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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Feb 03. 2022

flex로 시작해서
flex로 끝난 2021년의 다섯

올해도 진하게 보냈다

1. 커리어 첫 번째 스타트업이자 디지털 온리 프로덕트, flex

flex는 내 커리어의 첫 번째 스타트업이자, 디지털 only SaaS 프로덕트를 만든다. 그러다 보니 제자리를 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밖에는 3개월 정도 걸렸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덕분에 11개월의 전반기와 후반기의 감상이 꽤나 다르다. 전반기에는 그동안 다녔던 회사와 다를 것이 크게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알 수 없는 거리감에 허덕댔다면, 후반기에는 이 동네의 스탠더드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이 문화에 점점 취해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스타트업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다녀야 하는지 배웠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들과 달리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회사의 일부를 갖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프로덕트에 대한 오너십이 생겼다. 내가 프로덕트를 잘 만들어야 디자이너로서 더 인정받고, 이 프로덕트가 시장에서 잘 되어야 회사뿐 아니라 내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지금 만드는 기능이, 디자인이, 프로덕트가 이렇게 사용자에게 나가도 괜찮은지 내 이름과 커리어를 걸고 정말 괜찮은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회사와 프로덕트를 위해서 쓰는 시간이 디자인적으로, 경험적으로, 브랜드적으로, 비즈니스적으로 더 큰 임팩트를 내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능력이 시장에서 셀링 되는지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의 자연스러운 인터랙션 디자인(마이크로 인터랙션 아님)에 대한 집착과 사랑은 태생에 기인한 것인지, 첫 번째 회사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꽤나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또 기획, 설계, 리서치,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포지션에서 꽤 귀한 스킬 셋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2. 팀워크는 기본이다

Payroll 2.0을 만들면서 스쿼드의 PM, 백엔드, 프론트엔드 개발자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메인 지식, 사용자, 비즈니스, 설계, 데이터 구조, 디자인, 경험, 2.0 이후의 방향성 등 프로덕트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었다. 합의점을 쉽게 도출한 때도 물론 있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하기 위해 화이트보드, 누군가의 모니터, 회의실, 슬랙, 프레이머 등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고의 해결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아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냈다. 


“지금 상황에서 팀워크라도 좋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스프린트 회고에서 남긴 백엔드 개발자의 코멘트처럼 시너지가 나지 않으면 완성할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장애물이 되지 않으면서 더 빠르게 만들기 위해 평일, 주말 구분 없이 밤낮으로 달렸다. 스파크를 튀기며 일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열띠게 일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 할 수 있어서 기뻤다.


이 과정에서 팀 내의 투명성이 좋은 프로덕트를 만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구성원 개개인의 능력, 상태, 의지, 감정, 개인적 상황이 투명하게 공유되었다는 전제 하에 우리가 어느 정도로 어려운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 어떤 일정과 속도로 달릴 수 있는지, 어떤 에너지로 움직일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도 최대한 빠른 시점부터 좋으면 왜 좋은지, 별로면 왜 별로인지 솔직하고 투명하게 피드백을 주고받으면 더 좋은 솔루션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 



3. 복잡한 문제를 푸는 방법

10가지 문제를 10가지 방법으로 해결하려면 프로덕트는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좋은 프로덕트는 10가지 문제를 한 두 가지 솔루션으로 해결한다. 그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정리를 잘하면 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풀고자 하는 문제와 그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사이의 유사성을 찾아서 묶어주는 방식으로 구조화하면 된다. 이는 구조적으로도 훌륭하지만, 비즈니스나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도 좋은 방법이다. 비즈니스적으로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다.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도 일관성을 챙기면서 학습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물론 기존 사용자의 멘탈 모델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가이드, 샘플 등과 함께 제공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또, 프로덕트는 아는 만큼, 고민한 만큼 나온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너무 세부적이고 구체적이게 구조로 잡아나가기보다 각각의 기능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객체 단위로 구성하고, 그 객체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설계해나가는 게 조금 더 유연한 구조를 만드는 데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기초 설계가 단순하고 탄탄하다면, 사용자 경험도 그에 따라 매끄럽게 만들 수 있다. 서비스 단의 친절한 안내와 소소한 기능들은 사용자 피드백을 받으면서 천천히 붙여나가도 충분하다.


디자이너는 디자인만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일은 문제 해결이다.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사용자 혹은 비즈니스의 문제를 진짜로 해결했는지가 중요하다. 또 디자인이 끝났다고 문제를 해결했다고 착각하기도 쉽다. 디자인은 시작일 뿐이다. 디자인이 개발로 넘어가고, 실제 프로덕트에 반영되어 사용자가 쓰기 전까지는 한 순간도 방심하면 안 된다.



4.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일하고 싶은가? 

나는 보기보다 격정적으로 일하는 편이다. 글을 쓸 때와 일을 할 때의 퍼소나가 많이 다르다. 현대자동차 다닐 때와 비교하면 현저하게 줄었지만, 여전히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싸우기도 한다. 일에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기는 감정이라 어느 정도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내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나와 같이 일하고 싶어 할까? 


또 나는 마음이 여유로워야 셀프 매니징이 잘 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마음이 조급하면 일과 삶의 우선순위도 놓치고, 어느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절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퇴근 후에도 일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고, 꿈속으로 일을 가져가는 날도 비일비재했다.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하다 보니 전반적인 생산성이 떨어졌다. 


문제 해결에 집요하게 달라붙으려면 그에 걸맞은 체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flex에 다니면서 그래도 수영은 꾸준히 다녔다. 회사와 수영장의 거리가 아주 가까웠고, 저녁 시간에 운동 다녀온 후 이어서 일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보니 운동을 다녀오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안 갈 수 있는 수많은 이유와 핑계가 있었지만, 몇 번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다녀온 나 자신에게 작은 칭찬을 해주고 싶다.



5. 정면돌파 

2022년에는 처음으로 맡은 디자인 챕터 리드도 잘하고 싶고, 프로덕트 디자인도 더 잘하고 싶고, flex도 더 좋은 프로덕트로 만들고 싶고, 비주얼도 겁쟁이라는 말까지 들은 상태에서 더 이상 물러나고 싶지 않고, 3D도 제대로 해내고 싶다.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끈질기게 해내자. 정면돌파만이 살길이다. 


설 연휴 안녕, 2022년 본격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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