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잔잔 Nov 25. 2020

장보는 걸 너무 좋아하는 나

어떻게 필요한 것만 사나요?


1.

내 주변에 두어 명을 제외하고는 잘 모르는 내 고질병 중 하나는 마트 쇼핑이다. 가까운 이들은 나를 그저 장보는 걸 좋아하고 요리가 취미인 사람 정도로 생각하지만 실상 나와 함께 마트를 두 번 이상 갔던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진실. 나는 장을 볼 때마다 주체가 안 된다. 거의 한두 시간 동안 천천히 모든 제품을 둘러보면서 손이 넘치게 장을 본다. 오늘도 여지없이 몇 가지 채소만 사겠다고 들린 홈플러스에서 대략 아홉 가지 품목을 샀다. 그것도 계산대 앞에서까지 고민하다가 덜어낸 품목을 빼고 이 정도다. 그나마 채식을 해보겠다고 육류와 생선코너를 (십 분정도 앞에 서서 둘러보긴 했지만) 냉정히 지나쳐서 짐이 좀 줄었지만 자취생 주제에 김장김치용 해남배추라니? 그것도 반찬집에서 새김치를 사서 오는 길인데 '이거 금세 다 떨어지면 아쉬워서 어떡하냐'며 그 무거운 배추 덩어리를 산 것이다.


2.

두 시간 동안 둘러본 마트에서 그나마 아홉 가지 만을 구매한 것은 첫 째, 돈을 아끼고 싶어서고 둘째, 건강한 음식을 위해 골라내다 보니 남는 게 별로 없어서다. 돈 문제에 있어서는 저 많은 식재료들을 이 만원 안으로 구매한 것이 오히려 굉장히 합리적인 걸지도 모른다. 한 번 장을 봐서 3-4주를 집밥만 먹는다면야 절약에 가까운 소비겠지만 나는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저렇게 한꺼번에 많은 장을 보면 그만큼 버리는 것도 많다는 것을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토를 보면 당장에 맛있는 홈메이드 토마토 스파게티가 생각나고, 배추를 보면 당장 내일 김치를 담가먹을 것 같은 충동을 쉽사리 떨쳐내기가 어렵다. 정말 장보기 앞에서 통제불가인 나는 돈이 많다면 전용 마트와 대형 냉장고를 사고 싶을 정도다. 두 번째 이유는 전부 트랜스지방이라는 쇼트닝(팜유)이 들어가 있거나 유전자 변형식품, 보존료가 들어간 제품은 멀리하려고 하다 보니 욕심만큼 사지 못했다. 또띠아를 좋아하지만 모든 제품에 보존료와 팜유가 들어가 있으니 차라리 집에서 반죽해 구워 먹자며 스스로를 달랬다. 결국 최종적으로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건강한 식재료로 선정된 것들만 장본 게 이 정도.


3.

사실 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는 홈플러스에서 본 장이 아니다. 그 정도면 평소의 내게는 잘했다며 칭찬해줄 정도의 양과 금액이랄까. 문제는 마트를 나와 집으로 가면서 그 앞에 있는 채소가게에 들러 과욕을 부린 것이다. 커다란 노트북용 백팩에 장본 것들을 가득 넣고도 한 손에 커다란 해남 배추를 들고 있던 나는 이미 충분한 짐이 많았다. 기껏 해서 가벼운 비닐봉지 정도를 하나 더 들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싱싱한 과일들을 보고 눈이 돌았던 것 같다. 초특급 대형 바나나 한 손에(대략 바나나 15개 달려있음), 새빨간 중짜리 토마토 6개, 귤 한 박스를 구매했다. 정말이지, 배달도 안 되는 가게에서 그 많은 걸 구매한 뒤 15분 정도 걸리는 집까지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해남 배추와 함께. 맙소사.


4.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열 걸음에 한 번씩 쉬면서 숨을 몰아 쉬었다. 거의 겨울에 가까운 날씨에도 몸에서는 땀이 삐질 삐질 나고 아점으로 고구마 몇 개를 먹은 속에서는 더 이상 쓸 탄수화물이 없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열 번 정도를 멈췄다가 다시 힘냈다가 반복하며 걸어가는 길, 심지어 어떤 나이 지긋한 할머니께서 물건을 들어주겠다고 말을 건네셨다. 괜찮다고 해맑게 웃으며 손사레를 쳤지만 속으로 오늘 내가 제대로 오바했구나, 싶어 부끄러웠다. 중간쯤 왔을 때 정말 못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도대체 왜 택시를 생각 못했는지 나 스스로가 '징하다' 생각했지만 끝끝내 그 많은 짐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5.

그리하여 우리 집에는 오이 고추, 시금치 한 단, 칠리소스 한 병, 멸치볶음, 디카페인 커피, 어묵, 두부, 해남배추, 귤 한 박스, 새김치, 가지, 토마토, 바나나 한 손이 도착했다. 장보는 걸 너무 좋아하지만 정말이지 앞으로는 들 수 있을 만큼만 사거나 택시를 꼭 타야겠다고 다짐했다. 몸이 너무 고생해서 저녁에 친구와 만나는 약속을 취소하고 바로 잠들어버렸을 정도다.


 6.

음식과 요리를 좋아하는 내게 장보기가 즐거운 취미인 것은 오바하지 않는 한 크게 해로울 게 없다. 장을 본다는 것은 적어도 배달 음식을 끊고 건강한 집밥을 만들어보려는 시도이니까. 그러나 오늘 또 한 번의 오바를 통해 느낀 것은 무엇이든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처럼 13가지 재료를 자취방에 한 번에 데려오게 되는 일이 계속 반복될 테니까 말이다.


7.

장보는 걸 너무 좋아하는 나의 오늘의 반성 일기. 끝.


 



매거진의 이전글 너를 아끼는 만큼 샛노란 단호박 수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