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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첫째 아이 등교 거부

프랑스 초등학교 첫날,

첫째 아이는 교장선생님의 손을 잡고 엄마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프랑스에 도착하기 전부터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귀가 따갑게 들었고, 입학 전에 학교를 둘러보며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을 미리 만났었기에 사전에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아이는 웃으며 학교에 들어갔고 풀타임으로 학교에서 오전, 오후를 보냈다.


수업을 다 마치고 수많은 부모와 보모 사이에서 엄마를 발견하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달려오는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렇게 감격의 하교 후, 먹고 싶었던 고급 초콜릿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좋아하는 삼겹살 고기와 밑반찬을 해주며 학교가 어땠는지 연신 물어보았다. 하지만 첫째 아이는 그때마다 계속 대화를 피하고 딴청을 피웠다. 애간장이 타도록 궁금했지만, 아이가 피곤해할까 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어린이집에 대해 시시콜콜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름 견딜만했나 보다 짠하면서도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는 둘째 날부터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학교까지 잘 걸어가다 학교 문 앞에만 다다르면 강렬히 등교 거부를 하며 우리를 당황케 했다. 학교 문 안으로 들어가길 온몸으로 저항하며 떼를 썼다. 첫째 날처럼 교장 선생님이 손을 내밀었지만, 그 손을 뿌리치고 내 뒤로 얼른 숨어버렸다. 


낯선 선생님

낯선 교실

낯선 언어


아이는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홀로 감당하며 겨우 버텨냈다. 담임 선생님과 상의 후, 둘째 날부터는 적응 기간을 갖도록 했다. 오전 수업만 하고 집에 일찍 오거나, 오전 수업 후 점심시간(2시간)에 집에 왔다가 다시 학교에 가길 반복했다. 그렇게 차차 적응하는 거 같으면서도 유독 등교 시 엄마 손을 놓고 혼자 학교 문으로 들어가는 걸 힘들어했다.  


프랑스는 학교 보안이 철저하다. 정해진 시간에만 학교 문이 열리고 그 외 시간에는 굳건히 닫혀있다. 등교 시간에는 보안 담당 선생님이, 하교 시간에는 담임 선생님이 일일이 아이들과 학부모의 얼굴을 확인하며 인사한다. 그런 학교에서 아이가 학교 안에 들어가길 거부하니 여러모로 난감한 상황이 됐다. 학교 문은 닫혀있어야 할 시간에 열려 있어야 했고, 담임 선생님은 반 친구들을 교실에 남겨둔 채 수업도 시작하지 못하고 아이를 데리러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선생님에게 우는 아이를 떠넘긴 채 뒤돌아서야 하는 내 심정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했다.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도 모자라 어쩌면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까지 남기게 되는 거 아닌가,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주면서까지 이 짓을 꼭 해야 하나 마음이 착잡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은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그 광경을 유심히 관찰하고 계셨다. 아침마다 아이를 학교에 들여보내기 위해 어르고 달래며 씨름 중인 엄마 아빠를, 학교 안으로 우르르 쏟아져 들어가는 학생들과 그 사이로 얼핏 보이는 운동장으로 통하는 문과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을 겁에 질린 채 응시하며 발을 못 떼고 있는 아이를 교장 선생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마침내 교장 선생님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상급생 형과 누나를 아이에게 친구로 붙여준 것이다. 그들은 상급생 중에서도 책임감이 강하고, 사랑이 많은 학생들이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이 친구들이 첫째 아이의 교실까지 데리러 와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알파벳을 알려주고, 점심을 같이 먹으며 곁을 지켜주었다. 

그러면서 아이는 정서적인 안정을 찾아갔다. 마음이 편해지니 더 이상 학교에 가는 게 두렵지 않았다. 집에서도 그 형과 누나가 너무 좋다며 자랑하듯 이야기했다. 우연히 등교 시간에 그 상급생 남학생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아이를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내게 아이가 너무 귀엽다며 아이를 도와주는 것이 자신의 기쁨이라고 이야기했다.


교장 선생님의 배려와 혜안이 정말 고마웠다. 한 아이의 적응을 위해 교장 선생님과 보안 선생님, 담임 선생님과 또 다른 선생님들이 합심하여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내가 기억하는 교장 선생님의 이미지는 교장실에서 하루 종일 서류에 둘러싸여 자기 책상 앞을 지키거나, 굽신거리는 선생님들에게 내리깔며 훈계하거나, 운동장에서 지쳐있는 학생들을 향해 일장 연설을 하는 지루하고 고리타분하고 소통 불능의 권위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프랑스 교장 선생님은 학교 문 앞에 서서 보안 선생님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등교 시간 동안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 교장실에서 강아지를 키우며 어떤 학생이든 교장 선생님에게 용건이 있으면 자유롭게 교장실을 드나들 수 있게 하였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자유로운 모습이 한국의 전형적인 교장 선생님과 비교되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제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영원히 들어가지 않을 거 같았던 학교 문 안으로 힘차고 당당하게 혼자 들어간다.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 품을 떠나 어린이집에 갔던 때가 떠올랐다. 처음엔 울고불고 엄마와 한시라도 떨어져 있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흐르니 엄마와 잠시 떨어져 있어도 금세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됐다. 그러면서 어린이집에도, 선생님에게도, 엄마에게도 신뢰가 생겼다. 게다가 장난감도 많고, 함께 놀 친구도 있고, 흥미로운 프로그램도 참여하니 점점 어린이집이 재밌는 곳이라는 걸 인지하게 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뒤도 안 돌아보고 친구를 따라 어린이집으로 쏙 들어가는 바람에 ‘저 녀석이 벌써 저리 컸구나’하는 서운한 마음에 되려 엄마인 내가 눈물 콧물을 주책없이 흘렸던 때가 있었다.


아이는 이렇게 세상을 경험하며 배우는 타고난 힘이 있는데 아이에 대한 믿음이,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내 안에 아주 부족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울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 부부에겐 멘붕이 왔고, 아이를 당장 그곳에서 구해와야 하는 거 아닌가, 학교를 때려치워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와 함께 불안해하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마 우리의 걱정과 불안이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달됐으리라.


오늘도 엄마에게 겨우 뽀뽀를 해주고 학교 안으로 휙 들어가 버리는 아이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프랑스 학교가 무서워 엄마의 손을 꽉 잡고 놔주지 않았던 몇 달 전 아이의 모습과 패딩 점퍼에 손을 깊숙이 욱여넣고 자기 등보다도 큰 가방을 등에 메고 유유히 걸어가는 지금의 뒷모습이 교차하며 왠지 모를 쓸쓸함이 꾹 올라온다. 이렇게 아이는 마음의 준비가 늘 한 발짝 늦는 엄마를 기다려 주지 않고, 어느새 성큼 다가오는 계절의 변화처럼 훌쩍 커버리는 거 같다. 

파리도 어느덧 겨울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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