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에게 물었다. 왜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냐고
서운함이 가득 담겨있던 그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난 너무도 단호하게 대답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잘못을 인정할 때 하는 거니까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나에게 그 한마디는 모든 책임을 감당하겠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랬다.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벌어진 일에 대해 내게 분명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였고
그 책임에 따른 보상과 처벌을 감수할 것을 약속하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쉽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말의 대가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으니까
내가 틀렸다는 것을, 나의 실수라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내게 분명한 이유가 필요했다. 스스로를 설득할만한 근거가 필요했다.
이 일이 나의 분명한 잘못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머리로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게 내가 건네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흔한 사과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것이 옳다 믿었다.
그것이 의미 있는 사과이고, 그것이 진정한 미안함의 표현이고, 그것이 책임 있는 태도라 믿었다.
분명한 잘못에만 고개를 숙이는 것, 그리고 고개를 숙일 때는 그에 합당한 책임감을 갖는 것
그렇기에 나의 사과는, 나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현재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난감한 상황을 어물쩍 넘어가기 위해 하는
그런 인사치레 같은 가벼운 의미가 아니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가 내게 건넨 미안하다는 말은 어떤 의미였을까
분명한 것은 그 한마디가 나를 다시 웃게 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그가 나에게 건네었던 미안하다는 말은 어떤 의미였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했다.
생각보다 쉽게 건넨 그의 미안하다는 그 말은 정말 그렇게 가벼운 사과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지금의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귀찮음의 표현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던 것은 분명한듯하다.
그가 가볍게 건넨 한마디에 나의 불편했던 마음이 사그라들었고
그렇게 쉽게 건넨 사과의 표현이 나를 다시 웃게 만들기도 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니
사랑하는 그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작은 온기가 될 수 있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넬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불편했다면, 내게 소중한이가 나로 인해 감정이 상했다면
그 이유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그에게 미안함을 표현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건넨 한마디의 사과가 그의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 먼저 내민 부끄러운 손이 그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작은 온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건네는 일은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미안하다는 말 뒤에 거창한 책임감과 의미 있는 보상을 더하지 않더라도
진심으로 건넨 그 말 한마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 더 건네었다면
그가 조금은 덜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그때 내가 그에게 조금 더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건네었더라면
내가 잘못한 객관적 이유를 찾기보다 그의 다친 마음이 먼저 보려 노력했다면
그의 마음에 그렇게 많은 것들이 쌓이고 쌓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 없는 생각들을,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그렇게 전하지 못한 미안하다는 그 말 한마디를 혼자 되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