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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Jul 01. 2021

복잡함에 관한 단상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문제도 어떻게든 잘 풀 수 있다고 믿는다

1. 나는 화성으로 가는 로켓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도 아니라면 세상에 복잡한 것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도 없다고 믿는다. 복잡해 보이는 문제와 처음 마주하면 당황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대부분 이해할 수 있고, 더 쉽고 명쾌하게 정리해 나가다 보면 결국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2. 방을 대청소한다고 생각해보자. 방이 이미 어지러운 상태라면 오히려 좋다. 우선  안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부터 파악하고,  물건이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는지 분류하자. 노트는 어디에 속하는지, DSLR 어디에 속하는지 하나씩 나눠보면서 비슷한 물건끼리 묶어주다 보면 청소를 위한 1단계 작업이 끝난다.  


다음으로 각 물건을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 계절성은 없는지 파악하자. 노트는 매일 쓰니까 자주 사용하는 물건으로, 패딩 코트는 겨울에만 입으니까 겨울에만 쓰는 물건으로, 재작년 다이어리는 다 썼지만 남겨두고 생각날 때 꺼내보고 싶으니까 보관하는 물건 정도로 분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물건의 위치도 윤곽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카테고리와 사용 빈도에 따라 물건을 적절한 곳에 배치한다. 사용 빈도가 높을수록 가깝고 잘 보이는 곳에,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는 물건끼리는 같은 곳에 두는 식으로 물건을 배치한다. 필요 없는 물건은 미련 없이 당근 마켓으로도 보낸다. 어느새 어지럽고 복잡하던 방 안에 질서가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정리했는지만 기억하고 있다면 더 이상 서랍 곳곳을 헤매지 않아도 필요할 때 필요한 물건을 빠르게 찾아서 사용할 수 있다. 그 기준이 직관적이고 명쾌하다면 누구라도 방 안에서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다.



3. 문제가 복잡해 보이는 이유는 다차원의 레이어 위에 데이터가 무분별하게 널려있다 보니 생기는 착시에 불과하다. 어지러운 방을 제품으로, 그 안에 있는 물건을 데이터로 치환하면 복잡해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 어지러운 방을 정리하는 일은 다르지 않다.


산재한 정보를 한 곳에 모으고, 용어를 정리하고, 이해 가능한 단위로 데이터를 쪼개고, 유사한 것끼리 묶고, 그 위에 이름을 붙이고, 그 안에 인과 혹은 상관관계, 혹은 시계열 같은 질서를 찾은 후 사용자의 멘털 모델에 따라 알맞은 자리를 찾아서 정보를 순서대로 배치해주면 된다.



4.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나는 플렉스에서 페이롤(급여) 프로덕트를 디자인하고 있다. 처음 페이롤 도메인을 마주했을 때 원천세다, 세법이다, 연말 정산이다, 두루누리 지원금이다, 자격 취득 신고다, 보수월액 변경 신고다 뭐다 해서 외계어 투성이에 복잡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저녁이면 책도 보고, 기사도 읽고, 강의도 들으면서 머리를 싸매곤 했다.


4개월이 지난 지금은 페이롤을 복잡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구성원에게 어떤 항목을 어떤 이유로 얼마나 지급하는지, 어떤 항목은 어떤 이유로, 얼마나 공제하는지 알면 충분하고, 제품을 디자인하면서 부족한 지식이나 특별한 케이스는 공부하면서 채워나가면 되는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결국 사람이 만든 법과 규정 위에서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문제도 어떻게든 잘 풀 수 있다고 믿는다.



5.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사용자가 A에서 B로 가는 길이 순탄할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줄이고,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제품을 디자인하다 보면 복잡해 보이는 문제와 종종 마주하게 된다. 도메인 지식이 어려울 수도 있고, 업계에 복잡한 프로세스가 관성처럼 뿌리내리고 있을 수도 있다. 법이나 공기관과 엮여있다면 십중팔구다. 이 분위기에 따라서 나도 제품을 복잡하게 만들지, 아니면 그 복잡함을 풀고, 정보를 재배치해서 사용성 높은 경험을 제공할지는 디자이너의 역량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떻게든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와 끈기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런던 사진. 어떻게든 잘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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