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의 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출석 100일 기념 축제를 열었다. 학생들이 학교에 입학하여 출석한 지 100일째 되는 날에 점심시간이 끝나고 1시 30분부터 3시까지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여 다 함께 기념하고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100일을 기뻐하고 기념하는 건 한국만의 문화라고 줄곧 믿어왔는데 프랑스에서도 100일을 챙기는 모습이 신기했다.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100개를 모아 만든 컬렉션과 100이란 숫자가 쓰여있는 간식을 100일째 되는 날 학교에 가져오라는 미션이 사전에 주어졌다.
하지만 가정통신문에 100개의 물건을 가져오라는 부분이 도통 이해가 안 돼 100이 쓰여있는 주스와 쿠키만 별생각 없이 싸서 보냈는데 이 일의 파장을 이때는 알지 못했다. 금요일마다 중요한 일정이 있어 학부모 참석 여부를 묻는 난에 체크하지 않았다. 그런데 행사 당일 오전에 담임 선생님에게 개인 문자가 왔다. 100일 기념 파티에 부모님들도 올 수 있는데 아이와 친구들이 어울리는 모습을 자연스레 볼 기회라며 참석을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생각해 보니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는 학교인지라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늘 궁금했는데 선생님 말마따나 아이의 학교생활을 잠시라도 엿볼 좋은 기회였다. 물론 담임선생님과 상담했을 때, 아이가 다쳤을 때, 아이의 건강검진을 위해 학교에 파견된 의사 선생님과 상담했을 때, 학부모 회의 때, 학교 입학 등록 서류 제출했을 때 학교 내부로 들어갈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목적이 또렷한 방문이었기에 학교를 찬찬히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이번 기회에 아이가 놀고 공부하는 공간도 보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마음껏 보자며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했다.
시간에 맞춰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의 반에는 우리를 포함해 10명 정도의 학부모가 와있었다.
갑작스레 등장한 우리를 보고 첫째 아이는 적잖이 당황하며 희비가 혼재된 범상치 않은 눈길을 보냈다. 서프라이즈로 나타난 우리를 보고 마냥 기뻐할 줄 알았는데 정반대였다. 하지만 상황을 살펴보니 아이의 표정이 왜 굳어있는지 금세 이해가 되며 아뿔싸 싶었다. 아이들 각자의 책상 위에는 집에서 야심 차게 준비해 온 자기만의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만 유일하게 100개의 컬렉션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100개의 동전, 100개의 종이비행기, 100개의 두루마리 휴지심으로 만든 우주선, 100개의 포켓몬 카드, 100개의 단추, 100개의 파스타 면, 100개의 깃발, 100개의 사진, 100개의 실 팔찌, 100개의 나사못, 100개의 씨앗, 100개의 선물 종이상자, 100개의 지하철표 등 기상천외하고 다양한 컬렉션이 있었다. 화려하게 놓여있는 다른 학생들의 컬렉션 사이에서 첫째 아이의 책상에는 아이의 이름표와 종이 한 장이 달랑 초라하게 놓여있었다. 그 종이에는 십, 삼십, 육십과 같은 한글이 들쑥날쑥 아이의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아무것도 준비해 오지 않은 아이를 위한 담임선생님의 묘책이었다. 선생님이 구글 번역기로 찾아줘 급하게 보고 썼는데 자기만 아무것도 못 해왔다며 아이는 원망 가득한 목소리로 울먹거렸다. 미안한 마음에 얼른 파란색의 마커 펜을 빌려 십부터 백까지 한글로 급하게 다시 써주었다. 다행히 선생님이 아이만의 컬렉션이 생겼다며 칭찬해 주었고, 친구들도 관심을 가지고 봐주었다. 다른 학부모들이 한글로 쓴 숫자를 신기해하며 사진까지 찍으니 그제야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1학년은 딱 2개의 반이 있는데 다른 반 친구들의 컬렉션도 반을 바꿔서 구경했다.
10이 10개 있으면 100이 된다는 산수의 원리를 담임선생님은 파티 중에도 깨알같이 짚고 넘어가며 아이들과 평소처럼 숫자 세기를 하였다. 강당으로 내려가서는 두 반 아이들이 섞여 팀이 배정됐고 축제에 참석한 학부모들의 도움을 받아 산수 문제를 함께 푸는 게임을 하였다. 그리고 싸 온 간식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우리는 중간중간 학교 구경도 하고, 복도에 붙여져 있는 미술 작품들을 통해 아이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했다. 친구들과 웃으며 장난도 치고, 어깨동무하며 어울리는 아이의 모습에 안심이 되면서도 프랑스 말을 알아듣지 못해 저 혼자 얼마나 답답할까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완벽주의 기질에 경쟁심도 강해 한국에서는 늘 주목받고 도드라졌다. 프랑스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해 무력감을 느낄 때면 얼마나 자괴감이 들까.
학기가 시작하고 입학한 아이는 프랑스 학교에 출석한 지 사실상 100일도 안 됐건만 아이를 보면 조급한 마음이 앞선다. 프랑스 말만 잘하게 되면 누구보다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는 아이일 텐데 언어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힘든 시기가 너무 더디게 가는 거처럼 느껴진다.
내 아이를 관조적으로 바라보기란 왜 이리 어려운 건지.
그럼에도 아이에게서 희망을 본다. 엄마와 아들. 아이와 나는 우리만이 교감하는 정서와 언어가 있다.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에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내가 이 아이에게 얼마나 많이 사랑받고 있는지에 대한 앎과 신뢰가 서로 안에 단단한 토대로 깔려있기 때문이리라.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라 이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낼 거라 믿는다.
학생들이 강당에 한데 모여 두 담임 선생님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아이는 고개를 돌려 학생들 뒤에 서 있는 부모들 사이에 나를 확인하며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그런 아이를 향해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아이는 미소를 띤 채 다시 선생님을 향해 완전히 돌아앉았다. 아이의 작은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데 그 순간 엄지와 검지로 귀여운 하트를 만든 아이의 작은 오른손이 왼쪽 겨드랑이 사이로 쏙 나왔다. 시선과 몸은 선생님께 고정한 채 은근슬쩍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아이의 행동에 나 역시 미소가 번졌다.
프랑스어를 잘 모르고 세심하지도 못한 성격 탓에 준비물 하나 제대로 못 챙겨준 엄마지만 그런 엄마를 이해해 주고 용납해 주는 아이에게 오늘도 자기 전에 네가 엄마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네 존재로 엄마의 삶이 얼마나 풍성하고 행복한지 꼭 끌어안고 말해 주며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매일 밤 치르는 우리만의 의식이지만 아이의 학교를 다녀온 오늘은 그 고백에 더 마음이 실렸다. 성경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이 있다. 그 구절을 처음 봤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타인을 자신과 같이 여기며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건지, 흉내는 낼 수 있어도 과연 어떤 인간이 진정으로 그럴 수 있을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식을 낳고 그게 가능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처음 하였다.
나로서는 자식이 아니었다면 절대 느꼈을 수 없을 것 같은 종류의 사랑. 계산 없이 나를 희생할 수 있고, 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고, 내 존재보다 항상 더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유일한 존재. 이것이 어떠한 힘의 원리인지 모르겠다.
다만 자식을 키우며 이런 확신이 든다.
신은 태생적으로 워낙 이기적이고 유독 자기중심적인 그래서 타인에게 사랑을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없고 그게 뭔지 감조차 없는 나 같은 존재를 불쌍히 여겨 특별히 자식을 선물한 게 아닐까 하는.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신비롭다. 자식을 향한 그 변하지 않는 사랑이 나를 변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