겨졌다. 그 문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밀어 보기도 하면서 긴 하루를 1시간처럼 보냈다. 소리를 즐겨 듣다 보니, 동네 이웃집 마당에 설치된 우편함을 두드리며 통통거리는 소리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런 방식으로, 소리가 나는 대부분의 사물을 두드리다가 다시 비상구 표지판과 비상구 문의 손잡이로 관심이 되돌아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염려하는 마음 대신에, 아이의 정신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고 있다는 확신이 서기 시작했다.


선율이의 관심사의 폭을 제한하거나 조건을 달지 않기로 했다. 그러는 대신에 아이가 마음껏 호기심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을 만큼의 울타리가 되어주기로 했다. 공익을 칠 만큼의 비윤리적인 행동만은 엄격하게 제한했다. 아이가 이해하기에 최대한 쉽고 짧게 설명해줬더니 선율이도 내 생각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비상구와 비상구문에 쓰여있는 글자들에 관해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림에서 문자로 자신의 관심을 옮긴 것이다. 그리고 종종 선율이는 내게 이렇게 질문했다.


"저것은 뭐라고 쓰여있는 거야?"


나는 느리고 정확한 발음으로 읽어 주었다.


"FIRE EXIT [faɪəʳ egzɪt]"


그랬더니 경쾌한 외국인의 발음으로 따라 읽었다.


"그리고 저것은 뭐라고 쓰여있는 거야?"


"DO NOT OBSTRUCT [duːnɒt  ɒbstrʌkt]"


"그리고 또 저것은 뭐라고 쓰여있는 거야?"


"DO NOT KEEP OPEN [duːnɒt  kiːp oʊpən]"


선율이는 최대한 신중하고도 또렷하게 발음했다. 그 후로도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비상구] 문 만지기를 반복하면서 앞서 배운 세 줄의 문장을 순서에 맞게 암송했다. 그리고 내가 간단하게 번역해준 한국어 문장을 뒤이어 암송하고 춤을 추듯이 즐거워했다.


이런 방식으로 비상구 문 주변에 있는 비상시 대피 약도 까지도 궁금해하며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비상구 문 주변에 적혀 있는 문자 중 거의 대부분을 읽게 되고 난 뒤에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 의미들을 제대로 파악할 시점이 되자, 이번에는 길거리에 흔하게 설치된 도로 표지판에 적힌 글자와 건물들 외벽에 붙어 있는 문자들을 읽어달라고 했다. 나는 이전과 같이 느리고 정확한 발음으로 읽어주었다. 발음이 애매하거나 잘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서 발음기호를 확인해 가며 분명하게 읽어주었다.


지금은 선율이 에게 하루에 15분씩 한글 글자를 가르치고 있다. 매일 15분간만 하는 것이다. 매우 짧고 선명하며 성취감 있는 시간이다. 놀이로 가르치는 것은 결국 놀이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수업이라는 개념을 분명히 인지시키는 중이다. 선율이는 내가 우려한 것과는 다르게도 수업을 즐거워하고 있다. 때로는,


"엄마 빨리 방에서 나가, 수업해야 해."


라고 말하면서 우리 부부를 웃게 만들기도 했다.


아들의 관심을 [비상구] 표지판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관심에 뛰어 들어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쉬운 일이었다. 가족들과 주위의 지인들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뒤로하고 우리 부부가 함께 감행한 일이었다. 덕분에 아이는 호기심의 불빛을 끄지 않았고, 질문의 흐름이 멈추지 않았으며, 위험한 것과 안전한 것의 차이도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이 길을 걷기로 한 이후로 나는 체력의 한계를 경험해야 했다. 선율이 비상구를 만지기 위해서는 내가 들어 올려 줘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위험한 것에 다가가지 않도록 이끌기 위해선 매우 긴 대화가 필요했던 게 더 큰 이유였다. 때로는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하지 못해서 정신과 체력이 탈진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율이 가 자연스러운 지능을 부단히 키워나가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은, 일자리와 우리의 먹거리가 인공지능에게 잠식당하거나 대체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인간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그 사람의 부모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주목할만하게도, 최근 인공지능 GPT-3이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쓴 글로 미루어 보면,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이나 존재 의미를 대체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시대의 거대한 흐름이다.


선율이는 이 문제를 의식하고, 스스로 대답을 찾을 수 있는 인생의 여정을 살아가는 인간人間으로 살기를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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