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기로 맞은 날 2 (집에 맞아죽은 여자가 산다)
처음 이 집에 이사 올 때부터 함께 살던 지박령이 나를 비웃는 듯했다. 유독 이 집에 오고 나서 경찰 부르는 일이 잦았는데, 처음 집 보러 온 날 내 나이 또래에서 5살 정도 많은 주인아주머니의 표정에는 우울함이 섞여있었다. 잔금을 치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아줌마는 남편이 이 집을 담보로 돈을 탕진하여 2000만 원밖에 못 받고 나가는 신세였다.
두 번째 이 집을 다시 보러 왔을 땐, cctv가 있으니 보고가도 좋다고 했고, 그 집에는 남자아이 하나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이 눈이 참으로 슬펐다. 이 눈빛은 낯선 이 가 집에 들어와 쑥스러움이나 귀찮음, 호기심 따위가 아닌 마음에 뭔가 큰 응어리가 있고, 답답함이 있고, 집 보러 온 내가 그 자리에 온 것 자체가 그 아이의 귀찮음에 귀찮음 하나를 더 얹어 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이 집에 계약서를 쓸 땐, 갑자기 시어머님이 튀어나와 이 집을 내 이름으로 절대 해 줄 수 없다는 때를 부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사업이 망해서 신용불량자라 남편이름으로 집을 살 수 없으므로 내 이름으로 집을 샀고, 이 집은 하우스 푸어인데, 글을 못 읽는 시어머니는 집은 아들 명의로 해야지 며느리 명의로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이라 못 박았다. 머리에 띠를 두르지는 않았지만 띠가 있었다면 천 겹의 띠라도 두를 셈으로 절대 안 된다고 윽박을 지르고 아들을 구워삶아 집에 찾아와서는 난리 난리 생난리 때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내 엄마를 불렀다. (원래 살던 전셋집의 계약서는 내 이름이었고, 이 집은 대출을 끼고 살 때였고, 남편은 바빠서 내가 계약서를 썼고, 80%을 끼고 이 집을 사는 하우스 푸어였으며 대출이자는 3.2퍼센트 35만 원 정도였다. 5년 동안은 이자만 내고 5년 후에는 원금과 같이 갚는 형태인데, 지금은 대출이자에 원금상환을 합쳐 90만 원대의 돈을 내고 있다. 월세로 사는 셈과 같다.)
며느리 이름으로는 절대 집명의를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은 중간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방관자역할, 착한 아들의 모델링을 연습하는 듯 고민에 빠진 표정만 짓고 있고, 나의 친정엄마는 집 하나 없이 3000만 원짜리 빌라에 팔려간 철없는 딸내미를 애처롭고 너무나 속상한 나머지 손톱으로 손을 꽉 쥐고 철없이 시집간 딸내미를 애처롭게 보는 눈빛으로 가만히 듣고 계셨다.
30대 초반 팔팔한 나이의 나는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어머니, 제 친구들 중에 제가 제일 못살아요. 제가 뭐가 못나서 3000만 원짜리 집에서 25살 나이에 결혼을 해서 이렇게 살고 있지만, 집 하나 제 이름으로 한다고 해서 제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이혼할 것도 아니니 걱정 마세요.라고 했더니, 시어머니는 며느리 주제에 내 아들 재산 다 뺐어가는 파렴치한 인간인 양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나는 또박또박 반박하였다. 어머니, 오빠가 신용불량자라 제 이름으로 하려고 하는 거예요, 제가 신용불량자랑 사느라고 제 이름으로 밖에 할 수가 없어요. 했더니, 그럼, 돈 많은 집사주는 남자랑 결혼하라고 했다. 자기는 아쉬울 게 하나도 없노라며....
맨날, 소매치기당해서 울면서 전화해서 남편을 불러대고
맨날 미끄러져서 넘어져서 아파서 전화해서 남편을 불러대고
맨날 술 먹고 취해서 남편을 불러대는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나는 말이다, 너를 얼마나 예뻐하는 줄 아니? 다른 여자들 만나면 그렇게 며느리 욕을 하는데, 나는 안 그런다, 나는 우리 며느리가 세상에서 제일 좋고, 우리 며느리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나는 세상에서 우리 며느리 욕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진짜 맹세할 수 있어!!라고 늘 말씀하시는 시어머니 입에서 "그럼, 그런 남자를 만나, 너 집사주는 남자"라는 말이 나왔다. 진짜 맹세할 수 있을까? 며느리 욕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맹세 가능할까? 맹세했다는데 맹세하는 거짓말은 어미가 아들한테 가르친 게 분명하다. 아들도 그렇게 맹세한다는데 다 거짓말인 거 보면.... 시어머니는 들통날 일은 없는데, 아들놈에 새끼가 맨날하는 맹세는 늘 거짓말로 들통이 나고, 늘 거짓말로 걸리다 보니. 그놈에 맹세는 거짓말인게 분명하다.
고작 80% 대출로 사는 집 때문에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하라니.... 그 말은
첫째, 이미 내 마음속엔 너 같은 며느리는 없다! 아니면
둘째, 절대 이 집을 너의 명의로 해 줄 수 없다일까?
단순한 시어머니 머릿속에는 둘 중에 하나일 것 같은데... 아님 둘 다 다인가?
결국, 이 집은 남편의 신용불량자신세를 어쩌지 못하여 나와 시어머니 공동명의로 약서를 썼다. 굉장히 쪽팔리게. 80% 대출집에 공동명의는 뭐야,,,, 하...
친정엄마는 나를 집 앞 롯데리아로 데리고 가서 두 눈이 벌게진 채로 말하였다. "인생은 원래 그런 거야, 뭐 어떡하겠어, 이혼할 거 아니면 그냥 살아라."
지금 이 집을 소개해 준 B공인중개사와 전에 살던 집 A공인중개사, 나 원래 이렇게 계약서를 써는데, 시어머니와 남편이 추가된 채로 다시모여 부동산에서 계약서를 쓰는데, 내가 이전 전셋집 살 때 계약서를 써 준 A부동산 사장님이 이 집을 소개해준 B사장님을 무슨 바퀴벌레 보는 마냥 쳐다보던 눈빛은 쓰레기 쳐다보는 느낌과 같았다, 바퀴벌레 + 쓰레기의 눈빛으로 노려보던 눈 빛. 부동산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그때 알았는데, 그때도 느낀 거지만 이 집은 사연이 있는 게 분명하다.
2000만 원 가지고 나가는 원래 집주인은 망해서 나가는 거고, 그런 집에 새로 들어가는 새댁은 시어머니와 거지싸움 끝에 공동명의로 계약을 하는 꼬락서니 하며 부동산의 분위기는 이쯤 말해도 아주 득실거리는 귀신들이 혓바닥을 길게 내밀고 메롱메롱 너는 거지 같은 인생이야 하면서 놀려대는 것 같다.
공동명의로 도장을 찍는 시어머니의 눈엔 이 정도면 됐다, 싶었는지, 어차피 신용불량자 아들 명의로는 명의를 해줄 수 없으나, 또 며느리 아예 빼버리고 본인 명의로만 하면 아주 아들을 쥐락펴락하는 못된 시어머니 같은 이니, 본인이 느끼기에 공동명의로 하자니 한 다리 걸쳐놨다는 생각에 분한 마음과 찝찝하지만 흡족한 상태의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 채로 말하였다.
우리 며느리 너무 예쁘지, 우리 며느리 같은 사람이 없다니깐이라고 말하고 있었고, 남편은 원래 멍청한 눈을 뜨고 있었으나 초점은 없이 멍청한 척 나는 아무것도 모르오... 하는 표정을 짓는 척했다. 여기서 자기가 나서봤자 무슨 말을 하리오... B공인중개사는 왜인지 모르게 자꾸 죄인인 양 원래 거래하던 A공인중개인을 눈을 못 마주쳤고, 나는 이 상황 자체에서 시어머니라는 덩어리 하나만 쏙 빠지면 좋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하튼, 이 집에 이사 와서 좋았던 기억은 단 한 번도 없는데, 그중에 하나가 샤워기로 맞은 사건이 되겠다. 다시 경찰들이 들어온 시점, 그날, 새벽 12시 30분으로 돌아가서 4명의 경찰관중 여자 경찰 한 명은 아이에게 가서 이야기해도 되겠냐고 물었고 나는 그러라 했다. 나는 남자 경찰 2명에게 오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구차하지만, 젖은 머리와 내 몸엔 아직 거품이 있고 저 남자에게 맞다간 죽을 거 같아서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나에게 술을 마셨냐고 물어봤고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대장경찰이 말했다. 남편은 아동학대죄와 폭행죄로 연행하겠다 죄명을 말하며 데리고 가겠다고 했고 나는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으며 남편은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저년이 열받게 했고 맞을 짓을 했으며 자기가 일을 잘하려고 한 건데 쟤때문에 맨날 망하는 거라며 술이 취한 상태로 짖거렸다. 멍멍. 경찰관 두 명이 양팔을 끌고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갔으며 아이는 울고 있었다. 여자 경찰과 대장경찰이 나에게 남편은 조사하러 데리러 간다고 말하였고 또 무슨 일이 있거나 추가적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고 말했다. 친절한 것 같았다, 위안받은 것도 같았고....
아이는 계속 불안에 떨고 있었다, 흐느낌이 멈추지 않은 채로 흐느꼈다. 훌쩍거리는 흐느낌, 콧물이 나오지 않는 흐느낌,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 뺏어도 다시 느껴지는 흐느낌, 그 흐느낌이라는 무게를 가지고 아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가 이내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지난번 나를 때렸을 때, 경찰에 신고했을 땐 둘 다 술을 마셨고, 남편이 엉덩이를 길거리에서 주무르는 상황이어서 하지 말라고 밀치다가 싸워 신고를 했기 때문에 경찰들이 남편을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 담배를 피우고 들여보내는 해프닝으로 끝나 우스웠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아이가 있었고, 아이가 방치되었고, 폭행이 있었고, 취해있었고, 나에게 상처가 남았다.
2시 30분 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집에 보내도 되겠냐고, 조사가 끝났다고 했다. 나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오면 또 취한 채로 말을 걸 것이고 개 같은 주둥이를 바늘로 꿰고 싶을지도 모르니 그날 아침에도 집으로 보내지 말라고 했다. 술이 깼는지 하루 집에 안 들어오고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들어왔는데 너무나 무서웠다. 아무렇지 않은 듯 나는 행동했지만 손이 벌벌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진정이 되지 않았지만 가만히 있었다. 무기력했다. 죽이려면 죽여라. 근데, 너 따위가 날 죽일 배포는 없잖아 하는 심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 죽일듯한 악을 품은 채로 눈빛에는 칼날이 서려있었고 본인을 가정폭력범으로 낙인찍히게 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슬픔도 여려 있었다. 그 슬픔의 무게엔 본인의 어머니가 구타당하던 장면도 포함된 무게의 슬픔이었다.
본인 어미가 맞을 때의 심정과 본인 아내를 때릴 때의 심정은 같은 건 아니었다. 첫째는 슬픔과 동정이고, 둘 재는 환멸과 멸시였다. 죽이고 싶은 표정을 지었다. 본인 어미가 맞을 땐 슬펐지만 본인 부인을 때릴 땐 힘없는 막대해도 되는 대상이었다. 저 년은 나 없으면 집도 없고 능력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여자였으나, 하나의 타이틀이 있다면 본인 자식에 어미였기에 내쫓을 수는 없었다. 나에게도 어쩌면 이건 무기 아닐까? 내쫓기지 않을 방법 중에 하나. 무기라기보다는 족쇄이기도 하다. 덕분에 나는 선택이라는 기로는 없다. 그냥 사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이 가정폭력을 지켜보고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어 어른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남자라는 이성 자체가 무섭지 않을까? 가정폭력이라는 어린 시절에 기억이 없는 내게 닥쳐온 일이라 나는 이렇게 크게 상심하고 상처를 받는 것일까? 아이는 이미 겪어봤기에 이 상황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처음 겪는 나만 이렇게 무시무시한 경험인가? 이걸 보고 자란 아이는 적어도 본인이 불리한 상황이 되면 112에 신고할 줄만은 알았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꿈을 꿔본다.
머리를 많이 맞아서 머리가 멍청해지는 것 같다. 머리만 맞아서 멍이 안 보인다. 아주 기술적으로 때렸다. 그러나 손을 결박한 팔 엔 멍 투성이다. 맞으면 아프다. 멍도 들고 상처도 난다. 하지만 기억은 더 아프다.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은 뇌의 용량의 한정이 있으므로 지나간 기억을 잊는다고 하던데. 나는 왜 지나간 기억일수록 더욱더 선명해지는 걸까.. 그 고통이 계속 진행형이기 때문일까? 잊힐만하면 때리고 잊힐 만하면 때리니 가슴에 두근거림은 더욱더 심해지고 불안함이 엄습한다. 언제 맞을지 몰라서.
경찰서에서 가정폭력범으로 형사처벌을 원하는지 조서를 쓰러 나오라고 했다. 나는 사람을 치어죽일까 봐 운전도 안 하는 사람인데, 처음으로 경찰서를 가봤다. 경찰들은 그날과 다르게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본인들 할 일을 했다. 할 일도 많아 죽겠는데 별 일도 아닌 걸로 아주 사람 귀찮게 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가정폭력전과와 아동학대죄로 기록은 남을 것이며 합의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될 거라 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애 아빠인데, 더 이상의 벌은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내가 내 손으로 처벌할 방법을 생각해야겠다는 생각 했다. 어떻게 하면 악에서 구하지 않는 상황이 될까.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나와 같이 힘들기를 바랐다.
이미, 남편의 죄목은 아동학대죄 방임, 폭력죄였다. 본인이 본인 스스로 만든 문제이지만 신고자는 나이므로 내 책임이었다. 저년 때문에 내가 가정폭력범이 되너고 죽일 년이 된 거다.
이제부터 할 일은 저 인간에게 다른 고통으로 고통 속에 살게 하는 거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가위에 눌렸는지 흐느끼며 웅얼거린다. 으악, 헉,, 허허허허허, 엉엉,,,, 끄,,,,, 어어어어 어,,,, 하하,,, 흐흐흐 이미 시작되었다. 넌 내가 받은 고통이 곱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 고통은 내가 만들어 줘야겠다. 악령들과 함께 계획을 짜야겠다. 고통을 받을 인간이 있으므로 나를 도와달라 청해야겠다. 낮잠을 자면 들리는 바닥에 찰지게 걸어 다니는 발자국소리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집 앞 내가 편의점에 갈 때마다 말을 거는 나무에게 부탁할까.
매 맞는 여자는 또 맞을짓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