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즐기면 재밌는 고통
갑자기 외로움을 느낄 때 온도는 한없이 차갑다. 얼음호수위를 걷다가 빠지직 얼음이 깨져 호수 한 가운데 빠져 갇혀 뼈에 닿는 차가움과 숨이 안 쉬어지는 호흡이 가파지는 느낌, 산속이 혼자 갇혀 길을 잃고 나가지 못하는 까마귀소리가 휘이 휘이 들리고, 발자국 모를 소리가 들리는 공포속의 고립됨. 이런 극한 상황 속의 단어가 아니다.
느낌등의 형태나 모양이 보여 질감으로 느낄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이다. 그것은 살갗으로 느껴지지 않는 상상 속의 무엇이다.
심연의 바닷속 아무것도 안 보이는 깜깜함 속에 갇힌 느낌이거나 저수지에 내리는 빗방울이 물표면에 떨어져 바닥까지 흩어질 때까지의 언제까지 일지 모르는 어두움과 종잡을 수 없는 시간 흐름의 기억이다.
외로움의 크기는 작다 크다의 크기로 표현현이 아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내 생각 덩어리 속의 고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사랑, 즐거움, 나눔 같은 것은 나 이외의 어떤 사람과 공기 중에 겪은 일이라면 외로움은 내 마음속에 나 혼자 겪어야 할 몸 한 가운데 가슴 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는 모양 아닐까. 찌릿한 마음은 심장 주변에서 느껴지므로..
그래서 외로움이란 단 한 가지 나의 마음에 고립이라고할 수 있겠다. 아무리 사치스러운 집과 음식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 전화하면 잠에서 깨어 한참을 통화해 줄 친구가 있다 하더라도 그 외로움을 말로 표현할 길은 없다. 그냥 그 순간 느껴지는 감정.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주는 순간의 마음이 아련해질 뿐이다. 그 외로움은 어떤 행동을 하거나 행위를 하거나 조절하려고 생각한다면, 예를 들어 음악을 듣는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아이스크림을 먹는다거나 하면서 없어지는 게 아니다. 예전엔 그렇게 스쳐 보냈고, 지금은 아니다. 느껴본다.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다만 외로움에 온도는 표현을 하자면 차가움 색으로 표현하자면은 차가운 은빛이겠지만 그 차가움은 냉동창고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순간의 직전만큼의 차가움이다.
오랜만에 나의 마음에 온 외로움이란 단어는 참 쓸쓸 하지만 반갑다. 외로움으로 인하여 보고 싶은 사람을 상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잠시나마 그 사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백중재라는 돌아가신 분이 하늘의 천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날이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다.) 난 오늘 나의 아버지를 위하여 기도 하였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슬픔에서 아련한 추억으로 바뀌는 동안외로움도 많이 성장했다. 예전에 외로움이 아프고 슬픈 송곳 같은 것 있었다면 지금의 외로움은 혼자 즐길 수 있는 찌릿한 순간이다. 외로움마저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삶에서 문득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해결하려 들었는데, 그 외로움은 자주 엄습 되며 나이가 들면 더 하다. 혼자 처리해야 될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예전에 누군가와 얘기하면서 잠시나마 스쳐지나 떠나보낼 수 있는 외로움이었다면, 지금의 외로움은 혼자 견뎌야 할 사치스러운 가슴에 짜릿함인데 이것이 오늘따라 유난히 감사한 외로운 나는 오늘 사치스러운 단어외로움에 사로잡혀 외로워져 본다.
여름 소나기가 내리는 밤, 쿵쾅쿵쾅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밤, 상상한다. 아주 차가운 겨울 공기를 생각하며 눈이 퍽퍽 빠지는 발자국을 내며 저수지 근처로 가는 밤을 상상하며, 뱀조차도 겨울잠을 자느라고 오지 않는 시간, 난 외로움을 꿈꾼다.
아름답구나 외로움이란.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것에 그 시간을 즐길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된 것을 축하한다. 외로움마저도 나의 것이 되었다. 세상 스쳐가는 인연을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는 이 시간에 외로움 오늘밤 그 외로움은 나의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