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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Apr 25. 2024

갑자기 비건?

온갖 종류의 고기를 즐겨 먹던 내가 '엄격한 채식'으로 돌변한 이유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비건이 됐다. 대형마트 온라인 앱을 통해 쇼핑카트에 늘 담았던 냉동삼겹살, 국거리용 한우사태살, 스테이크용 소고기, 양념불고기, 횟감용 연어와 고기만두, 치킨 텐더, 버터, 치즈, 우유를 더 이상 구매하지 않았다. 대신 집 근처 로컬마트나 생활협동조합 매장에 가서 삼채, 콩나물, 느타리버섯, 양송이버섯, 상추, 로메인, 시금치, 감자, 고구마, 당근, 토마토 등 여러 종류의 채소를 사와 냉장고를 채웠다. 돌아보면 매 끼니마다 고기반찬을 당연하게 여겼던 내가 비건 정체성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나의 노력과 결단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걸 온 우주가 비건의 길로 나를 살포시 등 떠밀어줬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는 30년 넘게 비건으로 살고 계신다. 아버지는 평생 건강 관련 사업에 종사하셨다. 다이어트식품, 운동기구, 황토찜질방, 건강한 물, 플랜테리어, 한옥 인테리어, 수경재배인삼 등과 같은 건강 사업을 이어가며 특허만 수백 개를 내셨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시선은 가족보다는 자신의 건강한 몸과 정신에만 쏠려있었다. 자신을 상대로 다양한 식이요법과 새로운 생활 방식을 스스럼없이 실험하시곤 했다. 한 번은 아버지가 직접 제작한 편백나무 1인용 명상실(나무 공중전화부스처럼 생겼다)에 들어가 하루에도 7~8시간씩 공복상태로 앉아 계시다 갑상선 항진증을 얻기까지 했다. 남들보다 몇 년 앞선 설익은 아이디어들은 결실을 맺기 전에 파산하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랑곳없이 연구와 도전에 매진하느라 항상 바쁘셨다. 그래서 난 되새김할 아버지와의 추억이 별로 없다. 그런 아버지가 나의 20대 때 부터 고기를 먹는 인간들을 하등하게 보며 어머니와 나에게 채식을 강요했다. 나는 반발심에 채식을 더 기피하게 됐다.


20년이 지났다. 20년 동안 아버지는 끊임없이 채식을 권했지만 귓등으로 흘렸다. 그사이 결혼을 하고 내 가정이 생기니 아버지와 함께 식사할 기회가 줄었다. 아버지의 채식 잔소리도 어쩌다 한 번이었기에 참아줄 만했다. 자연스레 채식은 남의 별 이야기인 듯 살았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면서 유기농 식자재를 구매하고, NON-GMO인증마크를 확인했다. 지구를 위해 일회용품은 웬만해서 사용 안 하고, 아나바다를 실천하고, 플로깅에 동참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매일 먹는 고기가 심각한 환경오염과 자연파괴의 주범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최근에서야 아버지가 추천하는 비건 관련 강의와 다큐멘터리를 보고 각성할 수 있었다. 내가 먹는 고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구온난화에 악영향을 끼치는지, 동물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동물성 단백질 섭취가 내 몸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논리적으로 납득되고 체계적으로 정리되니 기존에 먹던 고기가 썩은 사체로 보였고 구역질이 나왔다. 기업과 단체와 정부가 손잡고 대중을 혼란에 빠트리고 육식으로 인한 질병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부분에서는 분노가 치밀었다.


평소 아버지의 말을 경청하지 않던 내가 어떻게 아버지의 권유로 그런 영상을 찾아보게 됐을까?

나는 자기혐오와 무력감으로 나 자신을 평생 괴롭히며 살았다. 이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명상을 팠다. 많은 걸 포기하고 프랑스로 도망까지 가며 '참나'를 찾고 싶었다. 의식이 확장되는 많은 경험은 했지만 여전히 나 자신과 내 삶이 불편했다. 서울로 돌아와 다시 익숙한 일상을 일궜으나 또 한 번 모든 걸 포기하고 제주도로 도망갔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정을 알아주며 조금씩 마음을 알아차리는 훈련이 됐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됐다. 나를 사랑하니 부모님께 감사가 절로 나왔다. 그동안 무의식에 품고 있던 분노와 원망이 감사와 존경으로 변했다. 마음공부를 하며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즈음 냉장고가 돌연 고장 났다. 구매한 지 3년밖에 안 된 냉장고에서 냉기가 일절 나오지 않았다. 칸마다 빽빽하게 채워져 있던 육류와 해산물, 유제품을 어쩔 수 없이 싹 다 버리게 됐다. 몇십 만 원어치의 식자재를 버리고 냉장고를 안팎으로 청소했다. 아까워서라도 쟁여두려고 했던 사실상 독성 가득한 식자재를 버리고 나니 상쾌하고 가뿐한 기분이 들었다. 텅 빈 냉장고를 보며 신기하게도 감사와 기쁨이 넘쳤다. 냉장고를 비우고 나니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비어지는 듯했다. 이렇게 나는 비건을 우주의 사인으로 받아들이고는 완전한 비건이 됐다.


나의 비건 식단: 현미밥, 두부부침, 들깨느타리버섯볶음, 볶음김치, 우엉조림
나의 비건 식단: 그린 샐러드와 양송이 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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