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묻는다.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다른데 어떡하지?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의 다름을 하나씩 발견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똑같은 질문을 반복해 던져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나 다른 그녀와 나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의 다름이 하나씩 더해진다.
서른이 넘은 나이를 핑계 대기에는 스무 살부터 순댓국집을 찾아다니던 아저씨 입맛의 나와
긴 해외생활 때문이라 둘러대기에는 가족 중 홀로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서구적 입맛의 그녀
첫 만남부터 꼭 보고 싶은 영화라며 미국식 코미디 영화를 고르는 그녀와
영화 속 사회적 메시지가 없으면 감독은 고민하지 않았다 평가절하며 시사적 영화를 좋아하는 나
변화를 외치지 않았다면 이 땅의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았다며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나와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며 지극히 보수적 성향을 지닌 그녀
사소한 습관부터 정치적 이념까지 너무도 다른 그녀와 나는
생각보다 다른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평소 마시지 않던 밀크티 라테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이유는
밀크티 라테 한잔이 그녀를 떠올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노 외에는 잘 마시지 않는 나와 늘 밀크티 라테를 주문하는 그녀
어느 날 그녀 없이 홀로 들어선 카페에서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밀크티 라테 한잔을 주문한다.
커피도 아닌 음료도 아닌, 몇 번을 마셔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미묘한 맛은 여전히 달갑지 않다.
하지만 입안 한가득 머금은 밀크티 라테에 어느새 입가의 미소가 지어진다.
그녀의 얼굴, 환한 미소, 그녀와 나눈 소소한 이야기들, 그리고 그날의 뛰던 심장소리까지
밀크티 라테 한잔은 그녀를 떠올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녀를 떠올리는 일은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녀와 다른 취향이 그녀를 떠올리는 이유가 된다.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는 그것을 좋아하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연애란 그녀와 내가 잘 맞는지, 혹은 잘 맞춰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라 여겨왔다.
오랜 시간을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어디까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지 알아가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의 결론은 이별 또는 결혼이라는 선택으로 귀결된다 생각했다.
그러나 내 입안 가득 맴도는 밀크티 라테의 알 수 없는 향이 내게 말해준다.
연애는 내가 좋아하는 향과 그녀가 좋아하는 향이 같은지 확인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녀가 좋아하는 이해할 수 없던 향조차 좋아지게 만드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향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향이 가져다주는 그녀와의 기억에 미소 짓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와 그녀의 다름은 그녀를 떠올리는 이유가 된다.
그녀를 사랑함이 다름조차 함께하고 싶은 이유가 된다.
나와 그녀의 다른 취향이 그녀를 떠올리는 이유가 된다.
나와 그녀의 다른 습관들이 그녀를 더 이해하고 싶은 이유가 된다.
나와 다른 그녀의 생각이 그녀를 더 사랑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나와 닮은 그녀의 모습들이 사랑의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사랑함이 다름조차 함께하고 싶은 이유가 된다.
나와의 다름이 향기로 남아 그녀의 빈자리를 채우고 나를 따스히 감싸 안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