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한국에 있을 때 프랑스어를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 프랑스어 알파벳 아,베,쎄(a,b,c)도 모른 채 파리에 소재한 공립학교에 바로 입학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 2주가량 부대낌이 아주 심했다.
첫째 아이는 작은 규모의 어린이집에서 7세 반에 있다가 별안간 큰 규모와 복잡한 시스템을 갖춘 프랑스 초등학교 1학년으로 바로 입학했다. 그것도 모자라 낯선 문화, 환경, 언어에 동시에 적응해야 했다. (언어 문제로 초등학교가 아닌 동생과 같은 유치원에 한 학년 낮춰 보내려 했지만, 행정 절차상 불가능했다.)
초등학교 특성상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고 일정 수준의 학습을 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프랑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입학하자마자 알파벳을 읽고 쓰는 것부터 차근차근 가르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ㄱ, ㄴ, ㄷ, ㅏ, ㅑ, ㅓ, 가, 나, 다 같은 식의 자음과 모음이 어떻게 다르게 발음되고 합해지는지, 합해지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아주 천천히 반복적으로 가르친다. 대부분의 프랑스 아이는 알파벳을 읽고 쓰는 걸 모른 채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첫째 아이는 첫 주부터 프랑스어 수업을 너무 힘들어해서 담임선생님과 상담했다.
“아이만 힘들어하는 게 아니라 반 전체 아이들이 모두 지겨워하고 힘들어하는 수업입니다. 그래서 아주 느린 속도로 천천히 가르칩니다. 다른 모든 친구도 아이처럼 똑같이 어려워한다는 걸 꼭 알려주세요.”
세심히 신경 써주는 선생님께 연신 고맙다고 말하니 그게 선생으로서 자기 일이라며 아이의 가능성과 잠재성을 칭찬했다. 그리고 아이가 힘들어하는 건 당연하고 시간이 걸리니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해 주었다. 온종일 낯선 언어로 공부하는 게 힘들 테니 수업 중에라도 언제든 그림을 그려도 좋다고 아이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었다. 현재 아이는 프랑스어 공부에 조금씩 흥미를 느끼는 중이다. 질리지 않게 배우고 다른 친구들도 자기만큼 읽지도 쓰지도 못하니 자신감을 얻었다.
홍콩에서 살다 온 같은 반 친구 엄마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자기 아이들도 홍콩에서 영어만 구사하다 파리에 왔는데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했단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니 아이들은 영어로 말하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불어가 입에서 나왔다며 아이들이라 새로운 언어를 금세 배우니 외려 한국어를 잊지 않게 꾸준히 가르쳐주라며 조언해 주었다.
요즈음 첫째 아이는 한국에 비해 간기가 적어 밍밍한 프랑스식 점심을 먹기 힘들어하는 거 빼고는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즐기는 중이다. 조금씩 일상 단어나 간단한 회화를 프랑스어로 말하고 있다. 그런 아이를 보며 학교에서 하루 종일 말을 못 알아들어 얼마나 답답할까 짠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온갖 경쟁과 시험에서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라 안심이 된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 대신 매일 푸른 잔디에서 축구하며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논다. 숙제도 복습 차원에서 그날 배운 분량을 단순히 읽기만 하는 거라 5분도 채 안 걸린다. 심지어 수요일에는 단축 수업이라 숙제가 아예 없다. 방학도 자주 있어 학교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방학이 온다. 예를 들어 9월에 학기 시작하면 10월에 2주 방학하고, 11월에 학기 시작하면 12월에 또 방학하는 식이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초등학교 1학년은 아니 초등학교 자체는 신나게 놀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소득별로 상이한 점심값만 지불하면 무상이다.
걱정과 후회로 가득했던 2주 정도의 적응 기간이 지나니 아이들도 우리도 모든 게 한결 수월해졌다. 처음에 아이가 학교 안 간다고 힘들어할 때는 왜 여기까지 와서 아이들을 고생시킬까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나날도 있었다.
지금은 잘 적응해 가는 아이들이 참 대견하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