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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Dec 03. 2018

서른 즈음에

서른이 되면 내가 그리던 삶의 중간지점 그 어딘가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줄 알았다.

서른이 되면 삶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주변이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그런 여유쯤은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다.

서른이 되면 그런 평온한 삶, 넉넉한 내가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서른 즈음에는 내 삶의 여유가 생기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지게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서른의 문턱을 넘어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서

 나는 여전히 완성되지 못한 채 세상의 어느 언저리에서 갈길을 잃어 방황하고 있고

하루하루의 삶조차 버거워하며 오늘을 또 그렇게 버텨내고 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아직은 세상을 다 알기에는 한없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서른이면 다달아야 할 세상이 정한 기준 그 어딘가에

내가 아직 이르지 못한 까닭인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서른이 넘은 오늘의 나는 십 년 전 세상의 첫 발을 내디뎠던

스무 살 어린 소년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였다.

아니 오히려 세상의 높은 벽 앞에서 수백 번 넘어지고 깨어져

그때의 열정과 패기마저도 잃은 초라한 모습인듯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세상을 다 알기 한없이 부족한 탓인지
내가 세상이 정한 기준에 한참 멀어진 탓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오늘의 나는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쉼 없이 달리고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정해준 그 길을 따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흘러간 십 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다시 제자리에 서있는 듯한 나를 마주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분명 시작점은 같아 보였는데 누군가는 이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리 사라져 버렸고

또 누군가는 세상이 규정하지 않은 새로운 길을 떠나 자신만의 길 위에서 당당히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여전히 같은 자리를 서성이며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주저앉아 버린 것만 같아서

그런 내 모습이  부끄러워, 그런 나를 믿고 있는 부모님께 미안해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초라한 내 모습이 부끄러워, 날 믿고 있는 부모님께 미안해서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야 얼굴에 묻어 내리는 눈물 한 방울을 훔쳐내고

멀리서 살며시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을 쫒아, 실오라기같이 흐르는 작은 물줄기를 따라

그렇게 천천히 아주 조금씩 뒤를 돌아봤다.


참 많은 길을 걸어왔었다.

늘 반복되는 장면의 연속이라 제자리걸음이라 여겼었는데

난 꽤 긴 삶의 거리를 걸어왔었고,  나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 괄목할만한 성장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리 자랑할만한 성공은 아니었을지라도

난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 유별난 길은 아니었기에 남들이 걷는 길과 다르지 않아 보였을 뿐

나의 길을, 나만의 길을 그렇게 나는 조금씩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본 길 위에서 꽤 긴 삶의 거리를 마주했다.
대단치는 않지만 나는 그렇게 나만의 길을 조금씩 걸어가고 있었다.


때로는 작지만 새로운 한걸음을 내딛기도 했으며,

가끔은 걷다 지친 이에게 작은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었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며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 빠르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걸어왔으며,

새롭지는 않지만 한결같이 나의 길을 지켜내고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의미 있는 걸음을 내딛었으며,

그렇게 매일 매일 나의 길을 조금씩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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