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치원 학부모위원회
그리고 크리스마스 파티
프랑스 유치원에는 학부모위원회가 있다. 투표로 선임된 학부모위원회는 학부모 전체를 대표해 다양한 일을 한다. 학교의 행사를 기획하거나 진행을 도맡아 하는가 하면, 선생님들과 회의를 통해 학교 전체를 위한 규칙과 규율을 정립하거나 학교의 발전을 위한 비판 어린 건의도 한다. 때로는 자금을 모아 학교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거나 기부도 하고, 학부모와 교육자 간 교량의 역할과 학부모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책임지기도 한다.
어느 아침에 둘째 아이를 교실에 데려다주고 나오니 다과와 음료가 세팅된 테이블 주변에 여러 학부모가 담소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프랑스어를 못하는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 어떤 상황인지 영어로 물으니, 학부모위원회를 소개하기 위한 자리라며 위원회 멤버 중 영어를 유창히 하는 한 엄마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맛난 커피를 홀짝거리며 몇몇 엄마 아빠들과 통성명하고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어떤 엄마와는 ‘비쥬 Bisou’(볼에 대고 쪽 소리를 내는 인사)를 하며 프랑스식 인사를 처음으로 경험해 보기도 했다.
어떤 주에는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눈 주변을 다쳐온 적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있었다. 화요일, 금요일 오후에는 활동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돌보는데 담임선생님과 활동 담당 선생님 간에 소통이 안 돼 아이가 다친 경위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이 말로는 다른 반의 어떤 친구가 일방적으로 할퀴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필요를 느꼈다. 프랑스어가 서툰 아이는 놀다 다쳐도 선생님에게 아프다고 표현하거나 다친 상황을 설명할 수 없기에 경미한 사고는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위원회에 건의했다. 더구나 사고의 경위를 정확히 알고 있는 선생님이 없었다는 아쉬움도 전달했다. 아이들이 놀다가 싸우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학교에서 충분히 다칠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엄마로서는 적어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다쳤는지 알고 싶었다. 간과된 작은 사고가 언제든 큰 사고로 번질 수도 있고, 프랑스어를 못하는 아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기에 한국에서보다 더 날이 서게 되었다. 위원회는 나를 대신해서 선생님들에게 이 작은 사건을 공론화하고 오후 활동 선생님과 담임선생님에게 다시 한번 아이의 상황을 전달해 주었다. 위원회 구성원들 역시 엄마, 아빠이기 때문에 충분히 나의 염려를 이해해 주었고, 자신이라도 아이가 그렇게 다치면 이유를 알고 싶었을 거라며 당연한 권리라고 위로를 건네주었다.
이렇게 고마운 일을 하는 학부모위원회가 이번엔 크리스마스 파티를 기획하였고, 우리 가족은 떨리는 마음으로 난생처음 크리스마스 공식 파티에 참석하였다. 위원회는 사전에 파티에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티켓과 학교 로고가 새긴 티셔츠와 에코백을 판매하여 파티 준비 자금을 마련하였다.
파티 당일에는 화분, 산타 모자, 초콜릿과 캔티, 학부모들이 기증한 중고 장난감과 책, 아이들의 미술 작품, 어른들을 위한 뱅쇼Vin Chaud가 판매되었다. 아빠들로 구성된 밴드는 신나는 크리스마스 곡을 연주하였고, 아이들은 학부모들이 가져온 케이크와 쿠키를 먹으며 학교 안에 있는 실외 놀이터와 강당을 깔깔거리며 뛰어다녔다. 어떤 아빠는 엘프 코스튬을 하고 아이들 앞에 등장하여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어떤 엄마는 재능을 활용해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가져와 전문적인 가족사진을 무료로 찍어주기도 하였고, 어떤 엄마는 여러 곳에 예쁜 포토존을 만들어 놓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이들의 미술 작품이었다. 우리는 둘째 아이의 그림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평소 등교 시에 교실에 걸려 있는 아이들의 여러 미술 작품을 얼핏 보며 굉장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모작한 그림을 보니 마냥 신기하고 기특하게 느껴졌다. 고흐의 그림에 영감을 얻어 만 4살인 아이가 혼자 자유롭게 그릴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아이들의 작품을 비교해 보니 같은 재료와 같은 기법을 사용했음에도 디테일한 면에서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며 결과물이 다 달랐다. 한국이었으면 사립 미술학원이나 다녀야 이런 그림을 흉내 낼 수 있거나, 그것도 아이의 개성이 묻은 그림보다는 선생님의 간섭으로 잘 그린 그림을 그려왔을 것이다. **밑에 사진은 둘째 아이가 만든 책 표지다. 이 또한 아이마다 결과물은 다 제각각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감독 아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스타일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미술 활동을 한다고 했다.
파티를 통해 아이의 학교를 자세히 둘러볼 수 있었고, 다른 학부모들을 알게 되었고, 학교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물질적으로 후원할 기회를 얻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서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게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국에서 만약 이런 파티를 따라 하게 된다면, 그건 아마 선생님들만의 또 다른 가중 노동이 됐을 것이다.
학부모위원회를 중심으로 학교를 위해 십시일반 자발적으로 마음과 힘을 모으는 프랑스 학부모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불어를 열심히 배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단 다짐을 했다. 학교를 위하는 모든 일이 결국 내 아이를 포함한 모든 아이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하는 일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