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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창섭 Feb 08. 2022

혼자 하는 화해 6

월요일 (홍지호_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



처음은 자꾸 지나간다

관대한 척을 하면서

키스가 있었다

하루종일 숨을 쉴 때마다

당신이 숨쉴 때 나는 냄새가

들락날락거렸다

바퀴가 터진 스쿠터처럼

처음은 지나갔고 이제 키스를 해도

당신의 숨이 들락거리지는 않는다


처음이 지나간 후에도 나는 자꾸

처음이에요 라고 말하게 되었다

처음이라고 하면 선생이 되어주니까

선생이 늘어가고

미숙함을 이해해주었다

초범이라는 단어가 형량을 줄이는 것처럼

데뷔작을 태워버리고

차기작을 발표한 작가가 있다면

그리워하겠지

형량은 늘어날 것이다


찾고 있던 신에게

질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처음으로 하고 싶은 질문이 있다

나를 만든 건 처음이지요?

세상을 만든 것도 처음이지요?

그러면

봐줄 수도 있을 거 같다






오늘은 엄마랑 잠시, 나 옛 살던 동네, 등촌역에 갈 일이 있었다. 볼일을 다 본 후, 괜시리 만보를 채우고 싶어 엄마에게 "날씨도 좋은데 집까지 걸어갈까?" 물었다. 얼마나 걸리니, "3~40분 걸리지 않을까", 생각보다 머네, "그래도 걷자". 


등촌역에서 까치산 우리집 오는 다양한 경로 중 어떤 길을 선택하면, 이사가기 전 누나가 살던 화곡동 집을 지나갈 수 있다. 그 집은 누나가 딸을 낳았던 누나의 집, 엄마의 딸이 딸을 낳았던 집.


"엄마, 예전에 등촌 내 집에서 누나집 갈 때 가던 길이 바로 이 길이야" 그래 맞다, 그 좁은 집에 냄새가 밸까봐 미역국을 끓이지 못해, 굳이 네 집에서 끓여서 그 무거운 걸 메고 걸어다녔단다. 사실 좀 미웠단다. 밉기도 해서 친정엄마인데도 자주 오지 못했단다. "아니야 엄마,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주 올라왔었어." 위로의 의미로 말했지만 그렇게 자주 왔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이 길로 걸어가자고 말한 순간부터 난 엄마를 울리려 작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집 앞에 도착해 한참을 그 집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걸음했는데 어쩐지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엄마, 좀 앉았다 갈래?" 그래, 저기 좀 앉았다 가자. 


단 한 마디만 할 수 있다면, 딸아, 엄마는 네 생각보다 너를 많이 사랑했단다.


며칠 전엔 꿈에 네 누나가 나왔는데, 한밤중에 깨어 온 집안을 찾아 뒤졌단다... 혹시나 어디 있을까봐.... 놀란 아빠가 뛰쳐나와 날 끌어안고 함께 울었단다...

나는 네 앞에서 이리 울겠지만, 너는 내 앞에서 절대 안 울 것이란 걸 안단다... 나랑 함께 있지 않을 때도 울지 말거라...내 맘은, 내 맘은, 아무도 모른다...


며칠 전 학생들과 홍지호 시인의 '월요일'이란 시를 읽고 난 후, 여러분들은 신을 만나게 된다면 무얼 가장 묻고 싶냐고 묻고 이야기 나누었다. "선생님은요?"

아마 나는, 사람이 죽고 나면 우리는 왜 그 죽음을 슬퍼하게 되었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일단 귀싸대기 한 대 날린 후에. 더 열받으면 다른 한 쪽도 날릴 것이다. 처음이라고 절대 안 봐 줄 것이다...절대로...


집에 왔는데 걸음수가 만보가 되지 않았다. 가장 빠른 길로 오지 않고 둘러둘러 걸었는데도 그렇다. 만보는 생각보다 멀고, 집들은 생각보다 가깝다. 하지만 집이 아닌 곳은 멀다. 집에는 산 사람들이 살고 있다.



202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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