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마지막 날 카무이 미사키에서 오타루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쓴 글
2014.09.14
홋카이도까지 와서 줄줄 울면서 괜찮아 사랑이야 14-16회를 몰아서 봤다. 힐링이 컨셉이었던 이번 여행 내내 눈에 담은 풍경들만큼이나 노희경이 들려준 위로의 메시지는 오래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그겨울로 낯설어졌던 노희경이 다시 돌아왔구나. 웰컴.
어떤 작가를 오랜 시간 계속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힘든 일이다. 내가 변하거나, 그가 변하거나, 혹은 그냥 이유없이 더 이상 좋지 않거나. 한때는 열광했던 작가의 작품이 이제는 그냥 그렇거나 너무 아니어서 실망을 하면 또 다른 내 취향의 작가를 찾으면 그만이지만, 좋아하는 작가가 새로 낸 작품이 여전히 좋을 때면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내가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가 그때도, 또 지금도, 거기 그 자리에 여전히 있구나 하는 안도감.
이번 여행 내내 길을 걷다가 혹은 TV 광고 속에서 10년 전 도쿄 유학 시절에 잘 나갔던 일본 연예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곤 했다. 웃음의 첫번째 이유는 반가움이고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것마냥) 얘는 아직도 잘 나가나 보네, 오래 간다, 하며 웃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내가 기억하는 모습보다 많이 늙어 있어 묘한 기분도 든다. (그래서 한눈에 바로 알아보는 경우보다 낯익은 얼굴인데 하고 조금 더 쳐다보고서야 누군지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무려 10년이니 그들이 늙은 건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지난 10년간 많이 늙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들의 모습이 10년 전 모습이다 보니 그동안 그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같은 건 전혀 모르면서 나도 모르게 탄식하며 아, 많이 늙었네, 같은 소리나 중얼거리고 있다. (연예인한테 늙었다 하지 말고 거울이나 봐.) 시간이 흐른다는 건 그런 건데, 아마도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많이 서툴고 촌스럽던, 하지만 그만큼 순수했던 스물 넷의 나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홋카이도를 여행하면서 외로움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과 돌아가면 취업 전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버스 안에서 혼자 울기도 했고, 처음으로 제대로 혼자 떠난 여행이었기에 여행하는 내내 이야기할 누군가가 필요해 친구에게 열 네장에 달하는 손편지를 쓰기도 했었는데, 어느 새 세월이 10년이나 지나 나는 사회생활 8년차가 되었다. 이제는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당장 돌아가면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이나 하고, 그땐 몰랐던 것들을 지금 아는 대신 모든 것이 처음이라 너무나 설레고 벅찼던 그때의 감정들은 이제 내겐 없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여행 내내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들뜨고, 혹 날씨가 좋지 않다고 해도 그럼 쇼핑이나 하지 뭐 하는 여유가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3주 내내 비 한번 오지 않고 맑았던, 모든 게 행운의 연속이었던 첫번째 홋카이도 여행과 한번 가봤던 곳이라는 안일함에 많은 걸 빠트리고 출발한 데다 비까지 와서 한없이 축축 쳐졌던 두 번째 여행과는 또 다른, 세 번째 여행이다.
2005년, 2008년, 그리고 2014년.
6년만에 찾은 홋카이도는 변한 게 별로 없다. 관광객이 많아진 것과 예전에는 무작정 걸어서 돌아다녀야 했던 비에이 언덕들에 투어 버스가 생겼다는 것 외에는 거의 그대로다.
그래서 더, '그때'가 생각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홋카이도는 그대론데 나만 변한 것 같아서. 그렇다고 그게 싫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그때로 돌아갈래?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럴 자신은 없다. 그 힘든 시간들을 어떻게 지나왔는데 그걸 또 하라니 절대 싫다던 꽃누나들의 말처럼, 그 시간들은 젊었으니까 청춘이었으니까 뭘 몰랐으니까,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견뎌낼 수 있었던 거다. 그걸 다 겪었고 어떤 건지 알아버린 지금에 와서 그때로 돌아가라면 그건 거절.
대신 내일이라도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청춘은 다시 시작되는 거라던 희열님의 말처럼, 나는 세 번째 홋카이도 여행을 떠나왔고 스물 넷과는 조금 다른, 서른 셋의 나의 청춘을 만나고 있다. 그거면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