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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이 Feb 05. 2022

글에서 일러스트 아이디어 뽑아내기

내용을 상징할 소품 찾기

일러스트를 그릴 글을 먼저 소개한다. 조선일보 22 2 4일자 A31면에 실린 기사이다.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77] ‘목탁’이 사라지는 사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 나돌던 시절이 있었다. 제 무지(無知)와 몽매(蒙昧)를 깨 주는 스승은 늘 고맙기만 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선생(先生)’으로 부르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이 단어는 ‘세상에 먼저 나온 사람’이다.

따라서 남을 높여 부르는 일반 경칭이었다. 지금의 스승이란 뜻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퍽 뒤의 일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일컫던 ‘부자(夫子)’가 스승의 호칭으로 더 일찍 자리를 잡았다. 제자들이 공자(孔子)를 그렇게 불렀던 ‘논어(論語)’ 덕분이다.

‘강석(講席)’과 ‘함장(函丈)’도 제자가 스승을 높여 불렀던 단어다. 앞은 ‘가르치는 자리’라는 뜻이고, 뒤는 배울 때 스승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거리인 장(丈·약 3m)을 가리킨다. 손짓 등이 자유로운 거리다.

문자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시절, 중요한 정황을 알리는 관아의 홍보에 방울이 자주 쓰였던 모양이다. 행정 사안은 나무, 전쟁 등 군사(軍事) 소식은 쇠로 만든 방울 혀를 각각 썼다고 한다. 앞의 경우가 ‘목탁(木鐸)’이라는 말로 남아 또한 스승이란 뜻을 얻었다. 방울을 흔드는 일 ‘진탁(振鐸)’은 교직을 가리킨다.

글로 생계를 이어가는 일인 필경(筆耕)에 견줘 남 가르치는 일을 설경(舌耕)이라고도 했다. 장막을 드리우고 가르쳤다 해서 설장(設帳)이라고도 적는다. 공들여 키운 제자를 흔히 달콤한 복숭아와 자두에 비유한다. “세상에 복숭아와 자두가 가득하다(桃李滿天下)”고 하면 많은 제자를 둔 스승의 행복감이다.

요즘 중국의 선생들이 석연찮게 자리에서 물러난다. 정치적 발언을 문제 삼은 학생이 당국에 밀고(密告)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중국 선생들은 이제 제자들을 ‘복숭아와 자두’가 아닌 ‘가시나무[荊棘]’로 여겨야 할 모양이다. ‘스승과 제자’라는 중요한 인간관계가 또 무너지는 문명의 심각한 퇴보다.




이제 일러스트 아이디어를 구상해보자. 글 제목에서 말하는 핵심 단어는 목탁이다. 목탁은 스승을 뜻한다고 한다. 글의 마지막 문장은 '스승과 제자'라는 인간관계가 무너지는 현상을 지적했다. 일러스트의 최종 목적지는 선생님의 권위가 무너지는 장면이다.


목적지를 잡았으니 소품을 찾아야 한다. 때론 소품 하나가 글의 모든 걸 설명한다. 소품은 글 안에서 찾을 수도 있고 밖에서 찾을 수도 있다. 글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소품은 '공들여 키운 제자를 흔히 달콤한 복숭아와 자두에 비유한다.'라는 문장에서 복숭아와 자두를 생각할 수 있다. 대체로 독자는 그림을 먼저 보기 때문에 그림에 복숭아와 자두만 있으면 무슨 말이지 알 수가 없다. 복숭아와 자두는 버리자. 글에서 공자가 나오는데 공자를 그리면 더 이해하기 어렵다. 글에 들어가는 일러스트는 글을 뒷받침해야 한다. 서정적인 글이 아니라면 무슨 말이지 모르게 그려선 안된다.


아이디어가 잘 안 떠오르면 글을 다시 읽는다. 글 첫 문장에 스승의 그림자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림자. 훌륭한 소품이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고 있는 아이만 그려도 그림이 완성될 거 같지만 움직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그림이 생동감 있어진다. 학생이 선생님 그림자를 깨면 어떨까. 깬다는 건 망치 같은 소품을 떠 올 리 수 있지만 소품을 더 추가하면 이미지가 복잡해진다. 그렇다면 학생이 뛰어서 선생님의 그림자를 깨는 모습은? 괜찮은 거 같다. 재미도 있고 주제도 전달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완성한 그림이다. 그림자는 파편이 사방으로 튀면서 깨지게 했고 중국 느낌이 나게 복장이나 색을 맞췄다. 칠판을 그려 녹색과 붉은색의 대비도 주고자 했다. 교권이 무너지는 느낌도 강하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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