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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직장인 Mar 01. 2024

유난히 추웠던 2월

힘들었던 2월을 떠나보내며 남기는 글

 벌써 2월도 다 끝났다. 나에게 2024년 2월은 유난히 심리적, 신체적으로 더 힘든 날이었다. 그래서 이 힘들었던 2월을 기억하기 위해, 머릿속에 있는 안 좋은 생각들을 쏟아내서 잊어버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기억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한다는 말이 논리적으로 안 맞지만 글을 통해 기록으로도 남길 수 있고 안 좋은 감정들과 생각들을 글로 남기면서 마음과 머리를 좀 쉬게 하고 싶다는 정도로 생각하면 어떨까?

 2월 초부터 아내와 다툼이 있었다. 이유는 강아지를 키우는 문제였다. 너무 사생활적인 부분이라 다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나는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보호자에게 심리적인 안정감,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내와 함께 키우던 강아지가 아파서 병원을 갔을 때 접수대 위쪽 스크린에 강아지를 키우는 조건(?), 강아지 분양을 받을 때 꼭 확인해야 될 사항들이 있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보호자의 경제적인 상황이었다. 강아지가 귀엽고 이쁘지만 강아지를 키우면서 발생되는 비용들을 우리가 해결할 수 없다면 나는 강아지를 안 키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반대였다. 경제적인 것은 후순위였다. 

 아내가 강아지를 키우자고 보채자 나는 우리 부부의 수입과 지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현실적으로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아내는 거기에서 기분이 상했다. 물론 아내의 상황과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돈 없는데 강아지는 무슨 강아지야!"라고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다. 기분 나쁘지 않게 우리의 현재 상황을 잘 고려하자라는 의미로 이야기하였지만 아내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으로 시작된 우리의 감정싸움은 끝도 없이 계속됐고 지금까지도 서로 냉전 중이다. 여기서 이미 마음의 상처가 시작됐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먼저 사과하는 것도 납득이 안 됐고 현실을 보지 않고 지금의 기분과 상태, 이상만 보는 아내는 행동과 말들이 점점 이해가 되지 않았다.

 1월부터 혀의 오른쪽 부위가 아프기 시작했고 어떤 날에는 그 통증이 심해져 목까지 아픈 적이 있었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지만 외관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여 진통제 정도만 처방을 받았다. 큰 병원을 가보라는 의사의 말에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진료를 알아봤다. 나의 증상을 상담받아 보니 이비인후과도 있지만 구강내과를 가보라는 말에 구강내과를 접수하고 첫 진료를 받으러 갔다. 담당 의사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설인두 신경통이라는 소견을 내렸다. 

 처음 들어 본 병명이었지만 의사의 마지막 한 마디에 머리가 멍해졌다. "뇌종양이 의심될 수도 있어요. 일단 약을 먹어 보고 MRI도 찍어 봅시다." 처음으로 들어 본 말, 나는 이런 말을 들어볼 일이 지금 당장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말을 지금 의사가 내 앞에서 하니 순간 모든 사고가 멈춰버렸다. 물론 조기에 발견되면 다 완치된다고 의사가 얘기했지만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본 뇌종양이라는 단어가 나의 모든 의지와 기운을 다 꺾어버린 것 같았다. 진료가 끝난 후 진료비 수납을 하고 약 처방을 받으러 가는 길은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아마 그 당시의 나의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저 남자 곧 죽을 것처럼 보여"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병원에 갔다 오고 나서 부모님이나 아내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우리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내가 뇌종양이 의심된대라고 하면 분명 매일같이 걱정하고 잠도 못 주무시고 나보다 더 신경을 많이 쓸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내에게는 큰 병원 간다고 이야기했지만 '괜찮냐? 걱정되지 않냐?'와 같은 공감과 걱정보다는 '보험은?'이라는 문자만 왔다. 그러니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가장 믿고 의지할 가족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친한 친구 한 명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괜찮다. 별일 없을 거다"등의 위로와 걱정을 해줬고 수시로 한 번씩 나의 건강과 심리 상태를 확인했다.

 나의 힘듦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월 중순 경 설 연휴 즈음에 갑자기 집에 큰일이 생겨서 억 단위의 돈이 필요하게 됐다. 결혼 후 모아 둔 돈도 없고 1금융권 대출도 당길 만큼 당겨 썼는데 갑자기 그 큰돈을 어디서 마련해야 되는지 걱정부터 앞섰다. 1주일 안에 어떻게 그 돈을 마련하지? 미리 상황을 알았다면 대비라도 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1주일 안에 억 단위의 돈을 준비해야 된다니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고통은 한 번에 찾아온다는 말이 이런 말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패닉상태였다. 그렇다고 하는 일을 안 할 수도 없었다. 마침 이 시기는 회사 일도 가장 바쁜 시기였다. 매일 야근과 매주말마다 출근이었다. 몸도 지쳐있고 마음도 지쳐있는 와중에 돈도 마련해야 되고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모아 둔 적금과 부모님들께 지원받은 돈, 2금융권 대출 등으로 간신히 기한 내에 돈을 마련하기는 했다. 하지만 뭔가 빚더미에 앉은 기분이었고 올해 하려고 했던, 미래를 위해 준비하려고 했던 것들이 송두리째 사라진 기분이었다. 어디까지 더 내려가야 다시 올라올 수 있을까?

 나에게 2월은 1년 중에 가장 경사가 많고 즐겁게 바쁜 시기였다. 그런데 유난히 올해 2월은 힘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2월이 됐다. 물론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나의 이야기는 정말 같잖게 보일 수 있지만 누가 그랬던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람은 나 자신이라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디든 혼자 도망가고 싶다. 기분 전환을 위해 모임도 몇 번 나가봤지만 오히려 더 말도 못 하고 소심해지고 주눅 들어 있는 나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였다. 계속 누군가와 비교하게 되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건넨 선의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을 보니 예전의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공황장애인가? 대인기피증인가?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의 머리와 마음과 몸을 지배하는 것 같다.

 3월 1일,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억지로 긍정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다. 자기계발서를 읽어도 유퀴즈처럼 유명인들이 나와서 하는 멋진 조언들을 듣고 봐도 뭔가 마음에 빛이 보이지 않고 새롭게 일어설 힘이 생기지 않는다. 어쩌면 이 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시간에 맡기는 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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