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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잔잔 Jun 02. 2022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는 병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꼽으라면 단연코 요리일 것이다.

지금도 8평 남짓의 작은 원룸 방에 팥 삶는 냄새가 가득하다. 느지막이 일어나 밤사이 불려 놓은 팥을 깨끗한 물에 헹궈 냄비에 이십 분 정도 삶은 다음, 물만 따라 버리고 다시 깨끗한 물로 두어 시간째 삶고 있다.


다시 말해 아침부터 팥 삶는 일은 한가한 백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집 근처에 직접 팥 앙금을 만들어 팥빙수부터 팥 토스트까지 파는 카페가 있는데 그곳을 다녀온 뒤 달달한 팥의 맛에 빠져 버렸다. 특히 토스트 한 빵에 끈적하고 차가운 팥소를 올려 먹으니 건강한 한 끼 식사나 간식으로 적격이었다. 그래서 약 일주일 전,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얼마 안 남아 있다는 할머니 집 팥을 택배로 보내 달라한 것이다. 레시피는 팥 카페에 꽂혀 있는 요리책을 참고했다. 그곳에 나와 있는 팥 삶는 방법은 언뜻 보기에도 참 복잡하고 정성스러운 과정인지라 언제 써먹을까 했는데, 그게 오늘이 될 줄은 몰랐다.


몽골에 가 있는 나의 동거인 역시 내가 팥 카페에 다녀온 후 팥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얼마 전 엄마에게 팥을 보내달라고까지 한 것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빨리 실행에 옮길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없는 그녀의 집에서 나는 그녀의 냄비로 요리를 하고 있다.



나는 요리의 결과물보다 과정을 사랑한다.

내가 한 음식이 제일 맛있어서가 아니라, 재료를 손질하고 맛을 내는 일련의 과정이 나에게 이상한 안도감을 줘서 요리를 한다. 예전에 책에서 어떤 질문을 본 적이 있다. 세상 제일의 부자도 갖고 싶어 하나 쉽게 가지지 못하고, 억만금의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잠시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사랑인가? 깨끗한 공기인가? 과거인가?


그러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것들이 정말 부자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인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인지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서둘러 책을 읽어보니 답은 마음의 평화였다. 수긍이 갔다. 만에 하나 소원을 들어준다는 요정을 만나서 딱 한 가지를 빌 수 있다면 그것을 빌겠노라 다짐했다. 잊어 먹지 말아야지. 마음의 평화.

요리는 나에게 그것과 가까운 안도감을 준다. 차라리 그 고생을 하느니 사 먹고 말지, 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나는 여전히 요리가 좋다. 요리하는 시간만큼은 나를 골치 아프게 하는 돈, 직업, 가족과 같은 것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와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어떤 날은 하루 세끼 요리만 하느라 다 보낸 적도 있다. 사실 그런 날들이 잦다. 달리하는 것 없이 끼니만 잘 챙겨 먹었을 뿐인데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영 나지 않았다. 오늘도 이렇게 팥이 제대로 잘 삶아지는지, 물이 부족하지는 않는지, 뚜껑을 닫았다 열었다 하며 오전을 다 보내고 있지 않은가.


오늘처럼 어느 정도 구름이 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씨는 혼자 요리하기에 더없이 평화로운 환경이다. 팥을 삶는 냄새는 은은하면서도 무겁다. 자극적인 향이 하나도 없다. 굴소스나 간장을 쓰는 요리를 할 때와 사뭇 다르다. 나는 이런 순한 요리 냄새가 좋다. 타는 냄새, 짜고 시큼한 냄새, 지지는 냄새 없이 물과 자연의 재료가 만나 보글보글 풍기는 향은 집 냄새 같다. 그래서 최근엔 볶는 방식보다 삶는 방식을 시도해보고 있다. 건강에도 그게 더 좋다고 하니까.


금방은 팥을 삶으며 이상한 생각을 했다. 세상 사람들을 팥을 삶아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나는 꼭 팥을 삶아본 사람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팥을 삶아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 지지부진한 과정을 겪고서라도 꼭 내 손으로 팥앙금을 만들어보겠노라 다짐한 사람, 그리하여 뜨거운 팥 냄비 앞에 오래 서 있어 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내가 소설의 끝을 맺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어릴 때였다.


이상하게 열 장 내외의 단편은 그런대로 결말을 내는데 그 이상의 소설들은 늘 만들다 만 인형처럼 머리까지만 있거나 다리만 덜렁 있거나 그랬다. 내가 처음으로 시도한 장편 소설은 아마 초등학생 때였는데, 우주비행사가 주인공인 SF 픽션이었다. 우주에서는 중력이 없어 음식들이 둥둥 떠다니므로 팩에 넣어 빨대로 섭취하거나 진공 팩에 포장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의 주인공은 외로운 우주에서 지구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며 그런 이야기를 전했다. 놀랍게도 처음으로 도전한 장편 소설은 편지 형식이었다. 디어 토마스. 나는 방금 식사를 마쳤네. 여기서는 음식을 팩에 담아 액체로 섭취하는데 어쩌구 저쩌구. 이 먼 곳에서도 자주 자네 생각을 한다네. 또 연락하겠네. 그럼 이만. 아직도 열정 넘치게 뚱뚱한 컴퓨터 앞에 앉아 그 글들을 써 내려가던 내 모습이 생생하다. 나는 제임스인지 존인지 모를 주인공을 무척 아꼈고 그의 상황에 한껏 몰입하며 쓰곤 했다. 엄마가 그 소설을 삼촌에게 몰래 보여줬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그 당시 나는 어렸지만 내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를 상상만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라도 그 거창한 소설을 읽으면 “읍에서 얌전히 초등학교를 오고 가는 것 외에는 우주 박물관도 가본 적 없는 아이”가 그런 이야기를 쓴다고 웃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무도 읽지 못하게 꼭꼭 숨겨두며 매일 조금씩 조금씩 소설을 썼다. 물론 부모님은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종종 나는 아빠에게 우주인의 삶에 대해서 물어봤고, 엄마에게 컴퓨터 앞에 앉아 글 쓰는 모습을 여러 번 들켰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의 글을 궁금해했지만 비밀이라며 보여주지 않았다. 바로 그런 글을 엄마가 삼촌에게 보여준 것이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늘 싱글벙글 잘 웃던 큰삼촌이 집에 놀러 와 “너 글 쓴다면서? 오, 토마스! 나는 이제 해왕성으로.. 막 이러더라?” 하며 껄껄 웃을 때 나는 부끄러워 어디로든 숨고만 싶었다. 창피함과 배신감, 분노로 휩싸인 6학년은 삼촌이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엄마에게 소심한 반항을 했다. 그 당시에도 생떼를 쓰며 부모에게 버럭 거려 보질 못했던 내가 “비밀이랬잖아. 보여주지 말랬잖아!”라고 큰 소리를 내자 당황한 엄마는 “아냐, 안 보여줬어.” 내내 발뺌하다가 결국 대견해서 그랬다며 사실을 실토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씩씩대며 문서에 암호를 걸고 폴더 속의 폴더 속의 폴더로 글을 숨겼지만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삼촌의 능글거림이 떠올라 내 소설이 더없이 유치하고 쓸모없게 느껴졌기도 하고, 또 누군가가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비밀번호를 자꾸 바꾸다 결국 나중에는 암호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의 첫 소설은 그렇게 안 좋은 기억만을 남긴 채 미결, 미발표작이 되어 버렸다.


그 이후에도 이따금씩 생각나면 글을 썼다. 열 장 분량의 단편들은 가끔 칭찬을 받기도 했다. 꽃이 핀 공터에 살던 아이들이 철도가 깔린 뒤 사라져 버리는 소설을 읽고 중학교 국어 선생님은 내게 작가를 권했다. 어른에게 ‘작가’가 되어보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다들 (사실은 실제 글 쓰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국어 선생님 정도로 타협을 보지, 돈 못 벌고 장래 어두운 작가라는 직업을 섣불리 권하지는 않았다. 그건 마치 꾸준한 직업적성 검사에서 예술가라는 직업이 자꾸 1순위로 나오자 나중엔 검사지를 들고 가도 일말의 대꾸도 않던 부모님의 반응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외부의 영향과는 별개로 나에겐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어쩐지 조금만 이야기가 길어져도, 나는 끝을 보지 못했다. 첫 번째 소설을 쓸 때도 아빠가 한결같이 말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 완성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막노동을 뛰는 갑수 씨가 죽기 전 아이를 보기 위해 그 애가 가장 좋아하는 토끼 탈로 변장하고 둘만의 짧은 여행을 떠난다는 두 번째 소설도 그랬다. 열심히 주인공과 주변 인물을 구상하고 달동네 배경과 결말을 짜두어도 끝까지 가지 못했다. 언제나 어정쩡한 중단, 중도 포기, 미결, 미완성.


죽기 살기로 완성까지 가보자는 다짐을 한 나의 세 번째 소설까지 미완성 상태에서 버려둔 지 1년이 지나자 나는 글 쓰는 일을 외면했다. 그 소설은 내가 대학생 때 독서실에 다니면서 쓰고, 그러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짬을 내어 쓰고, 또 어떤 날은 네 시간 동안 네 문장밖에 못 쓰면서도 잡고 있던 글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결말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취재도 어설펐다. 한 달을 묵혀 두었다 처음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읽었을 때는 엉망진창인 이야기를 그럴싸하다 착각하며 잘도 써왔구나, 싶었다. 그렇게 제대로 수정할 자신도, 새로 쓸 자신도 없이 나는 100매 넘게 쓴 글을 버려두고 그림으로 옮겨 갔다.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는 병을 인정하기 싫어서 여태껏 다른 글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문득, 솔직하게 인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는 병이 있어, 라고. 그래서 지망생이라는 말도 가끔 부끄러울 정도야, 라고.


팥은 다 익었겠지, 싶어 불을 끄고 설탕과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 뒤 먹어보면 뭔가 설컹설컹하니 덜 익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다시 예쁜 유리그릇에 담아두었던 팥을 꺼내어 냄비에 넣고 한참을 끓인다. 그렇게 한 시간이, 두 시간이 지나 이제는 됐겠지 싶어 먹어보면 그다지 부드럽지도 그다지 설컹하지 않은 게 이게 맞나 싶어 긴가민가하다. 다시 냄비에 불을 올린다. 이 과정을 두어 번 반복하니 진이 빠진다. 그래도 참을성 있게 나는 다시 불을 켜고 졸아든 물을 채워 넣은 뒤 책상으로 돌아와 이 글을 쓴다. 중간중간 의자에서 일어나 뜨거운 냄비 앞으로 가서 나무 주걱으로 저어주고 맛을 보는 일도 잊지 않는다. 만들기 시작한 게 오전 열 시 좀 넘어서인 것 같은데 완전히 요리가 끝나고 나니 오후 세 시다.


돌이켜보니, 요리를 중간에 그만둔 적은 없다.

늘 얼마가 걸리든 최선을 다해 끝을 봤다. 맛이 안 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재료와 능력 안에서 최대한이라고 타협 볼 수 있는 정도까지 맛을 내고 끝을 냈다. 중간에 이건 아니라고 내버려 두거나 끝을 보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는 이유가 끈기가 없어서라고 믿고 싶지 않다. 예술가로서 무언가를 이루기엔 애초부터 끈기가 부족한 성격이라고, 그러니 현실을 직시하고 원래 하던 공무원이나 하는 게 맞다고 믿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오늘 하고 싶었던 말은...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는 병이 있다는 건 인정하겠는데 그게 불치병이라는 건 아직 인정 못 하겠다 이거다. 그러니 계속 써보겠다고, 언젠가는 결말을 내보겠다고, 바로 그 말이다. 그 말을 팥이니 우주선이니 뭐니 이렇게 길게 한 것이다. 내가 나를 설득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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