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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프랑스 초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프랑스 초등학교 1학년 3박 4일 수학여행



첫째 아이가 3박 4일 수학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수학여행 가기 전날 밤, 선생님이 나눠준 여행 준비물 리스트를 체크하며 아이와 함께 설렘과 심란함 속에 짐을 꾸렸더랬다. 고작 3박 4일의 여행이라지만, 이제 만 7살도 안 된 아이가 가족을 떠나 친구들과 동고동락하며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하는 첫 여행인지라 의미가 남달랐다. 

덜렁대는 내 성향을 알기에 몇 번이고 리스트를 확인하며 짐을 꼼꼼히 쌌다. 담임선생님도 나를 따로 불러 여행 준비물 리스트를 한 번 더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도 일은 터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주로 아빠와 함께 등교하고 나는 집에서 배웅한다. 여행 가는 날 아침에도 첫째 아이에게 점심과 간식이 든 작은 가방과 짐이 든 큰 가방을 메주며 포옹과 뽀뽀를 퍼붓고는 날이 날이니만큼 거창한 배웅을 하고서는 보냈다. 그러나 한 30분이 흘렀을까. 짝지에게 연락이 왔다. 모든 학생이 여행용 캐리어 가방을 끌고 왔는데 우리 아이만 유일하게 메는 가방을 들고 왔다는 것이다. 첫째 아이는 자기만 다른 가방을 갖고 왔다며 아빠와 벌써 한바탕 한 목소리였다. 큰 가방 하나와 작은 가방 하나가 필요하다 해서 큰 가방으로 학교 가방도 괜찮냐는 내 질문에 선생님이 괜찮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보냈건만. 준비물 리스트를 다시 확인해 보니 여행 가방이라고 똑똑히 쓰여 있었다. 모든 아이가 캐리어를 가볍게 끌고 다니는데 아이 혼자 낑낑대며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닐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행히 아직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라 출발 전이라는 짝지의 말에 그때부터 난 바퀴 달린 가방을 들고 세수도 못 한 채 학교를 향해 부리나케 뛰기 시작했다. 땀이 범벅이 된 채 거지꼴을 하고 학교에 도착하니 대형버스 옆에 학생들의 캐리어들이 한데 모아져 있었고, 교장 선생님과 짝지를 포함한 몇몇 학부모들이 우왕좌왕하며 버스 짐칸에 아이들의 여행 가방을 실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다른 학부모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대기 중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가방 임무를 완수하고 숨을 돌리니 아이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모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캐리어를 가져왔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엄마를 보니 첫째 아이는 활짝 웃었다. 여행을 앞두고 들떠 흥분한 학생들과 다르게 학부모들은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다. 버스가 늦게 오는 바람에 예상보다 한 시간 반이나 출발이 늦어졌지만, 대부분의 엄마 아빠는 아이들이 버스에 올라타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며 버스가 떠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제 막 유치원생 티를 갓 벗어난 아이들의 작은 뒷모습을 보며 어떤 엄마들은 펑펑 울었다. 아이가 90일이 되면 보육 시설에 보내고, 얄짤없는 엄격한 훈육으로 명성 높은 프랑스 엄마들인지라 이런 일에도 왠지 덤덤할 거 같았는데 역시 자식을 향한 엄마의 마음은 국경을 넘어서도 동일한가 보다. 이런 감상적인 순간을 공유하며 학부모들은 버스에 타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말없이 손을 흔들었다. 나는 뜨끈히 올라오는 눈물을 겨우 누르며 버스에 오르려는 아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한 번 더 뽀뽀하며 사랑한다고 재밌게 놀다 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때 아이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한 번 더 가슴에 담았다. 


이날이 4월 15일이었는데, 세월호사건을 기억하며 짝지와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5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도 아직 여러모로 사건의 명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희생자들의 부모도 이런 심정으로 아이들을 보냈을 텐데. 친구들과 진한 추억을 안고 한층 더 성장한 모습으로 만날 며칠 후를 당연히 염두에 두고 떠나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을 텐데. 끝까지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약속을 다시 상기하며 떠나는 버스를 향해서도 세월호사건 희생자의 유가족에게도 하늘의 은혜와 위로가 있기를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기를 기도했다. 

56명의 학생과 두 담임 선생님을 포함한 7명의 어른이 마침내 여행길에 올랐다. 2시간을 걸쳐 피크닉을 하기 위해 도착한 곳은 ‘La Fabuloserie’라는 박물관인데 천 점이 넘는 그림과 조각 작품들이 전시된 곳이다. 사진으로 확인하니 넓디넓은 풀밭과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집에서 싸 온 맛난 점심과 간식을 먹은 후 박물관 투어도 하고 햇살 아래 재밌게 뛰놀았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은 3일 동안 머물게 될  ‘La Ferrme du Chateau’ 성으로 향했다. 각자의 캐리어를 끌고 질서정연하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 침대를 사이좋게 정하고 짐을 풀었다. 성에서 제공되는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 아이들은 빠르게 잠이 들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사진과 일정을 선생님들은 인터넷에 (www.ondonnedesnouvelles.com) 매일 저녁 포스팅해 주었고,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날은 8시 전에 모두 기상을 해서 8시 30분에 성에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일기 예보대로 흐리고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다. 방수 아우터와 부츠를 꼭 챙겨오라고 했었는데 사진을 보니 모든 아이가 날씨에 맞게 옷을 든든히 잘 갖춰 입고 있었다. Guédelon이라는 중세 시대 기술과 재료(돌, 나무, 모래, 진흙 등)를 이용하여 지어진 성에서 아이들은 자연 재료를 사용하여 어떻게 벽돌이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그릇을 만드는지, 어떻게 염색하는지, 대장장이와 채석공의 일은 무엇인지 배우고 직접 만들어 보고 체험해 보는 아틀리에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준비한 맛있는 점심을 먹자마자 꼬마 파리지앵들은 비를 맞으며 질퍽한 진흙과 물웅덩이 속에서 자갈을 차며 중세 시대 아이들이 놀듯이 뛰놀았다고 한다. 

아침과 저녁 식사는 성에서 제공되지만, 점심 식사는 선생님들이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먹었다. 점심까지 성에서 제공받게 되면 여행 경비 자체가 너무 비싸져서 선생님들이 점심을 준비하기로 했다는 계획을 학부모회의 때 처음 듣고 학생들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느껴져 감동을 받았었다. 이런 선생님들이 주관하는 수학여행이었기에 아이를 전적으로 맡기고 여행을 보낼 수 있었고, 보내고 나서도 안심할 수 있었다. 


셋째 날은 다행히 맑았다. 아이들은 오전과 오후를 완전히 다르게 보냈는데, 오전에는 Saint Fargeau에 있는 농장에서 동물들과 시간을 보냈다. 빵을 굽고, 사과주스를 짜서 만들고, 염소의 젖을 짜는 기술을 배우고 체험해 봤으며, 아기 소에게 젖병으로 우유를 먹이는 경험을 했다. 첫째 아이도 이날이 제일 재밌었다고 했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돼지를 봤다며 자랑했다. 오후에는 도자기 만드는 체험을 하며 창의성을 한껏 발휘하는 시간을 보낸 후, 성안에 있는 공원에서 공놀이도 하고 게임도 하며 파란 하늘 아래 맘껏 뛰놀았다. 저녁을 먹은 후 아이들은 내일을 위해 자기 짐을 정리하고 챙기며 다시 여행 가방을 쌌다. 성에서의 마지막 저녁이니만큼 댄스파티가 치러졌다. 파티를 위해 아이들은 깨끗한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나타나 선생님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다 함께 신나는 음악에 맞춰 스윙 댄스를 추며 아쉬움을 달래고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나중에 아이에게 어땠는지 물어보니 자기가 춤을 제일 잘 췄다며 허세를 부렸다. 담임선생님은 밤마다 부모님을 대신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안아주며 굿나잇 키스를 해주었다고 아이는 말해주었다. 한국 선생님들은 절대 뽀뽀를 해준 적이 없는데 자기 전에 선생님에게 뽀뽀를 받으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며 아이는 멋쩍게 웃었다. 


파리로 돌아오게 될 마지막 날 역시 햇빛이 쨍쨍 뜬 맑은 날이었다. 아이들은 Saint Fargeau 성에 있는 운하 다리를 건넜고 풀밭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은 저녁 6시가 넘어서야 학교에 도착했다. 두 담임선생님은 하교할 때처럼 부모들의 눈을 일일이 맞추며 인사하고는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부모의 손에 보냈다. 아이들은 제대로 씻지 못해서인지 얼굴들이 하나같이 죄다 꾀죄죄해 보였지만 표정만큼은 밝았다. 반가움과 기특한 마음에 첫째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피곤해 보이던 첫째 아이는 집에 와서 따뜻한 물로 오랜만에 목욕하니 발그스레한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3일 동안 세수와 양치질만 겨우 하고 한 번도 샤워를 못 했다고 했다. 저녁을 먹으며 식사 시간 내내 여행의 좋았던 점과 웃겼던 사건 그리고 힘들고 싫었던 점을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는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곯아떨어졌다. 


첫째 아이가 여행 중에 보고 느낀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지만, 이 여행은 여태까지의 아이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다. 그 도전을 잘 이겨내고 우리 품으로 돌아온 아이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한국에 있었으면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야 할 일을 이제 1학년이 된 아이가 해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비록 잠옷에는 똥도 살짝 묻어있었고, 제대로 씻지 않아 피부가 허옇게 일어나고 시큼한 냄새도 났지만 그게 뭔 대수랴. 아이는 분명 3박 4일 동안 먼 길을 떠나 부모의 손길 하나 없이 모든 걸 스스로 감당했고 무탈히 귀환했다. 

부모인 우리에게도 아이를 홀로 멀리 떠나보내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모든 처음이 그렇듯 긴장되고 낯선 시간이었다. 아이가 잘 지내다 올 거라 무작정 믿으며 걱정되는 마음을 꾹 참고 기다리니 시간은 그렇게 또 흘러갔다. 

육아를 통해 끊임없이 ‘처음’을 경험하는 우리도 아이들과 함께 여전히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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