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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상플러스 Aug 02. 2021

꿀알바

  대기실에 가까울수록 심장은 더 세차게 뛰었다. 목덜미가 뻣뻣해지고 머리가 무거워졌다. 안색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백팩의 어깨끈을 잡은 양손에 힘을 주고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말을 건넸다. 둘은 반갑게 인사를 받았고, 다른 둘은 얼굴을 돌리지도 않고 안녕하세요,라고만 했다. 서먹서먹한 공기가 서늘한 대기실에 흘렀다.


  구청 공공일자리에서 나온 사람은 총 여덟 명이었다. 그들은 2학기가 시작되던 무렵부터 4명씩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일했다. 벌써 몇 달째 호흡을 맞춰왔던 그들은 친밀감을 형성한 듯 보였다. 내가 속한 방역 아르바이트는 6명이 근무 요일을 나누어 3명씩 근무했다. 그들이 먼저 자리를 떴다. 그들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나는 백팩에서 패딩 조끼를 꺼내 입고 일행을 뒤따라 나갔다.


  업무 시작인 8시 정각에 1층 로비에 도착했다. 로비에서 열화상 카메라를 지키는 그들을 지나 주 출입구로 나갔다. 등교 시간에는 방역을 위해 두 곳의 출입구는 폐쇄되고 주 출입구 한 곳만 열어놓았다. 학교를 출입하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열화상 카메라에서 열을 재 이상이 없음을 확인받아야 했다. 


  1학기에 아르바이트한 경험으로 보면 학생들의 본격 등교까지 시간이 삼십 분쯤 남았다. 간간이 교사나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출근하는 걸 제외하면 한가한 시간이다. 정숙이 지정 위치를 벗어나 내게 다가왔다. 

  “저것들 어쩌지? 어제는 첫날이라 그냥 넘어갔다고 치고 이렇게 두 달을 지내는 건 아니라고 보는데. 니 생각은 어때?”

  씩씩거리는 정숙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이 흡사 싸움닭 같다. 조금이라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건 반드시 따지는 성격 탓에 ‘정숙’이라는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그녀가 있는 곳은 소란스럽기 일쑤다. 눈썹이 올라간 채 마스크 위로 드러난 얼굴이 벌건 걸 보니 심사가 많이 뒤틀린 듯했다.

  “그러게. 아무래도 한마디 해야겠지?”

  “한마디뿐이야? 저것들이 어디서 주인행세를 하고 지랄이야. 가뜩이나 생리통 때문에 기분도 꿀꿀한데 계속 신경 거슬리네. 어제 우리가 바깥에서 했으면 오늘은 지들이 밖으로 나와야지. 오늘도 떡하니 로비를 차지하고 있어? 분명히 교사가 업무 나누라고 했지 언제 지들 마음대로 하라고 했는데? 교사 부탁 때문에 조용히 넘어가려고 하는데 저것들이 경우가 없네. 어제부터 계속 마음에 안 드는데 한 판 붙어?”

  정숙은 금방이라도 그들에게 따지고 들 기세였다. 일단은 등교 질서 유지가 끝나고 이야기해보자고 하고 정숙을 자리로 돌려보냈다. 


  밖에 한참 서 있었더니 한기가 들었다. 학생들의 등교가 뜸한 틈을 타 제자리 뛰기를 하고 지정 위치를 맴돌아도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늦여름이라고 봐도 무방한 날씨 탓에 옷차림이 얇았다. 가을이 깊어지도록 날씨가 따뜻했다.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바뀐다고 하더니 이대로 겨울이 영영 오지 않을 듯 낯에는 햇볕이 쨍쨍했다. 정숙의 옷차림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옷깃을 여미게 할 만한 바람이 불었다. 응달은 더 춥다. 한 시간쯤 밖에서 있는 것이야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지만, 열이 식어 발가락까지 시리다고 생각될 때까지 등교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수업 예비종이 경쾌하게 울렸다. 잠시 후면 따뜻한 커피로 몸을 데울 수 있으니 잠시만 참으면 된다는 소리다. 

  “밖에서 고생하셨는데 이리 와서 같이 커피 드세요.”

  바깥 온도와 별반 다르지 않은 대기실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려 종이컵을 꺼내는 우리에게 순하게 생긴 단발머리 여자가 말했다. 

  “그 커피 저희가 준비한 거예요. 차하고 간식, 커피포트도요”

  작은 체구에 안경을 쓴 날카로운 인상의 여자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뒤이어 말했다. 

  “알고는 드시라고요.”

여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너희는 커피 마시지 마세요.”

여자의 말이 내게는 그렇게 들렸다. 굳이 치사하게 커피를 얻어 마실 생각은 없었다. 일회용 커피를 꺼내던 나는 커피를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다음날, 나는 두 개의 텀블러에 커피와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아왔다. 정숙은 종이컵과 지퍼백에 담은 일회용 커피와 차를 가져왔다. 전날과 같이 치사한 꼴을 당하고 싶지 않은 건 정숙도 마찬가지인듯했다. 


  여자들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원탁에 모여 수다를 떨었다. 정숙은 진통제를 먹었다고 하는데도 생리통 때문에 계속 끙끙댔다. 아프지 않았다면 정숙이 여자들과 벌써 한바탕 하고도 남았을 테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남이야 책을 읽든 말든 아프든 말든 여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개념도 없고 배려도 없이 계속 수다를 떨었다. 1학기처럼 아르바이트하며 책 몇 권 읽을 시간을 확보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자들의 수다가 자꾸 신경을 거슬렸다. 책은 10분도 넘게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느라 한 장도 넘어가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해서 4시간 30분 근무할 동안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끊임없이 조잘대는 여자들 때문에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커피를 마시는 한 시간 정도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여자들의 수다는 퇴근 때까지 이어졌다. 


  대기실이라는 좁은 공간에 너희는 너희, 우리는 우리라는 대치점이 생긴 것 같은 상황은 아르바이트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아이들이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손해 보면 절대 안 된다는 일종의 다짐이라도 하는 듯했다.


  해가 바뀌어 학교에서는 다시 방역 아르바이트를 제안해왔다. 나와 정숙은 시간이 되지 않는다며 거절을 했다. 혹시 작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봐, 꿀알바가 악몽으로 바뀔까 봐 고사했다. 그렇게 나의 꿀알바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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