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았다
오늘은 어쩐지 가슴뼈가 뻐근하다.
멋진 음식과 멋진 영화를 즐기고 온 하루 끝이 무겁고 축축하다. 두 달여간 기다렸던 정부지원금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미지급 결과가 나왔다. 9월부터 신청하여 두 달이 넘는 긴긴 기다림 끝에 덩그런 문자 한 통을 차가운 길거리에서 받았다. 가슴이 철렁했을 만큼 실망스러웠고, 도대체 왜?라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정말 그것 때문에 우울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오늘 본 영화에서 "딸이 혼전 임신을 했다는 걸 안 순간, 멍이 들도록 내 가슴을 쳤다"라는 일기를 보여주는 늙은 엄마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껴서일지도. 이 다큐의 감독은 엄마가 그 한 줄을 읽는 순간 눈물을 흘리며 무너져 내렸다. 나 또한 언젠가 엄마가 가슴을 칠 만한 비밀을 안고 있기에 시한폭탄 같은 그 날이 두렵고 미안해서 괜시리 마음이 무거워진 걸까? 영화 속 엄마만큼 속상해할 우리 엄마가 생각나 일톤 트럭의 추를 단 것처럼 마음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던 걸까? 이도 저도 모르겠다. 그저 이렇게 이불 위에 누워 끈적이는 검은 액체처럼 몸과 마음을 늘어뜨릴 뿐이다. 팔과 다리의 살이 조금씩 녹아서 이불에 녹아드는 기분이 들어 한참 동안이나 일어날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 갑작스레 숨을 쉴 때마다 가슴뼈가 아릿해오는 것을 문득 알게 됐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뻐근했던 느낌을 이제야 의식한 것이다. 아주 어렸을 적, 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다 크게 넘어져 핸들에 가슴뼈가 부딪혔을 때 이런 경험이 있었다. 마치 부러진 뼈로 숨을 쉬는 것 마냥 아릿하고 뻐근한 통증. 오늘 어딘가에 부딪힌 적도, 감기 기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웬 가슴뼈 통증이람. 네이버 지식인에 쳐도 나와 비슷하다는 사람조차 찾을 수가 없다.
이상한 날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흉부의 통증으로 불편한 날.
가슴을 이루는 뼈도, 그 안의 마음도 통증을 겪는 밤이다. 어쩌면 외계인이 영화를 보는 사이 나에게 후추를 뿌리고 간 건 아닐까, 황당한 장면을 상상해본다. 길고 얇은 투명 팔로 마법의 후추를 한 줌 가득 집어서 나를 향해 조준. 마침내 던지면 오색깔의 후추들이 머리 위로, 가슴 위로, 등 뒤로 종이꽃처럼 흩날린다. 마법의 순간처럼 정신이 몽롱해지고 가슴뼈에 압박을 느끼는 유팬, 집에 오자마자 이불 위로 쓰러지듯 누워 웅크린다. 괜찮아져라, 괜찮아져라.
이런 날도 있지. 외계인이 한바탕 후추를 뿌리고 간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